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

인문지리
지명
우리 나라의 북서부에 위치하는 도.
정의
우리 나라의 북서부에 위치하는 도.
개관

동쪽은 낭림산맥을 경계로 함경남도와 접하고, 서쪽은 황해, 남쪽은 평안남도와 접하며, 북쪽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만주지방과 마주보고 있다. 동단은 후창군 동흥면 고읍동으로 동경 127°38′, 서단은 용천군 신도면마안도(馬鞍島)로 동경 124°11′, 남단은 선천군 남면 신미동납도(蠟島)로 북위 39°15′, 북단은 자성군 중강면 중덕동으로 북위 41°48′이다.

중국과의 국경지역에 위치해 예로부터 국방상 제일의 요충이 되어왔으며, 대륙과의 문물교류의 관문으로서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남북길이 약 280㎞, 동서길이 약 300㎞, 면적 2만 8442.9㎢로 전국토의 12.9%에 해당하며 함경남도 다음으로 넓은 도이다. 인구는 193만 987명(1943년 현재)이며, 인구밀도는 86인/㎢이다. 1시 19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청 소재지는 신의주시 미륵동이다.

연혁

이 지역은 평안남도와 함께 단군성조(檀君聖祖)의 창업의 땅으로, 기자조선을 거쳐 서기전 194년에는 위만(衛滿)이 차지했고, 그의 손자 우거(右渠) 때(서기전 108년) 한무제(漢武帝)의 침략을 받아 이른바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樂浪郡)이 되었다. 낙랑군은 그뒤 약 400년간 지속되다가 313년(미천왕 14)에 고구려에 멸망되었다.

그 뒤 고구려는 수도를 압록강 중류에 위치한 통구(通溝) 부근에서 대동강 연안의 평양 근처로 옮기고 영토를 사방으로 확대시켜 국세(國勢)를 내외에 떨쳤다. 그 뒤 668년(보장왕 27)에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구 영토의 서부지방은 당나라의 영역에, 동부지방은 발해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후 청천강 이북의 평안도지방은 패서도(浿西道)·북계(北界)·서북면(西北面) 등으로 불리고, 영유권도 대륙세력의 변동에 따라 결정되었다. 10세기초에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하게 되자 북진책(北進策)의 첫 단계로 박천(博川)·희천(熙川)지방을 수복해 서계(西界:西北面)를 삼았고, 991년(성종 10)에 요나라의 1차침구(侵寇)가 있자 서희(徐熙)의 외교적 성과로 장흥(長興 : 지금의 태천)·흥화(興化 : 지금의 의주 동쪽)·곽주(郭州 : 지금의 정주군 곽산면)·구주(龜州 : 지금의 구성)·안의(安義 : 지금의 정주)·선주(宣州 : 지금의 선천) 등을 평정하고 여섯 성을 쌓아 강동육진(江東六鎭)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도의 동북부 지역은 대부분 여진족(女眞族)들의 거주지로 있었다. 현종 때에는 도의 대부분이 북계(北界)에 속했으나 1269년(원종 10)에 원나라의 동녕부(東寧府)로 들어가 자비령(慈悲嶺)을 국경으로 삼았고, 1290년(충렬왕 16)에 다시 환원되었으며, 1388년(우왕 14)에는 서해도(西海道)에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조는 미수복지로 남아 있던 동북부의 산악지대를 토벌했으며,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 당시 서북면으로 부르던 지방을 평안도(平安道)로 고치고 관찰사를 두었으며 평양에 영(營)을 두었다.

압록강 연안의 개척에 있어서는 두목리(豆木里)에 이주(理州 : 지금의 초산)를 신설하고 갑산군(甲山郡)에 속했던 여연촌(閭延村 : 지금의 중강진 부근)에 여연군을 두었으며, 세종 때에 이르러 여연군의 일부를 나누어 무창(茂昌)·자성(慈城)·우예(虞芮) 등 3군을 만들어 4군을 둠으로써 압록강 이남의 땅을 완전히 우리 나라 영토 안에 들게 하였다.

조선시대 말기 1895년(고종 32)에 23부제가 실시됨에 따라 서부는 의주부(義州府), 동부의 대부분은 강계부(江界府)의 관할로 되었으며, 1896년에 13도제가 실시되어 평안북도가 되었다.

