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 산의 능선이 낮아져 말안장의 움푹 들어간 것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고갯길이다. 고개, 재, 현, 치, 티 등 다양한 용어로 불렸다. 단층선을 따라 발달하거나 습곡작용이나 암석이 차별 침식을 많이 받은 부분에 발달한다. 영은 일반적으로 지역 또는 국가 간의 경계가 되기 때문에 정치·군사적으로 중요하다. 또 고개의 양쪽을 연결하는 교통로 혹은 문화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고갯길 부근에 상업 요지의 취락들이 많아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요시되었다. 최근에는 영 밑으로 곳곳에 터널이 생겨나 영의 기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영은 단층선을 따라 발달하거나 습곡작용을 받아 낮아진 곳, 또는 암석이 차별침식을 많이 받은 부분에 발달한다. 영은 일반적으로 분수계(分水界)를 이루며, 영의 양쪽에는 낮은 골짜기가 길게 발달한다. 따라서 예로부터 이러한 양쪽 골짜기를 연결하는 영을 중심으로 교통로가 발달하였다.
영은 현(峴) · 치(峙) · 점(岾) · 항(項) 등 한자 용어와 고개 · 재 · 목 · 퇴 · 티 등 순수한 우리말 용어로 다양하게 불린다. 여러 가지 용어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영’이며, 차령(車嶺) · 마천령(摩天嶺)처럼 산맥 이름을 대표하는 경우도 있다.
‘치’는 고개 · 재 등과 같은 의미로 통하는데, 관북지방과 영남지방에 이러한 지명이 많이 분포한다. 치 자체가 고개를 의미하기 때문에 영남지방에는 울치(蔚峙) · 율치(栗峙) 등 하나의 접미어로 이루어진 지명이 사용된다. 그에 비하여 관북지방에서는 후치령(厚峙嶺) · 주치령(走峙嶺) 등 고개를 의미하는 용어가 중복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점’은 현재 거의 소멸된 지명인데, 문경새재를 예전에 초점(草岾)으로 부른 예가 있다. ‘항’은 안부를 의미하는 말로서 그리 높지 않은 고개에 많이 붙여진다.
한반도는 높은 산지가 대부분 북동부에 분포한다. 따라서 척량산맥(脊梁山脈)인 낭림산맥과 태백산맥, 그리고 개마고원 일대에 높은 고개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서남부지방에는 대부분 낮은 고개들이 분포한다.
개마고원은 평안북도 동부지방에서 두만강 상류에 이르는 광대하고 높은 고원이다. 해발고도 1,500m가 넘는 낭림산맥을 경계로 하여 동개마고원과 서개마고원으로 구분된다. 낭림산맥에는 아득령(牙得嶺, 1,479m) · 검산령(劍山嶺, 1,127m) 등 높은 고개가 있어 양 지역 간 교통로로 이용된다.
서개마고원에는 강계(江界)와 자성(慈城) 간의 신원령(新院嶺, 1,011m), 강계와 희천(熙川) 간의 적유령(狄踰嶺, 969m), 덕천(德川)과 희천 간의 사일령(社日嶺, 467m) 등이 있다.
동개마고원의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발달한 함경산맥(咸鏡山脈)은 동해안까지 뻗어 있기 때문에 해안지방에서 내륙지방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드문 편이다. 대표적인 고개로는 부전령(赴戰嶺, 1,445m) · 황초령(黃草嶺, 1,290m) · 후치령(厚峙嶺, 1,335m) · 함관령(咸關嶺, 1,837m) 등이 있다.
함경남도와 함경북도의 경계가 되는 마천령산맥에는 남설령(南雪嶺, 2,150m) · 마천령(873m) · 허항령(虛項嶺) 등의 고개가 있다. 남설령 부근에는 길주(吉州)와 혜산(惠山) 간의 철도가 놓여 있다.
랴오둥 방향의 산맥에 속하는 관서지방 산맥들은 높은 낭림산맥에서 갈라져 서쪽으로 갈수록 점점 고도가 낮아질 뿐만 아니라 안부에 의하여 끊어진다. 해서지방의 대표적인 고개는 멸악산맥에 있는 자비령(慈悲嶺)이다.
태백산맥은 한반도의 동쪽에 치우친 척량산맥으로서 함경남도와 강원도의 경계가 되는 황룡산(黃龍山, 1,268m)에서 시작하여 부산의 다대포(多大浦)까지 연속되는 긴 산맥이다. 태백산맥의 북부에는 해발 1,000m 이상 고산준령들이 연이어 솟아있고, 영남지방에 속하는 남부에는 해발 800m 내외의 산들이 나타난다.
