동쪽은 동해, 서쪽과 남쪽은 울주군, 북쪽은 울산광역시 중구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9°14′∼129°23′, 북위 35°27′∼35°33′에 위치한다. 면적은 73.00㎢이고, 인구는 34만 3598명(2015년 현재)이다. 14개 행정동(19개 법정동)이 있으며, 구청은 울산광역시 남구 달동에 있다.
지형적으로 서쪽의 문수산(文殊山, 599.8m)을 정점으로 동쪽으로 영취산(靈鷲山, 349.6m), 삼호산(參湖山, 120m), 은월봉(隱月峰, 90m)으로 점차 낮아지면서 태화강이 울산만에 유입하면서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인 삼산평야와 접하고 있다.
삼산평야에서 동해안의 울산만에 이르는 지역에는 삼산평야 동쪽의 돗질산(89.6m), 남쪽의 신선산(神仙山, 85m), 함월산(138m)을 비롯하여 동해안에 접하고 있는 봉태산(峰台山, 129.1m)까지 전체적으로 해발고도 약 100m 미만의 낮은 구릉성 산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천으로는 국가하천인 태화강을 비롯하여, 지방2급하천 5개, 소하천 5개가 관내를 흐르고 있다. 구의 북부는 태화강이 중구와의 경계를 이루며 동류해 울산만에 유입하며, 남부에는 외황강이 울주군 청량면 · 온산읍과의 경계를 이루며 온산항으로 흐른다.
지방2급하천인 여천천은 옥동에 위치하고 있는 삼호산에서 발원하여 울산대공원의 경계를 따라 흐르다가 시가지를 관류하여 삼성정밀화학 앞에서 울산항으로 유입된다. 현재 여천천이라 불리는 구간은 울산항에서 두왕로까지이며, 두왕로에서 울산대공원 정문 부근까지는 상여천이라 부르고 있다.
무거천은 문수산에서 발원하여 무거동 정골못, 염골저수지를 거쳐 주거지가 시작되는 구간에서는 복개천이 되었다가 옥현1교 부근에서 옥동저수지에서 흘러오는 물과 1차 합류하며, 옥현주공아파트를 지나서 태화강에 합류한다.
태화강 어귀의 울산만(蔚山灣)은 남구 남화동 뻔득말과 방어진반도 최남단의 화암추(花巖湫) 사이에 있는 만이다. 태백산맥 남부의 동쪽 기슭에 따른 단층곡이 몰입하여 만들어진 구조곡 만으로 울산 중앙부까지 들어와 있으며, 만구는 남쪽으로 열려 있고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다.
태화강, 동천, 외황강 등 작은 하천들이 흘러들면서 운반한 많은 양의 토사가 만을 메움으로써 하구에는 삼산평야 등 넓은 충적평야와 간석지가 발달해 있다. 울산만에는 울산항, 장생포항, 방어진항 등이 있다.
북서쪽의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여 겨울의 찬 북서풍을 막아 기온은 따뜻하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기온을 조절하여 온화한 편이다. 2013년 기준으로 연평균 기온은 14.8℃, 1월 평균기온은 0.9℃, 8월 평균기온은 29.0℃, 강수량은 858.3㎜이다. 강수량은 변동이 심하여 2011년에는 1233.2㎜, 2012년에는 1,458.1㎜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남구 지역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유적인 성암동 패총이 발견되어, 이 시대부터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진한에 속하였으며, 현재의 중구 다운동 일대를 중심으로 굴아화촌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굴아화현과 율포현에 속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757년(경덕왕 16)에 굴아화현은 하곡현으로, 율포현은 동진현으로 개칭되어 지금의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일대에 있었던 임관군에 속하였다.
고려 태조 때 울산지역의 하곡현 · 동진현 · 우풍현이 통합되어 흥려부로 승격되면서 이 지역도 흥려부에 속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3개현이 단일 행정단위가 됨으로써 오늘날 울산지역의 영역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995년(성종 14)에 흥려부가 공화현으로 강등되었고, 1018년(현종 9)에는 울주현으로 개칭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울주가 울산군으로 개칭되었고, 1598년(선조 31)에는 임진왜란 당시 울산 의병들이 왜적을 무찌른 공이 컸던 점이 인정되어 울산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도호부를 군으로 개칭하여 군수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내현면(內峴面) · 현북면(峴北面) · 현남면(峴南面) 지역인데, 1914년에 내현면은 부내면에 편입되고, 현북면과 현남면은 대현면(大峴面)이 되었다.