이 때 치소(治所)를 정주로 옮겼다가 후에 다시 영변으로 옮기고 21군(의주·강계·정주·영변·선천·초산·창성·구성·용천·철산·삭주·위원·벽동·가산·곽산·희천·운산·박천·태천·자성·후창)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곽산·가산(嘉山) 등 2군이 폐지되었고, 1945년 광복 당시 1시 19군 10읍 163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연환경

[지 형]

이 지역의 대부분이 시생대(始生代)의 선캄브리아기에 속하는 회색화강편마암(灰色花崗片麻岩)으로 되어 있으나 변질수성암(變質水成岩)도 산재한다. 초산·만포진·자성군에는 조선계(朝鮮系) 암석이 분포하며, 초산군 초산면·서면 등의 압록강 연안과 자성군의 남부, 신의주의 남부에는 상부경상계지층이 나타난다.

강계군의 남서부에는 하부경상계지층이 산재하며, 자성군 일대와 위원군 일부에서는 백악기(白堊紀) 지층도 발견된다. 신생대(新生代) 제3기의 화강암층은 각처에 널리 분포하고, 서한만(西韓灣)으로 흐르는 여러 하천과 압록강 하구의 삼각주 등지에는 제4기 충적층(沖績層)이 발달되어 있다.

운산·창성에 분포하는 화강암과 편마암은 광산물과 관련되어 운산·대유동 등의 금광이 유명하다. 그리고 묘향산맥 북록의 구장(球場) 일대는 평안남도에서 계속되는 캄브리아·오르도비스기의 석회암지대로서 특유한 지형을 발달시킨다.

이 도는 지형적으로 보아 한반도의 북부를 달리는 묘향산맥과 함경산맥을 경계로 해 북서쪽으로 기울어진 경동지괴(傾動地塊)의 일부이다. 따라서 도내에 있는 강남산맥·적유령산맥·묘향산맥의 주향구조선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빗살모양을 이루고 하천의 방향도 동일하다.

적유령산맥을 분수령으로 해 자성강(慈城江)·독로강(禿魯江)·충만강(忠滿江) 등은 북류해 압록강으로 유입되고, 청천강·대령강(大寧江)은 서남류하여 서한만으로 들어간다. 이와 같은 지세로 볼 때 크게 4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연안지역은 압록강·삼교천(三橋川) 어구에서 남쪽으로 천두산(天頭山, 667m)·심원산(深源山, 567m)을 거쳐 청천강 하류의 운전(雲田)을 연결하는 이서(以西)지역으로서 행정상으로는 용천군·철산군·선천군·정주군 등에 해당된다.

서한만 연안에는 달천강(撻川江)·동래천(東萊川)·사송천(泗松川) 등의 하천에 의한 비옥한 충적평야가 비교적 넓게 발달하고 있다. 해안선은 약 355㎞로 철산반도·선천만·가산반도 등의 굴곡이 있으나 근래에 간석지의 간척사업과 염전개발로 경관이 바뀌어가고 있다.

서한만에는 크고 작은 172개 섬이 흩어져 있는데, 이 중 유인도는 신미도(身彌島, 52.9㎢)·가도(椵島, 19.3㎢)·신도(薪島, 6.5㎢)·탄도(炭島, 6.9㎢) 등 14개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압록강 사면지역은 행정상 의주·삭주·창성·벽동·초산·위원의 6개 군이다. 압록강은 총길이 790㎞인 우리 나라 제1의 강으로서 삼교천·충만강 등 24개의 지류를 합쳐 서류해 황해로 유입하는데, 강남산맥이 압록강편으로 경사되어 강남산맥에서 발원하는 지류들이 많다.

삼교천(일명 書狀江)은 천마산(天摩山, 1,169m)에서 발원해 상류에서는 관서(館西)·영삭(寧朔)·고관(古館) 등의 분지에 넓은 평야를 발달시키고, 하류에서는 삼각주를 이루어 신의주평야를 전개시킨다. 충만강은 동림산(東林山, 1,165m)에서 발원해 압록강 사면을 북류하며 소지류들과 합류해 압록강으로 유입하는데, 연안에 깊고도 좁은 대상(帶狀)의 작은 평야를 발달시켜 주민의 중요한 거주지이자 생산지대가 된다.

셋째, 자강고원지대는 압록강 상류지역으로서 행정상으로는 자성·위원·강계의 3군에 해당한다. 한국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개마고원의 서단(西端)으로서 일반적으로 높고 험준한 산악이 중첩되어 고원지대를 이룬다. 동쪽에는 와갈봉(臥碣峰, 2,262m)·희색봉(稀塞峰, 2,185m) 등 2,000m 이상의 높은 산지도 있지만 대체로 900m 내외의 고원상지세를 이룬다.

하천은 자성강·독로강 등이 북류해 압록강으로 유입하며, 유역에는 깊은 계곡이 발달되어 화전민의 거처로 이용된다. 평야는 강계분지와 독로강의 범람원에 좁게 발달한다.

