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許筠)의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8 전(傳)에 수록되어 있다. 허균이 지은 여타 4개의 인물전(人物傳)과 달리 이 작품은 길이가 매우 짧다.
‘손곡산인’은 조선 중기의 삼당시인(三唐詩人)인 손곡(蓀谷) 이달(李達)을 지칭하며, 그가 강원도 원주(原州) 손곡에 살았기 때문에 붙은 제목이다.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의 주인공 이달은 홍주(洪州) 관기였던 어머니의 미천한 신분 때문에 세상에 쓰이지 못하였던 인물이다. 전의 구성은 이달의 일생과 외사씨(外史氏)의 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달은 시재(詩才)가 뛰어난 인물이다. 어려서 익힌 송시(宋詩)의 시풍을 뒤로하고 당시(唐詩)의 시풍을 익히기 위해 오랫동안 수련을 하였다. 『이태백집(李太白集)』과 성당십이가(盛唐十二家)의 글, 유우석(劉禹錫)과 위응물(韋應物)의 시, 양백겸(楊伯謙)의 『당음(唐音)』 등을 모두 외우기 위해서, 원주의 손곡장(蓀谷庄)에 칩거하며 두문불출하였고, 5년 동안 날을 새거나 온종일 무릎을 떼지 않으며 노력하였다. 그의 재능은 이러한 노력을 만나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이달은 당대 시단의 시풍을 변화시켰으며, 그 결과 삼당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도전적인 언행을 자행하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 그를 증오하거나 질투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이달의 시를 짓는 재능은 그의 불손한 행동을 감쌀만큼 충분하였다.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외사씨(外史氏)의 평은 곧 작자인 허균의 목소리이다. 이 부분은 외사씨의 평을 빌려 자신의 말을 하는 전문학(傳文學)의 전통적 구성 방법이다. 허균은 외사씨를 중국과 조선의 최고 문필가인 주지번(朱之蕃)과 권필(權韠)로 설정하고, 이들의 평을 통하여 시인으로서의 이달을 높게 평가하고 현세를 초월한 시인의 삶을 형상화하였다.
이 작품은 사건 전개의 구체적 내용보다는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주인공에 대한 관찰과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 점은 작자가 주인공의 시제자(詩弟子)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허균은 「손곡산인전」의 이달의 불우한 일생을 통하여 그의 뛰어난 시적 재능과 노력을 부각시키면서, 당시 개인이 능력과 노력으로 규정되지 않고 문벌과 신분 계층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를 간접적으로 비판하였다.
「손곡산인전」은 작자 허균의 사회 개혁 사상의 문학적 반영이다. 작자는 한 시인의 일대기를 통해, 적서 차별에 의하여 능력은 있으나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던 한 인간의 불우한 일생을 형상화함으로써 모순된 사회를 비판하려 하였다. 허균의 나머지 4편의 전과 함께 조선 후기에 나타나는 모든 계열의 한문 단편 형성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