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개운포 성지는 조선 전기에 축조한, 경상 좌수영 소속 수군 진성으로,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에 있다. 이 성은 해발 60m 정도의 구릉 지대와 외황강과 접해 있는 저지대에 축조된 평산성으로, 성내 골짜기를 두고 있는 둘레 1,264m의 포곡식 석축성이다. 개운포 성지에 대한 수차례의 시·발굴 조사에서 추정 객사터와 북문지와 동문지에서 옹성문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성벽과 치성, 해자, 수구, 선소 등의 성곽 부속 시설도 확인되어, 조선시대 수군 진성 축조 수법의 변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정의
조선 전기, 경상 좌수영 성이 있었던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에 축조한 경상 좌수영 소속 수군 진성.
형태와 특징
건립 경위
변천
1475년(세조 3), 정월 개운포는 바다에 가까이 있고 백성과 산물(産物)이 많으며, 고기를 낚는 왜선(倭船)이 자주 염포를 경유(經由)하여 지나가게 되니, 수호(守護)를 또한 오로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로 염포진에 이속시켜 군비를 보강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476년(세조 4) 11월에 개운포 성지가 염포(鹽浦)와 서생포(西生浦)의 사이에 있기 때문에 해로(海路)가 굽고 먼 데다가 또 도절제사영과 거리가 멀고 염포에 사는 왜인들이 항상 왕래하고 있으니, 방어(防禦)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이라 하여 다시 설치되었다.
중종 대 경상 좌수영을 동래 해운포로 옮기려는 문제는 1511년(중종 6) 순찰사 고형산(高荊山)이 제기하였는데, 반대 여론이 나오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그 이유로는 해로상 경상 좌도 연변의 중간 지점인 부산으로 이전하면 영해(寧海) 방면의 방어가 허술해진다는 것과 부산포는 왜인이 왕래하고 있으므로 주장이 여기에 있으면 그 허실이 탐지되기 쉽다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경상 좌수영 소관의 재산 이동이 곤란하다는 것과 부산포가 지리적으로 협소하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경상 좌수영이 동래 지역으로 이설된 시기에 대하여 『동래영지』, 『영남영지』, 『여지도서』 등에서는 언제인지 모른다고 하였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 『울산읍지』, 『징비록』, 『대동지지』 등을 근거로 1592년(선조 25)에 이르러 동래 해운포(남촌)로 옮겨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중종실록』 29년 9월 임진 조에는 부산포를 경상 좌도의 수영으로 삼게 한다는 기사와 『중종실록』 39년 9월 임술 조에 수영이 해운보에 있음을 전하고 있어, 1534년(중종 29) 9월 29일에서 늦어도 1544년(중종 39) 9월에는 이설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후인 1629년 개운포 성지는 동래 부산포 인근으로 진을 옮겼으며, 1656년(효종 7)에 도산에 있던 전선소(戰船所)가 이곳으로 옮겨와 1895년(고종 32) 만호진이 폐지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이로 인해 이곳 마을 이름도 선소 마을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동안 추정 서문지 지역에 선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추정 서문지 일대 앞에서는 6.5m 이격하여 추정 해자(垓字)가 확인되었고, 서벽 성벽 몸체부 아래 수구(水口)가 확인되어 선창지로는 부적합함이 확인되었다. 다만 1954년 촬영된 국토지리정보원의 항공 사진을 보면 성암동 추정 남문지 부근 남쪽이 지금은 산업 도로로 단절되었으나, 자라 목처럼 튀어나온 지형의 동쪽과 서쪽 편이 만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쪽 만에는 선수 마을이 있었고 ‘선수’는 ‘선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지형적으로 보나 지명으로 보나 이 지역에 선소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발굴 경위 및 결과
동문지는 성지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동쪽 구릉에 위치하며 반원형의 옹성(甕城)이 확인되었으며, 기와편이 많이 수습되어 문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문지의 경우 개구부가 서쪽으로 난 반원형의 편문식 옹성으로 조사되었다. 문지는 개구부 너비가 2m 정도였으나, 후대에 좁힌 것으로 조사되었다. 북문 옹성의 경우는 기존 옹성의 외측부에 약 1.5m 정도 확장하여 증축한 것이 확인되었다.
추정 서문지의 경우, 조사 결과 길이 70cm, 너비 50cm 규모의 수구가 조사되어 문지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추정 서문지 주변 성벽의 경우 처음 쌓은 성벽의 석축 너비는 3m, 잔존 높이 260cm 정도이며, 증축(增築) 성벽은 너비 5m, 잔존 높이 360cm이다. 성벽 북측 경사지에서는 기단을 계단식으로 수평화하면서 쌓은 성벽이 확인되었다.