1944에 대현면이 울산읍에 편입되어 출장소가 설치되었으나 1946년 1월 1일에 대현면이 다시 분리되었다. 1962년에 울산읍, 대현면 등이 울산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고 이 지역이 울산시로 승격되면서, 장생포 출장소가 설치되고 무거동이 편입되었다.
1976년에 장생포출장소가 폐지되었고, 1977년에 신정동이 신정1동과 신정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용잠동이 폐지되었다. 1979년에 신정1동이 신정1·3동으로, 야음동이 야음1·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2년에 신정2동이 신정2·4동으로 분동되었다.
1985년에 일반구제가 실시됨에 따라 17개 동(신정1·2·3·4, 달, 무거, 옥, 여천, 야음1·2·3, 선암, 부곡, 황성, 용연, 장생포, 매암)으로 남구가 신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에 울산시 · 군이 통합되면서 울산시 남구가 되었다. 3월 2일에 신정3동을 신정3·5동으로, 달동을 달동 · 삼산동으로, 무거동을 무거1·2동으로 분동하였다. 또 부곡동 · 황성동 · 용연동을 통합하여 개운동으로, 여천동을 야음1동에, 매암동을 장생포동에 통폐합하여 20개 동에서 16개동으로 개편되었다.
1997년 7월 1일에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울산광역시 남구가 되었다. 1998년에 과소행정동 통폐합으로 야음1동과 장생포동이 야음1장생포동으로, 선암동과 개운동이 선암동으로 통합되어 14개 동이 되었다. 2007년에 무거1동이 삼호동으로, 무거2동이 무거동으로, 야음1장생포동이 야음장생포동으로, 야음2동이 대현동으로, 야음3동이 수암동으로 행정동 명칭이 변경되었다.
남구에는 2015년 기준으로 국가지정문화재(현, 국가지정유산)에는 보물 3점, 중요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 2점, 천연기념물 1점 등 6점이 있다. 보물은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보물, 1966년 지정)과 이종주 고신왕지 및 이임 무과홍패(보물, 1989년 지정), 자치통감 권226∼229(보물, 2015년 지정) 등 3점으로 울산박물관에서 보존하고 있다.
국가민속문화유산은 학성 이천기 일가 묘 출토복식(국가민속문화재, 1979년 지정)과 정공청 유품(국가민속문화재, 1979년 지정)으로 모두 울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신정동에서 발견된 학성 이천기 일가 묘 출토복식은 학성(울산)이씨 이채석(李埰石)의 11대조인 이천기와 그의 부인 흥려박씨의 합장묘, 그의 셋째 아들인 이지영(李之英)과 그의 부인 평해황씨의 합장묘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300여 년 동안 땅속에서 썩지 않고 있다가 1969년에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희귀한 자료로 당시 양반들의 복식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로서 면포 솜소모자, 솜장옷 등 총 10점이다. 정공청 유품은 정공청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면서 착용했던 투구와 갑옷, 장갑, 혁대, 화살 등의 유품이다.
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蔚山─廻遊海面)은 1962년 12월 3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귀신고래는 동절기 12월∼1월까지 약 2개월 간 장생포를 중심으로 동해안 일대에 육지로부터 1∼2마일 떨어진 해안에서 패류를 잡아먹고 회유하는 길이 10∼17m의 소형 고래이다.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은 언양현호적대장, 동래부순절도등 6점이 있다. 언양현호적대장은 1997년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동래부순절도는 2013년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울산광역시 기념물은 처용암(울산광역시 기념물, 1997년 지정), 개운포성지(開雲浦城址), 성암동패총(울산광역시 기념물, 2000년 지정) 등 3점이 있다.
처용암은 황성동 세죽마을 앞 개운포 가운데에 있으며, 처용랑(處容郞)과 개운포(開雲浦)의 설화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성암동 일원의 개운포 성지는 신라 때부터 왜구방어의 요충지로서, 조선 초기에 이곳에 설치된 수군만호(水軍萬戶)의 진영이 세조 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의 진영으로 바뀌어 선조 때 동래로 옮겨질 때까지 130여 년 간 중요한 방어기지였다.