태백산맥은 영서지방과 영동지방 간에 교류를 막는 지형적인 장애가 되어왔다. 그러나 추가령(楸哥嶺, 752m) · 철령(鐵嶺, 685m) · 도납령(道納嶺, 661m) · 기대령(旗垈嶺, 824m) · 추지령(秋地嶺, 645m) · 단발령(斷髮嶺, 824m) · 내무재령(內務在嶺) · 진부령(陳富嶺, 529m) · 대간령(大間嶺, 647m) · 미시령(彌矢嶺) · 한계령(寒溪嶺, 935m) · 선자령(仙子嶺, 1,297m) · 대관령(大關嶺, 862m) · 임계령(臨溪嶺) · 죽치(竹峙) · 울치(蔚峙) · 성법령(省法嶺) · 추령(秋嶺) 등의 안부가 발달하여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태백산맥의 동쪽 지방을 영동(嶺東)이라 하고, 서쪽 지방을 영서(嶺西)라고 부르는 것은 대관령을 기준으로 붙인 지명이다. 그만큼 대관령은 태백산맥에서 교통량이 많고 중요한 고개였다.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대관령의 교통량은 급증하였고, 동해고속도로의 건설과 설악산국립공원의 개발을 계기로 강릉에 수렴되는 영동지방의 교통량은 모두 대관령을 통하고 있다.
철령은 대관령과 함께 조선시대에 중요한 교통로였다. 이 고개는 서울-철원-회양-안변-함흥으로 연결되는 북로(北路)의 요지였으나 경원선(京元線) 개통 이후 추가령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교통량이 감소하였다.
설악산국립공원의 개발에 따라 1970년대부터 중요성이 높아진 고개는 한계령이다. 영서지방 북부의 인제와 영동지방 북부의 양양을 잇는 이 고개는 관광객 수송, 수산물 운송, 문화교류 외에도 전략적인 면에서 대관령 다음으로 중요한 고개이다.
소백산맥은 주맥이 1,000∼1,500m의 고도를 유지하는데, 태백산맥에서 갈라지는 부분부터 속리산까지는 서쪽으로 뻗어 있고 1,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들이 연속된다. 그러나 속리산부터 산맥의 방향이 남쪽으로 바뀌면서 추풍령(秋風嶺, 200m)까지는 고도가 차츰 낮아진다. 추풍령 아래에서 갑자기 고도가 높아진 소백산맥에는 황학산(黃鶴山, 1,111m) · 덕유산(德裕山, 1,594m) · 지리산(智異山, 1,915m) 등의 고봉들이 솟아 있다.
소백산맥에는 고대로부터 죽령(竹嶺, 689m) · 계립령(鷄立嶺) · 새재(641m) 등의 교통로가 열렸는데, 영남지방은 새재, 즉 조령의 남쪽 땅이라는 뜻에서 연유한다. 소백산맥의 주요 고개로는 죽령과 새재 외에 모래재 · 버티재 · 저수재 · 벌재 · 여우고개 · 이화령(梨花嶺, 548m) · 소리터고개 · 오로재 · 율치 · 추풍령 · 우두령 · 주치령 · 지경령 · 월암령 · 육십령(六十嶺, 734m) · 매치 · 팔량치(八良峙, 513m) 등이 있다. 『택리지(擇里志)』에서 이중환(李重煥)은 죽령 · 새재 · 육십령 · 팔량치 등을 대령(大嶺), 나머지 고개들을 소령(小嶺)이라고 하였다.
소백산맥의 고개 중 가장 역사가 오랜 것은 계립령과 죽령이다. 삼국시대 초기에 개척된 이들 고개는 고려시대까지 활발하게 이용되었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 계립령 부근의 새재를 개발하여 공로(公路)로 이용함에 따라 계립령의 기능은 점차 쇠퇴하였다.
근대 교통기관의 도입 이후 추풍령으로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게 됨에 따라 영남지방과 중부지방 간의 교통축은 새재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1911년에서 1915년에 걸쳐 이루어진 도로 개수사업으로 새재 부근의 이화령이 자동차 도로로 개발되었다. 그 밖에도 죽령 · 화령 · 팔량치 등이 확장되었다.
영남지방에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지맥들이 동서 방향으로 뻗어 팔공산 · 가양산 · 가지산 등 1,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곳곳에 솟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산지에는 도처에 안부가 발달하여 높은 산들이 고립된 산괴(山塊)를 이루고 있다. 중요 교통로에 해당하는 안부로는 대구분지 북쪽의 소야고개, 대구와 청도 간의 팔조령(八助嶺, 373m), 영천과 청도 간의 성현(省峴), 삼랑진과 물금 간의 작천도(鵲遷道) 등이 있다.
차령산맥은 태백산맥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고, 충청남도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서해에 이른다. 이 산맥은 대체로 고도가 낮은 편이나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장벽이 되어 왔다. 차령산맥의 대표적인 고개로는 충주와 제천 간의 박달재, 장호원과 충주 간의 임오치, 천안 입장과 병천 간의 부수문이고개, 천안과 공주 간의 차령(253m), 공주와 청양 간의 한치 등이 있다.
노령산맥은 고도가 그리 높지 않으나 호남평야와 나주평야 등 저평한 지역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양 지역 사이에 장벽이 되었다. 노령산맥의 갈재(276m)는 호남선과 호남고속도로가 통하는 요지이다.