넷째, 청천강 유역은 적유령산맥의 남쪽으로서 행정상으로는 박천·영변·희천·운산·태천·구성 등의 6군에 해당한다. 북부의 고원지대는 서남쪽으로 경사져서 곳곳에 단층과 분지가 발달했고, 저산성 산지를 이루며 낮아져 말단부는 연안지대에 접한다.

청천강은 지류인 대령강·구룡강(九龍江)과 더불어 침식·개석이 활발해 유역내에 박천평야와 같은 비교적 넓은 평야와 영변·구성·운산·태천 등의 분지를 형성하였다. 이들 각 분지의 중심에는 지방 소도시가 발달되었다. 묘향산맥 서북부에는 카르스트지형의 대표적인 동룡굴(蝀龍窟)이 있다.

[기 후]

한반도의 북부에 위치하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대륙과 인접하고 있어 대륙성기후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 같은 위도상의 다른 지역보다 기온의 연교차가 심하며, 특히 자강고원지대는 지형적인 원인과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어느 곳보다도 춥다. 그 중에서도 중강진은 1월 평균기온 -21.1℃, 8월 평균기온 22.8℃로 연교차가 43.9℃에 달해 우리 나라의 한극(寒極)이라 불린다.

청천강 유역은 고원과 저지대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자강고원에 비하면 훨씬 온난하다. 연안지방은 도내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으로 용암포의 경우 1월 평균기온 -9.7℃, 8월 평균기온 24℃로 연교차는 34℃이다.

청천강 상류에서 구룡강 유역에 걸친 지역은 연강수량이 1,300㎜가 넘는 3대 다우지(多雨地)에 속하는데, 여름철에 습윤한 남서계절풍이 적유령산맥에 부딪쳐내리는 지형성강우형태를 띤다. 특히 구룡강 상류의 운산은 1,323㎜, 북진(北鎭)은 1,669㎜로 국내 최다우지이다. 그러나 남서계절풍의 영향을 적게 받는 중강진은 연강수량 818㎜로 소우지역에 속한다.

강우의 연중분포를 보면 6∼8월의 3개월에 60% 정도가 집중되어 하천이 범람하는 현상은 다른 지방과 비슷하다. 계절에 있어서는 겨울이 길다. 자성의 경우 초상일(初霜日)은 9월 28일, 종상일(終霜日)은 5월 1일이며, 초빙일(初氷日)은 10월 9일, 종빙일(終氷日)은 4월 27일이다.

인문환경

[인 구]

1907년의 인구는 60만 119명으로 전국인구의 6.1%에 해당되었으나 1913년 112만 356명, 1926년 139만 4222명, 1935년 161만 7785명, 1943년 193만 987명으로 증가하여 전국인구의 7.27%를 차지한다.

1943년 현재 주민의 구성은 한국인 186만 9694명, 일본인 3만 608명, 중국인 3만 676명, 기타 9명으로 일본인과 중국인이 거의 동일한 수준이며,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 총수의 약 40%가 이 도에 거주했는데 이들의 대부분이 중국인으로서 이 곳이 중국과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읍부인구(邑部人口)는 20만 552명으로 신의주시의 인구 12만 7535명을 합하면 도시인구가 약 17%를 차지한다. 인구밀도는 68인이며, 서부의 평야지대와 철도의 요충지인 강계분지에 많이 밀집되어 있다.

[취 락]

고구려 멸망 이후 여진족·거란족들과 투쟁하는 변경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개인이나 가족단위로는 살 수 없어 취락을 형성하고, 집단의식의 테두리 안에 개인이나 가문의식을 용해하였다. 따라서 집단의식으로 일궈놓은 삶의 터전에 대해서는 행정상·권력상의 간섭을 배제하였다.

취락체제는 부족·씨족 단위로 이루어졌고, 집단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전 구성원의 성인 남자에게 반무사(半武士)의 의무가 주어졌다. 그러므로 가족단위보다는 가문·마을 단위의 공동체의식이 강하다.

산업

1942년의 산업 총생산액은 2억9050만 원으로 농축산업 47.6%, 임업 15.2%, 수산업 2.6%, 광업 12.7%, 공업 21.9% 등이다. 산업별 인구구성은 농업 67.7%, 수산업 0.6%, 교통업 1.5%, 광업 2.3%, 공업 3.6%, 상업 5.2%, 공무 및 자유업 5.5%, 기타 15.6% 등이다.