현존하는 성터는 조선 성종 때 축성된 것으로 둘레가 1,270m이며, 면적이 26,998㎡로 성 밖으로 해자를 둘렀던 흔적이 남아있으나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 일부만 남아있다. 성암동패총은 이 지역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의 생활 모습과 당시의 자연환경 등을 짐작할 수 있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수습된 유물로는 덧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돌도끼, 그물추, 돌고래뼈, 피뿔고동, 참굴, 떡조개 등이 있다.
이휴정은 본래 울산도호부의 객사였던 학성관의 남쪽 문루였다. 객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여러 번 고쳐 세웠으나 1940년에 헐리게 된 것을 학성이씨 문중이 사들여 지금의 자리에 옮기면서 이휴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휴정은 1997년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또한 비지정유산으로 신정동 태화루 현판은 임진왜란 당시 회진되고 그 현판을 울산도호부 객사(일명 학성관)의 종루에 걸어 태화루로 모칭되다가, 1940년 현 이휴정을 이전할 때 학성이씨 월진문회에서 현판을 소장하게 되었다. 또한 신정동 사포진성지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은월봉과 두리봉에 걸친 마제형을 띤 둘레 750m 정도의 성으로, 지금은 기단 부분만 남아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30개교, 중학교 16개교, 고등학교 15개교가 있고, 대학으로는 울산대학교와 울산과학대학교 서부캠퍼스가 있다.
울산대학교는 1970년에 울산공과대학으로 개교한 이래 1985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다. 울산과학대학교는 1973년에 한국과 영국정부간의 협정에 의하여 한국공업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울산공업단지의 각 제조업체에서 요구되는 중견기술인력 양성의 목표 아래 설립되었으며, 현대중공업의 지원 아래 산학현장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남구는 울산지역의 문화중심지로서 문화공간으로 울산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하여 울산박물관, 고래박물관, 울산대학교 박물관, 남부도서관 등이 있다. 1995년 달동에 개원한 울산문화예술회관은 최첨단 기능의 대 · 소공연장과 전시관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공연 및 전시행사와 문화행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시립교향악단, 시립합창단, 시립무용단, 시립청소년교향악단, 시립청소년합창단 등의 예술단이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또한 울산 남구문화원은 향토 자료관과 전시 공간, 도서실, 강당 등의 시설을 갖추고, 지역문화 창달과 계승을 위해 지역문화행사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문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옥동에 입지하고 있는 가족문화센터는 울산광역시민의 생활문화 및 여가 선용공간으로, 시민의 잠재능력 개발에 필요한 각종 교육장소, 아동의 보육을 위한 보육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예식장, 대연회장, 강의실, 체육관 등의 대관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사이버도서관, 소연회장 등 시민 편의시설 및 시민의 가족공동체 형성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공간을 마련하고, 상담실도 운영 중이다.
주민자체대학인 남구한마음대학은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명인사를 초빙하여 삶과 생활의 지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교육프로그램으로, 2001년 이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리고 청소년문화의 집으로 삼호동의 문수청소년문화의 집과 신정2동의 공업탑청소년문화의 집이 있다.
2005년 매암동 장생포 해양공원 내 개관한 장생포 고래박물관은 옛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던 장생포에 1986년 상업 포경이 금지된 이래 사라져가는 포경유물을 수집, 보존 · 전시하고 있다. 어린이 체험관, 포경역사관, 고래해체장 복원관, 귀신고래관 등 고래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울산대학교 박물관은 울산지역의 국가유산 관련 연구기관으로 1995년 12월에 개관하였다. 지리적으로 경주와 인접하여 학술적으로 중요한 국가유산이 매우 많이 분포하고 있는 울산지역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조사하여 울산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고자 설립하였으며, 토 · 도기류 2,000여 점과 옥석류 200여 점, 금속류 1,2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1989년 3월 29일에 개관한 남부도서관은 옥동에 위치하고 있다. 지역언론기관으로 울산 KBS가 달동에 입지하고 있으며, 1989년 5월 15일에 울산에서 가장 먼저 창간된 지역일간신문인 경상일보가 삼호동에 위치하고 있다.