서울 주변에는 높고 험준하지는 않으나 널리 알려진 고개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고개들은 서울의 시가지 발달에 장애가 되어왔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무악재 · 아현 · 미아리고개 등이 있다.
시외로 나가면 경원국도의 축석령(123m), 경의국도의 혜음령(惠陰嶺), 춘천 방향의 망우리고개, 과천 방향의 남태령,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 남쪽의 달래내고개 등이 유명하다. 혜음령은 조선시대 서로(西路)의 요지로 고개마루에 벽제관(碧蹄關)이 설치되었고, 달래내고개는 영남대로의 요지였으나 한동안 폐쇄되었다가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높은 산지의 허리 부분에 놓여 있는 영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거나 그 일대에서 가장 편리한 통로이기 때문에 모든 교통로는 평야지역에 있는 영의 입구로 수렴된다. 이와 같이 교통로가 결절(結節)하는 곳에는 관문취락(關門聚落)이 발달하는데, 이러한 취락들은 상이한 두 지형을 배경으로 정치 · 경제 · 교통 · 문화의 중심지로서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관문취락은 대개 그 지역의 수위도시(首位都市)로 발전한다. 영을 배경으로 발달한 취락으로는 대관령 동쪽의 강릉, 새재 북쪽의 충주와 남쪽의 상주 또는 점촌 등을 들 수 있다. 관문취락보다 규모가 작은 경우는 영하취락(嶺下聚落)이라고 부르는데, 대관령 서쪽의 하진부, 죽령 일대의 단양과 풍기, 새재 일대의 수안보와 문경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영은 일반적으로 지역 또는 국가 간의 경계가 되기 때문에 예로부터 정치 · 군사적으로 중요시되었다. 따라서 영로의 요지에는 성(城) 또는 책(柵) 등 관방을 설치하였고, 관방에는 관문을 만들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관방 가운데 유명한 곳으로 계립령 · 죽령 · 새재 · 관갑천(串甲遷) · 소야고개 · 작천 · 자비령 · 철령 · 혜음령 등이 있다. 계립령과 죽령은 각각 신라 아달라왕 3년(156)과 5년(158)에 개통된 영로이다. 이는 5세기 말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이 되었고, 옛 국경의 경관이 지금도 남아 있다.
문경새재의 관방이 유명해진 것은 임진왜란 때문이다. 임진왜란 직후 유성룡(柳成龍)의 주청에 따라 새재 어뢰동에 목책을 두르고 군사를 배치하였다. 숙종대에 이르러서는 주흘관(主屹關) · 조곡관(鳥谷關) · 조령관(鳥嶺關) 등 3개의 관문이 설치되었다. 동시에 문경읍 남쪽 20여 리 지점의 관갑천 잔도(串甲遷棧道)를 방어하기 위하여 조정에서는 고모산성(姑母山城)을 보수하였다.
대구 북쪽의 소야고개에는 제2방어선을 두어 가산성(架山城)을 쌓았고, 물금(勿禁)과 삼랑진 사이의 작천 잔도(鵲遷棧道)에는 작원관(鵲院關)을 설치하여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는 제1방어선을 구축하였다.
또 관문에는 대개 기찰(譏察)이 배치되어 통행자를 검색하였다. 새재의 관문, 작원관 등과 유사한 기능을 가졌던 곳은 혜음령의 벽제관과 자비령의 절령관인데, 대륙으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여 설치된 관방들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영의 기능은 중요하다. 고대로부터 영로 부근에는 각지의 상인들이 집결하여 상업 요지로 발달한 취락들이 많은데, 영서지방의 대화 · 횡성, 죽령 일대의 풍기, 새재 일대의 충주 · 점촌, 화령 일대의 보은 · 상주, 추풍령 밑의 김천 등이 좋은 예이다. 이곳에서는 해안지방의 어염(魚鹽), 산간지방의 임산물, 평야지대의 곡물과 가축이 교역되었다.
영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중요시된다. 일반적으로 산맥은 방언 · 가옥구조 · 생활양식 등 문화권 설정에 있어서 자연적인 경계를 이룬다. 그러나 영로는 이러한 제약을 완화시켜주는 통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산맥에 의하여 갈라지는 양 지역 간의 문화교류를 촉진시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죽령 북쪽의 단양과 남쪽의 풍기, 화령 동쪽의 상주와 서쪽의 보은, 팔량치 동쪽의 함양과 서쪽의 운봉은 예로부터 혼인 관계, 주민의 이동, 기술과 정보의 교환 등 문화교류를 통하여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해 왔다.
산맥은 지역 간의 자연적인 장벽을 이루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정치적 또는 행정적 경계로 이용된다. 그러나 산맥을 가로지르는 영은 산맥의 양편에 있는 주민들을 정치 · 경제 · 문화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고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영 밑으로 곳곳에 터널이 생겨나 영의 기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