조선시대부터 호남지방 주민들을 이주시켜 개척에 힘을 기울였으나 교통이 불편하고 기후가 혹독한 관계로 발전이 늦었다. 근래에 교통의 발달과 토지개량, 임산자원·지하자원·전원의 개발로 공업이 발전하였다.

[농 업]

총경작지는 도 면적의 15.2%에 해당하는 43만이고, 이 중 논이 23%, 밭이 77%이며, 밭 중에 화전이 10만 6000㏊로 함경남도 다음으로 많다. 농가 1호당 경지면적은 1.96㏊로 전국 5위이나 화전을 합하면 2.53㏊로 전국 1위이다.

논은 황해 연안지방과 청천강 유역에 넓게 분포하며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다. 밭은 구릉지가 많은 중부지방에 많으며 화전은 자강고원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조·옥수수·대두·감자 등이다.

쌀은 연생산량이 150만 석을 넘지 못하나 북부지방에서는 황해도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었다. 조는 옥수수·대두·감자와 함께 평안북도 4대농산물로서 동북부산지와 압록강사면에서 많이 산출되며, 연생산량이 약 50만 석에 달해 전국에서 2·3위를 차지하였다.

옥수수의 주산지는 자강고원의 화전과 의주·삭주지방으로 연생산량이 약 43만 석으로 전국 총생산량의 53.5%를 차지하였다. 감자는 압록강사면과 자강고원지대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대두는 도내 각처에서 간작·혼작으로 재배되며 연생산량이 35만 석을 넘어 전국에서 2위(11%)를 차지하였다.

농가의 부업으로는 양잠(養蠶)과 작잠(柞蠶 : 멧누에)이 있다. 양잠은 영변을 중심으로 한 청천강 유역에서 성하며, 작잠은 압록강사면의 여러 지방에서 떡갈나무잎을 사료로 이루어지는데 작잠사를 수출하기도 한다. 가축으로는 약 18만 두의 소가 압록강사면지방에서 사육되고 있으며, 돼지는 청천강 유역의 농업지대에서, 말은 자강고원지대에서 주로 사육된다.

[임 업]

임야면적은 도 면적의 73%인 234만 900㏊로 전국 총임야면적의 37.6%를 차지한다. 그 중 입목지(立木地) 126만 1000㏊, 산생지(散生地) 60만 6000㏊, 무입목지 33만 5000㏊, 기타 화전 등이다. 자강고원과 압록강 연안 일대는 이른바 압록강 삼림지대로서 원시 냉대림의 보고를 이룬다.

주산지는 독로강을 비롯한 압록강의 여러 지류 유역인데, 특히 후창·강계의 접경에 위치한 직령(直嶺) 삼림은 미림(美林)으로서 삼림연구지로 주목되며, 그 서부의 오가산(五佳山) 밀림과 북방의 후창의 남사수(南社水) 밀림은 홍송(紅松)의 산지로 유명하다.

임산물은 주로 침엽수인 홍송·삼송(杉松)·단목(檀木)·낙엽송 등의 원목이다. 벌채된 원목은 1939년까지는 압록강물을 이용해 뗏목으로 하류의 만포진(滿浦鎭)이나 신의주에 수송해 그곳에서 제재·펄프·성냥공업의 원료로 이용했으나, 수풍댐이 건설되고 만포선이 개통된 이후로는 위원·만포진·강계·중암(仲巖)·희천 등 원산지 부근에서 집산, 가공하게 되었다.

[수산업]

서해안은 리아스식해안으로 굴곡이 많고 섬들이 산재해 해안선이 비교적 길며, 깊이 70m 내외의 대륙붕 곳곳에 뱅크(bank : 작은 융기)가 형성되어 있고, 황해의 난류가 북상하며, 압록강·청천강 등 여러 하천의 유입으로 어류에게 많은 먹이를 공급해 어업발달의 조건이 유리하다.

주요 어류는 조기·갈치·새우·뱅어[白魚]·가자미·광어·도미·숭어 등이다. 특히 봄철에 신미도·대화도·원도 부근은 조기의 산란장(産卵場)으로서 어군(魚群)이 모여들어 조기어장이 성황을 이루어, 전라도의 위도(蝟島), 황해도의 연평도(延坪島)와 함께 3대 조기어장에 속한다.

어업의 근거지는 용암포·다사도(多獅島)이다. 연안에는 간석지가 많고 일조율(日照率)이 60%가 넘는 청명한 날씨로 인해 남시(南市)를 중심으로 천일제염이 발달하였다.