남구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로는 처용문화제를 들 수 있다. 처용문화제는 울산의 대표적인 축제이다. 처용이 나타난 처용암에 제단을 마련하여 처용신을 모시는 문화제로 민속행사와 함께 각종 문화예술행사, 체육행사 등과 병행되는 전국적인 문화행사이다.
처용문화제는 1967년 4월 20일에 제1회 울산공업축제로 시작되어 1991년 제25회 때부터는 울산공업축제의 명칭에서 환경과 문화예술적 의미를 더욱 강화하여 ‘처용문화제’로 축제명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1995년부터는 민간주도형으로 전환되어 처용문화제추진위원회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매년 6월 초에 열리던 축제를 10월로 변경하였다.
울산고래축제는 1995년부터 매년 5∼6월 사이에 장생포동 울산해양공원에서 아득한 선사시대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울산의 고래잡이 역사를 기념하고 안타깝게 사라져 가는 우리 고래문화를 재조명하고 되살리기 위해 개최되고 있다. 고래잡이재현행사, 구민노래자랑, 풍물 한마당 고래마라톤 대회 등 여러 가지 참여 · 체험 위주의 행사가 열린다.
이 밖에도 울산문화원 주관으로 6월 중에 민속예술축제와 정월대보름 달집살이가 열리며, 울산상공회의소 주관으로 매년 10월에 울산 공단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또한 매년 고(故) 고복수 선생의 가요업적을 추모하는 고복수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남구에서는 처용무를 비롯한 울산 매귀악, 물당기기, 마두희, 재넘자놀이 등의 민속놀이가 처용문화제나 민속예술경연대회 개최 시에 재현되어 보존 · 계승되고 있다.
처용무는 남구뿐만 아니라 울산의 대표적인 춤으로, 신라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에서 유래된 가면무이다. 조선 중기 이후 오방처용무를 확립했으며, 동서남북과 중앙의 5방위를 상징 ‘청 · 백 · 홍 · 흑 · 황’ 다섯 가지 질경을 입는다. 춤사위는 활달하고 남성적이며 씩씩하고 장엄하다. 허리에 두 손을 놓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걸음걸이가 웅장하고, 소매를 들어 안으로 끼는 도돔춤이나 한삼을 어깨에 메었다가 뿌리는 낙화유수 등은 모두 특이하고 귀한 춤이다.
울산 매귀악은 오늘날의 지신밟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1749년(영조 25)의 『울산읍지』에 수록된 것을 찾아내어 현재 복원하였다. 이 매귀악의 근원은 주나라의 나례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신라 최치원의 절구시로 된 향악잡영오수에 이어졌다가 다시 고려조 일대와 조선 전기까지의 궁중나례나 민간의 방매귀에 이어졌던 구역의 놀이인 것이다.
이 매귀악은 계절적인 신의 재림을 뜻하는 영신에서 강신, 오신, 신유, 송신 등의 여러 과정이 정연하게 구분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각기 그 절차마다 독특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해마다 섣달 월야에 연소한 놀이꾼들이 조의기를 마당에 세워놓고 그 둘레를 돌며 악기를 치고 놀았다.
물당기기는 생명의 원천인 물을 중요시하고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로, 울산의 곳곳에는 성천에서 물을 당겨오는 제의와 놀이가 있었으나 도심에는 상수도가, 산간에는 간이상수도가 생기면서 잊혀지게 되었다. 그래서 북구 효문동에서 행해졌던 물당기기를 놀이로 재현하여 즐기는 것이 울산의 물당기기 놀이인 것이다.
줄다리기 놀이인 마두희는 일명 소전이라고도 한다. 『울산읍지』에 따르면 줄다리기는 중국 당나라 때의 부하희를 본뜬 것이라 하였다. 줄다리기의 규모는 작게는 한 마을이 동과 서로 갈라져서 승패를 겨루는가 하면, 크게는 한 고을 전체가 두 쪽으로 갈라져서 당기었다. 줄에는 암 · 수가 있어 동쪽은 숫줄, 서쪽은 암줄이라 한다. 이긴 쪽은 그 해에 병에 걸리지 않고 농사도 풍작이 된다고 하며, 지는 쪽은 그 반대의 현상을 가져온다고 믿어 피차 기세를 올리면서 필사적인 대항을 하였다.