추정 남문지에서는 문지가 확인되지 않았다. 추정 남문지의 경우 바닥에 납작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너비 6.2m 정도로 지대석(地臺石)을 한 벌 깐 후, 지대석 끝에서 안쪽으로 20cm 정도 들여서 성벽의 기단석(基壇石)을 설치하였다. 잔존 외벽은 3∼4단의 성벽석을 세워 쌓기와 눕혀 쌓기 방법으로 쌓은 후, 깬돌로 뒤채움한 상태이다. 외벽과 내벽의 너비는 4.8∼5m이다. 내벽은 30∼40cm 크기의 깬돌로 높이 80cm까지 쌓았으며 내벽 바깥쪽에는 성벽 기초부를 보호하기 위한 40∼120cm 너비의 보축석(補築石)이 깔려 있다. 뒤채움석 상부와 안쪽으로는 황갈색 흙과 풍화토를 번갈아 교대로 다져 덮었다. 외벽의 안쪽 약 2.5m 지점에서 뒤채움석이 단을 지고 있으며, 외벽석으로부터 1.5m 안쪽에서 상부에 덮였던 흑갈색 부식토가 수직으로 잘린 흔적이 있어 후대에 보수나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추정 객사지 지역은 개운포 성지 내의 독립 구릉의 남쪽에 위치하는 평탄 대지로 동쪽으로 동문지와 연결되며, 서쪽으로 급경사를 이루는 지역이다. 이곳은 ‘객사등들’이라는 지명이 유래되고 있다. 시굴 조사에서 건물지와 구덩이, 기둥 구멍, 석축 등이 확인되었다. 기와편과 자기편 등이 다수 수습되어 객사 및 동헌 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추정 서문지와 남문지 사이에서 성벽과 함께 조성된 치성도 확인되었다. 남서벽 치성의 경우 규모는 가로 6.5m, 세로 8m이다.
해자의 경우 북문지 동편 해자는 자연 경사면을 최대한 이용하여 깊이 6m 이상으로 파서 만들었다. 서편 해자는 동편보다 얕으나 성벽에서 약 10∼15m 이상 떨어져 있어, 너비 10m 정도의 단면 브이(V) 모양의 해자가 양호하게 남아 있다. 한편, 남쪽 성벽의 외벽에서 7.2m 바깥 지점에서도 너비 4.5∼5m, 잔존 깊이 1m 규모의 단면 유(U) 모양의 해자가 확인되었다.
현황
의의 및 평가
2024년 8월 7일 성지와 그 주변을 아우르는 문화유산구역 91필지 34,564.7㎡와 문화유산보호구역 122필지 89,763.7㎡를 국가유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성곽의 잔존 상태나 보존 환경이 타 지역 영 · 진성에 비하여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어 사적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단행본
- 蔚山發展硏究院文化財센터, 『蔚山 開雲浦城址』(2004)
- 蔚山發展硏究院文化財센터, 『蔚山 開雲浦城址Ⅱ』(2007)
- 박채은 엮음, 『개정·증보 조선시대 경상좌병영·좌수영 우후(虞候)와 울산지역 수군첨사(僉使)·만호(萬戶) 〈선생안(先生案)〉』(2018)
- (재)울산문화재연구원·울산광역시 남구청, 『개운포성지』(2018)
- (재)울산문화재연구원, 『개운포성지 서문지(선입지 추정지) 성격규명을 위한 발굴조사 약보고서』(2018)
- 울산광역시문화원연합회, 『산업도시 울산의 이주사』(2018)
- (재)가야문물연구원, 『蔚山 開雲浦城址Ⅲ』(2019)
- (재)한겨레문화재연구원, 『개운포성지 치성 및 객사 추정지 시·발굴조사』(2019)
논문
- 나동욱, 「경상좌수영 수군진성 연구」(『조선시대 수군진조사 Ⅳ 경상좌수영 편』,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8)
- 이일갑, 「남해안지역 조선시대 영진보성에 대한 일고찰」(『석당논총』 71집, 동아대석당학술원, 2018)
인터넷 자료
-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 조선왕조실록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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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원형이나 방형(方形)으로 쌓은 작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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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성을 쌓을 때 지면을 단단하게 다진 후에 놓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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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성벽에서 기초에 쌓는 성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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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건물이나 구조물 따위의 기본적인 것에 일부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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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이미 지어져 있는 건축물에 덧붙여 더 늘리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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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성. 고구려의 평양성, 백제의 사비성이 이에 속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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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 일대를 돌아가며 벽을 쌓는 방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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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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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일정하지 아니한 모양이나 양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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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일본 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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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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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큰 돌을 깨서 만든 인공적인 자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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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암석의 풍화 분해물이 그 암석 위에 그대로 쌓여서 된 흙.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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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이미 지어져 있는 건축물에 덧붙여 더 늘리어 지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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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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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건축물이나 비석 따위의 기초로 쌓는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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