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행정구역상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성암동성지(城巖洞城址)’라고도 한다. 성벽의 길이 4,229척, 성내의 면적이 4만 8363평방미터나 되는 큰 규모의 성곽이다.
1407년(태종7) 7월 경상도병마절도사(慶尙道兵馬節度使) 강사덕(姜思德)이 개운포(開雲浦)에 병선(兵船)을 배치할 것을 건의했다고 한 사실에서 이곳이 포구(浦口)로서의 기능과 더불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으나 언제부터 군사시설이 있었는 지는 알 수 없다.
세종 때에는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었으며 병선 12척과 군사 420명으로 지키게 했다고 하는데, 1458년(세조 3)에 이를 한동안 폐지했다고 한다. 1460년에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을 두었고, 1483년(성종14)에는 수영(水營)을 두었으나 1592년에 동래(東萊)로 옮겨갔다.
이후에는 1656년(효종7)에 도산(島山)에 있었던 선소(船所)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마을 이름도 선소마을이라고 한다. 석축은 큼직한 바위같은 돌을 이용해 기초부분을 쌓고, 위로 가면서 점차 작은 돌을 쌓았는데 임진왜란 때 왜성을 축성하면서 왜군에 의해 해체되어 대부분 옮겨가고 현재은 기초부분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