그리고 재넘자놀이는 정월 대보름이나 한가위의 달밤에 즐기던 여성들의 놀이이다. 이는 안동지방의 놋다리밟기나 전남지방의 강강술래와도 그 맥을 같이 하는 여성들의 군무인 것이다. 이 놀이는 울산지방 전역에 걸쳐 해방 직후까지도 계속되었다가 소멸된 것을 1990년에 복원하였다.
남구에는 지명전설과 인물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처용설화」, 「무거동 효부각 이야기」 등을 들 수 있다.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지금의 황성동 세죽마을 일대)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운무가 가려 앞을 볼 수 없게 되어 왕이 즉시 명을 내려 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하자 운무는 씻은 듯이 걷혔다. 그래서 이곳을 ‘개운포(開雲浦)’라 한다.
이에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처용암에 올라와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었는데, 그 가운데 한 왕자인 처용(處容)은 왕을 따라 서라벌로 가서 미녀와 결혼을 하고 벼슬을 하면서 정사를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역신과 아내가 동침을 하고 있었다.
처용이 밖으로 나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자, 역신은 모습을 나타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앞으로 처용의 형상(形象)만 봐도 기웃거리지 않겠다며 잘못을 빌었다. 이 일로 인하여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 들였다. 이때 처용이 지어 부른 노래를 「처용가」라 하고, 춘 춤을 「처용무」라 하여 후대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무거동 효부각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설화를 담고 있다. 옛날 무거동에 남편이 일찍 죽고 시아버지, 어린아이와 함께 사는 여인이 있었다. 나무를 하러 간 시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찾기 위해 산에 가보니 호랑이 한 마리가 시아버지를 밟고 있었다. 며느리는 업고 있는 자기의 아이를 호랑이에게 주고는 시아버지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호랑이는 시아버지를 생각하는 며느리의 효심에 감동하여, 아이를 잡아먹지 않고 그 집 앞에 다시 데려다 놓았다고 한다. 그 후에 이 마을에서도 그 여인의 효심을 기리는 의미에서 효부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 밖에도 신선들의 바둑 구경을 하다 집에 돌아오니 증손자들이 그 집을 지키고 있었다는 「신선암(神仙巖) 전설」, 조선시대 국상이 있으면 마을의 선비들이 이 산에 올라가서 왕실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 곡을 하였다는 「망제산(望帝山)의 전설」 등이 전해온다.
2013년 기준으로 남구의 토지 지목별 현황을 보면, 공장용지가 20.14㎢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임야 19.13㎢, 도로 · 하천 등의 공공용지, 대지, 전 · 답 · 과수원 등의 순이다.
2013년 기준 남구의 총 사업체 수는 29,143개이고, 종사자수는 169,829명이다. 농림수산업은 사업체수 4개, 종사자수 23명으로 1차 산업은 거의 없다. 남구 지역의 농업은 과거에는 삼산평야를 중심으로 쌀농사 등의 곡물농업과 소채농업, 배를 생산하는 과수농업이 발달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시가지로 변하였으며 논 면적은 30㏊에 불과하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자원이 풍부한 어장에 근접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공동어업을 비롯한 정치어업과 연근해 어업의 어획고가 매년 증가하였으나, 공업화 추진에 따라 임해공단 조성 및 어장환경 악화와 남획 등으로 연안 어장 자원은 점차 감소 추세에 있다. 2013년 기준으로 816명의 어가인구가 종사하고 있으며, 3,008M/T의 어획고를 보이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종사자 규모별 사업체수 및 종사자수를 보면 사업체수에서는 도매 및 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종사자수는 제조업의 비중이 가장 높고, 도매 및 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의 순이다.
제조업은 사업체수 1,430개, 종사자수 28,270명이며, 도매 및 소매업은 사업체수 7,448개, 종사자수 23,131명이다. 숙박 및 음식점업은 사업체수 6,447개, 종사자수 19,344명이며, 건설업은 사업체수 1,208개, 종사자수 15,704명이다.
