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전기 문신 이행·윤은보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하여 1530년에 편찬한 관찬 지리서이다. 총 55권 2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전기 지리지를 집대성한 책으로, 속에 실린 지도와 함께 조선 말기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경도와 한성부, 8도의 지리와 풍속뿐 아니라 정치·경제·역사·행정·군사·사회·민속·예술·인물 등 조선의 서울과 지방 사회의 모든 방면의 정보를 백과전서식으로 망라해 놓았다. 지도를 참고자료로 첨부함으로써 지리지에 수록된 내용의 공간적 파악과 정확한 인식을 제공하려 한 점에서 한 단계 진보한 지리지이다.
55권 25책.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지리서이다. 이 책은 세 차례의 수교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원래 『동국여지승람』은 1481년(성종 12) 50권으로 편찬되었다. 내용은 1477년에 편찬한 『팔도지리지』에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東國文士)의 시문을 첨가하였으며, 체재는 남송(南宋) 축목(祝穆)의 『방여승람(方輿勝覽)』과 명나라의 대표적 통지인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참고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金宗直)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때 시문에 대한 정리와 연혁 · 풍속 · 인물편목에 대한 교정, 그리고 『대명일통지』의 예에 따라 고적편목이 신설되었으며, 중국의 지리지에는 없는 성씨 · 봉수(烽燧)의 양조도 신설되었다. 그 뒤 1499년에 임사홍(任士洪) · 성현(成俔) 등이 부분적인 교정과 보충을 가하였으나 내용상의 큰 변동은 없었다. 제3차 수정은 증보를 위한 것으로서 1528년(중종 23)에 착수하였다. 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으로 완성, 이에 ‘신증(新增)’의 두자를 삽입하여 간행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이 책은 더욱 희귀해져 일본 경도대학소장본이 유일하며, 1611년(광해군 3)에 복간한 목판본이 규장각 등 국내에 소장되어 있다. 1455년(단종 3)의 을해자로 인쇄된 『동국여지승람』의 초간본 중 권37 · 38은 김두종(金斗鍾)이 소장하고 있다.
책머리에는 이행의 진전문(進箋文) · 서문 · 교수관원직명과 구본 『동국여지승람』의 노사신(盧思愼)의 진전문, 서거정(徐居正)의 서문 및 교수관직명 · 찬수관직명 ·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끝에는 홍언필 · 임사홍 · 김종직의 발문이 실려 있어 간행 과정과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 권1에 경도(京都) 상, 권2 경도 하, 권3 한성부, 권4 · 5 개성부, 권6∼13 경기도, 권14∼20 충청도, 권21∼32 경상도, 권33∼40 전라도, 권41∼43 황해도, 권44∼47 강원도, 권48∼50 함경도, 권51∼55 평안도 등이 수록되었다. 각 권마다 여러 개의 군현이 수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의 광주목과 여주목, 경상도의 경주부, 평안도의 평양부 등 큰 읍은 1개 행정구역만 수록되었다.
경도 앞에 조선 전도인 팔도 총도가 실려 있으며, 각 도 첫머리에는 도별 지도가 삽입되었다. 이 지도들은 실측 지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나타낸다. 이 지도는 동서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반면 남북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한반도의 모양이 기형적이며, 주요 하천의 유로가 부정확하고, 강폭이 과장되어 있으며, 서남해의 섬과 반도들이 적당히 그려져 있는 등 문제점이 많다. 그러나 이 지도는 본래 지지를 읽는 데 참고가 되도록 첨부한 안내도였으므로 지도학적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도에 표시된 내용도 산과 하천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는 산천에 대한 제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순수한 자연현상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리지에 지도를 첨부함으로써 지리지에 수록된 내용의 공간적 파악과 정확한 인식을 달성하려 한 점은 이전의 지리지에서 한 걸음 발전한 것이다.
내용은 각 도의 연혁과 총론 · 관원을 적은 후, 목 · 부 · 군 · 현의 연혁, 관원 · 군명 · 성씨 · 풍속 · 형승 · 산천 · 토산성곽 · 관방(關防) · 봉수 · 누정 · 학교 · 역원 · 교량위치 · 불우 · 사묘 · 능묘 · 고적 · 명환(名宦) · 인물 · 시인의 제영(題詠) 등의 순서로 기재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 이후에 증보된 것은 신증으로 밝혀져 있다. 인물 속에는 효자 · 열녀가 포함되어 있다. 군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특히 강조된 내용은 연혁 · 성씨 · 산천 · 역원 · 고적 · 인물 등이다. 연혁에서는 시대에 따른 각 군현의 지명 변화, 행정구역의 변천 과정 등을 밝히고 있다. 성씨는 토성(土姓) · 내성(來姓) · 속성(續姓) 등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으며, 역사상 유명한 학자 · 고승 · 충신 · 무장 · 효자 · 열녀 등을 다룬 인물조와 관계가 깊다.
산천조는 명산 · 하천 · 바다 · 호소 · 나루터 등의 위치를 읍을 기준으로 거리와 방향을 기록하였으며, 시문으로 과거의 경관을 묘사하였다. 역원제와 봉수제는 왕명의 전달, 긴급 군사 정보의 송부, 공무 여행자와 관물 수송 등 봉건 전제군주제 하에서 행정상의 중추신경 구실을 했던만큼 매우 중요시되었다. 봉수와 역원의 위치는 읍을 중심으로 방위와 거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역은 찰방역과 일반역으로 나누었다. 찰방역의 경우 그 소속 역명을 열거하였으며, 주요 역원은 그 시설과 연혁 등이 기술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성편(集成編)으로 속에 실린 지도와 함께 조선 말기까지 큰 영향을 끼친 지리지이다. 이 책은 지리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 · 경제 · 역사 · 행정 · 군사 · 사회 · 민속 · 예술 · 인물 등 지방 사회의 모든 방면에 걸친 종합적 성격을 지닌 백과전서식 서적이다. 따라서 조선 전기 사회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료로서 여러 학문에서도 중요한 고전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세종 때의 지리지가 지녔던 장점인 토지의 면적 · 조세 · 인구 등 경제 · 군사 · 행정적인 측면이 약화되고, 인물 · 예속 · 시문 등이 강화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어, 1906년 후지가미(淵上貞助)가 활판본 A5판으로 인쇄하였고, 1912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활판본으로 간행한 바 있다. 1960년대에는 서울대학교소장본을 바탕으로 한 영인본이 동국문화사에서 나왔으며, 1969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