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찬성,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중종 때 강원도관찰사와 형조 · 호조 · 병조의 판서 등 요직을 차례로 역임하고 우찬성에 이르렀다. 1507년(중종 2) 함경도관찰사로 있을 때 부국강병을 위한 제도개혁을 상소한 바 있으나 정치성향은 대체로 보수적이었다.
조광조(趙光祖) 일파의 정치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한 사람으로 현량과(賢良科)의 실시 등을 극력 반대하였으며, 1519년 남곤(南袞) 일파와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신진세력을 축출하였다.
곧고 근검한 성품으로 수리(數理)에 밝아 행정능력이 뛰어났다. 뒤에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시호는 익평(翼平)이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선전기 기호사림파 연구』(이병휴, 일조각, 1984)
- 『고형산의 상소문』(김원각, 전통문화 1984.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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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원 급제 : 『성화16년경자3월초3일사마방목(成化十六年庚子三月初三日司馬榜目)』(『세촌선생실기(細村先生實紀)』 卷之下, 李文佐, 국립중앙도서관[한古朝57-가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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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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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현량과 반대 : 중종실록37권, 1519년(중종 14) 12월 10일. "대간 전원이 조광조의 일과 현량과의 혁파에 대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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