매암 · 여천 · 선암 · 부곡 · 상개 · 장생포동 일대는 울산 · 미포국가산업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원래 이 지역은 매암동의 설탕 · 제빙 · 한천제조공장과 장생포동의 고래고기 가공공장 등을 중심으로 소비재 가공업이 발달했으나, 1962년에 특정공업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석유 · 화학공업, 기계금속공업, 섬유산업에 관련된 대기업체와 이와 연관된 크고 작은 공장들이 입주하여 가동되고 있다.
특히 성암동 · 상개동 · 부곡동 일원의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는 정부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핵심 사업으로 1968년부터 5년여에 걸쳐 준공된 대단위 석유화학공업단지로, 급증하는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증대로 80년대 고려석유화학을 비롯한 20여 개의 석유화학 계열회사가 입주하여 기초유분, 합성수지 등을 생산하는 콤비나이트형 기초소재 산업공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화합물 및 화학제품제조업, 코크스 · 석유 정제품 및 핵연료 제조업, 섬유제품 제조업 등에 속한 SK주식회사, 삼성석유화학㈜, ㈜카프로 등의 소수 대기업에서 대규모의 노동력을 채용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또한 울산광역시 행정의 중심지로, 시청, 세무서, 법조타운, 경찰서, 소방서 등의 공공기관과 행정기관이 밀집하여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상업시설로는 대형마트 3개소, 백화점 2개소, 쇼핑센터 3개소, 등록시장 3개소, 인정시장 6개소로 총 17개소가 있다.
신정시장은 1970년 초 울산시청의 건립과 더불어 2층 상가건물 신축으로부터 시작하여 주변에 자연발생적으로 상점이 생겨났다.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성이 용이하여 하루 이용자가 거의 1만 명이 넘는 대형 재래시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신정평화시장은 1985년 8월 지하1층, 지상2층 연면적 2,453㎡의 상가건물을 건립하여 개설된 시장으로써 신정동 구시가지 주택가의 중심에 위치하여 그 역할을 다해오고 있다.
1976년에 개설된 야음시장은 1960년대 부곡, 용연, 여천, 매암동의 공업단지 조성으로 인하여 근로자 등 유입인구 증가를 가져와 대단위 주거지의 배후상권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수암시장은 1970년 초에 지상1층, 2,905㎡의 상가 건물로 시작하여 점차 골목시장 형태의 점포가 늘어나 오늘날 이 일대 주요한 전통 재래시장으로 번성하고 있다.
삼산동에 울산시외버스터미널, 울산고속터미널, 태화강역이 입지하고 있으며, 울산만에는 울산항이 위치해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도로는 남쪽의 부산에서 이어지는 14번 국도가 서부지역을 남북으로 지나 북쪽의 중구에서 7번 국도와 연결된다.
동부지역에는 산업로가 남북으로 지나 남쪽에서는 14번 국도, 북쪽에서는 7번 국도, 31번 국도와 연결되어 부산 · 경주 · 포항 등지와 연결됨으로써 외부지역과의 교통이 편리하다. 철도는 동해남부선이 공단과 시가지 사이를 남북으로 지나고, 울산선과 장생포선이 울산항과 동해남부선을 동서로 잇고 있다.
태화강역은 1921년 영업을 개시하여, 1992년 신역사 준공으로 삼산동으로 이전하였고, 1997년에는 거점관리역으로 지정되었다. 2001년에 광장을 조성하여 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편의제공은 물론 시민들의 쉼터로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중앙광장, 분수시설, 다목적 놀이광장, 사계절공원, 생태 숲 정원 등의 시설이 있다.
남구의 항구들은 신라 때부터 장보고가 동남아 해상무역을 할 때 신라로 출입하는 무역 전진기지였으며, 인근 해안에서는 멸치, 고등어, 대구, 꽁치 등이 주요 어종을 이루면서 어업이 성행하기도 하였다.
죽도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장생포항은 폭이 200∼400m로 협소하지만 수심이 깊으며, 장생포를 전진기지로 하여 포경업이 이루어졌다. 근대 포경의 역사는 1899년 5월 일본의 나가사끼항에 있던 러시아 태평양포경회사에서 고래해체부지로 장생포항내의 부지 일부를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
러일전쟁 후 일본이 포경업을 독점하게 되고 1915년을 전후로 함경도, 강원도, 경남의 거제도에 있던 포경기지가 정비되면서 장생포항이 포경의 중심이 되었다. 1986년에 상업포경금지가 있기 전까지 우리나라 제일의 고래잡이 중심항구였다.
특히 울산항은 우리나라 산업의 전략적 거점항이다. 동해 남단의 울산만 깊숙이 위치하여 외해로부터 잘 보호되어 파랑의 영향이 거의 없고 내해(內海)의 수심이 깊은 천혜의 항구조건을 갖추고 있어 선사시대부터 자연 상태 그대로 항 · 포구의 기능을 했다고 짐작되고 있다.
선사 · 삼한시대의 울산항은 달천지역에서 생산한 철을 삼한, 일본 등으로 수출하였으며, 신라 · 고려시대에는 신라의 주 교역항이자 수군의 중심지로, 조선시대에는 1426년에 3포 중의 하나인 염포로 개항하였다. 현대적인 항만으로 1963년 9월 25일에 울산항이 국제개항장으로 지정되었으며, 울산지역의 대규모 복합공업기지를 지원하기 위하여 1973년 9월에 온산항을, 1976년 11월에 미포항을 울산항에 포함시켰다.
이에 울산항은 위치에 따라 울산본항과 온산항, 미포항 등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남구의 울산본항 부두는 울산 · 온산국가산업단지의 지원기능은 물론 각종 일반화물, 컨테이너화물, 자동차, 케미칼, 유류 등을 취급하고 있는 울산항의 가장 중요한 시설로서 안벽 연장 약 11.6㎞에 325천 톤급 이하의 선박 70여 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어린이공원 91개소, 근린공원 17개소, 소공원 18개소 등 총 129개소의 많은 공원들이 소재하고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 및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울산의 중심을 흐르는 태화강 주변에는 대숲공원, 꽃단지, 잔디밭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태화강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태화교와 삼호교 사이에 형성된 대밭은 길이가 무려 4㎞(폭 20∼30m)나 되어 태화강 10리 대밭이라 한다. 이 대밭은 일제강점기에 잦은 홍수 범람으로 농경지 피해가 많아짐에 따라, 주민들이 홍수 방지용으로 심은 대나무라고 한다.
울산대공원은 울산광역시 도심의 신정동과 옥동 일대의 100만 평에 이르는 넓은 부지에 입지하여 접근성이 뛰어나고 주변 자연환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역민들의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여 레크리에이션, 여가활동, 학습, 체험기능을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울산의 대표적 기업인 SK주식회사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지난 1996년부터 울산광역시와 함께 울산대공원을 계획 · 건설하였다. 2002년 4월에 개장한 1차 시설은 워터파크형 수영장, 풍요의 못, 느티나무 산책로, 호랑이발테라스, 자연학습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6년 4월에 개장한 2차 시설은 1차 개장시설의 남측지역인 남부순환로변을 중심으로 자연학습지구, 환경테마놀이지구, 가족피크닉지구, 청소년시설지구, 기타의 5개 지구로 구성되어 있다. 시설로는 장미계곡과 어린이동물원, 나비식물원, 분수이벤트광장, 무지개그물놀이 등의 테마놀이시설과 환경홍보관, 교통안전공원과 사계절썰매장, 6홀의 파크골프장 등이 있다. 또 1차시설과 2차 시설을 연결하는 트램카를 운영하고 있다.
옥동의 울산체육공원은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를 위한 경기장을 중심으로 주변 녹지 및 자연 호수를 정비하여 테마공원 형식으로 조성하였다. 공원 내에는 축구경기장을 비롯하여 실내수영장, 테니스장, 실내사격장, 풋살경기장 등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인근에 문수야구장, 문수국제양궁장, 시립문수궁도장 등이 위치하고 있다.
이외에도 선암댐 일원에 다양한 산책로와 생태습지원 등을 조성한 선암호수공원, 자연친화적 하천정비와 하천유지수 확보를 통해 친수공간으로 조성된 여천천 생태하천, 2011년에 개관한 울산박물관, 옛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던 장생포에 조성된 국내 유일의 고래박물관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