[광 업]

이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화강암·편마암류 속에 금·흑연·구리·아연·중석 등 많은 광물이 부존되어 있으며, 지형의 침식으로 곳곳에서 노출되어 도 전체가 하나의 광구(鑛區)처럼 되어 있다. 1944년 도내 총광구수는 1,985구이며, 산업 총생산액의 12.8%를 차지한다.

특히 금은 적유령산맥 중의 운산군·창성군·구성군에 걸쳐 산금지대(産金地帶)를 이룬다. 우리 나라 최대의 금광인 운산광산(雲山鑛山)을 비롯해 대유동(大楡洞)·신연(新延)·삼성(三成)·문례(文禮)·천마(天磨)·은곡(銀谷)·삼태(三泰) 등 유명한 광산이 많다. 이 가운데 운산·대유동 광산은 연산출량이 1,300㎏(1932)을 넘는 동양 굴지의 금광이다.

흑연의 경우 인상흑연(鱗狀黑鉛)의 매장량이 많고 산출량도 세계적이다. 인상흑연의 주산지는 강계·초산·삭주 등지이며 토상흑연은 철산군에서 산출된다. 구리는 후창의 동점(銅店)에서, 철광석은 자성에서 각각 산출되며 납·아연·은 등은 금과 함께 산출되는 경우가 많다.

석탄은 평안남도의 북부탄전이 영변까지 연장되어 있어 강계탄전의 장래가 유망하며, 서부 해안지대에서는 토탄이 많이 산출된다. 이 밖에도 삭주군의 은곡광산에서는 구리·우라늄·코럼프석, 강계군의 여러 곳에서는 남정석(藍晶石), 의주군에서는 석면(石綿)이 각각 산출된다.

동력자원으로서 삭주군 수풍면 수풍동에 건설된 수풍댐은 8년간 2억 원의 자본과 연인원 500만 명을 동원해 완공한 것이다. 이 댐으로 압록강을 막아 345㎢의 저수지를 형성했고, 물의 낙차를 이용해 64만㎾의 전력을 생산하는 우리 나라 최대의 발전소이다. 이 곳에서 다사도·평양·남포 등지로 송전하여 서북공업지대의 주요 동력원이 된다.

[공 업]

지하자원과 동력자원이 비교적 풍부하고 임산자원·농산자원의 혜택을 입어 근대공업이 급속도로 발전되었다. 신의주에는 제재·제지·제련·알코올제조업, 양시(楊市)에는 경금속·미강유(米糠油), 만포진에는 제지, 용암포에는 제철, 청수읍에는 카바이드공업 등이 각각 발달하였다.

3대공업지구로는 압록강 하류의 다사도·신의주공업지구, 수풍발전소가 있는 청수공업지구, 압록강 중·상류의 강계·만포진공업지구를 들 수 있다. 전통적인 가내공업으로는 양잠이 성한 희천·태천·영변·박천 등지의 명주(明紬)와 박천군 용계면의 유기제조가 유명하다.

[상 업]

국경지방에 위치해 대륙과 문물교류가 많았으며, 주민들은 진취성이 강하고 상업활동이 활발하였다. 1949년 도내 상업가구수는 1만 5583호, 상업인구는 9만 7871명으로 도내 총인구의 5.1%를 차지한다. 일부 보부상이 농촌을 누비고 다니거나 상설점포가 있었지만 상업활동은 주로 정기시장에서 이루어졌다.

정기시장의 수는 1911년의 43개에서 1921년 56개, 1930년 91개, 1941년 118개로 증가되었다. 1941년의 상품거래액은 5262만 9000원에 달했으며, 거래상품별 비율은 축산물 32.8%, 농산물 24.0%, 수산물 7.4%, 직물 16.9%, 기타 19% 등으로 1차산업 상품이 3분의 2를 차지한다.

재래식 정기시장은 읍·면 소재지에 고르게 분포했으나, 신식 사설시장은 신의주와 용천군 부라면 이도포(耳島浦)에 어채시장(魚菜市場)이 있었고 신의주는 매일, 이도포는 5∼11월에 개시(開市)하였다.

무역은 조선시대의 조공무역(朝貢貿易)과 더불어 정기적인 호시장(互市場)이 있었으나 1646년(인조 24)부터 의주 중강(中江:압록강구의 蘭子島)에서 관무역(官貿易)이 봄·가을에 열리게 되어 중강후시(中江後市)라는 밀무역이 성행하였다. 이후 용만(龍灣)·개성상인들이 사행(使行)에 동참해 책문후시(柵門後市)가 성행하였다.

책시(柵市)의 주요 수출품은 은·삼·종이·명주·모시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비단·당목·약재·문방구 등이다. 근대적인 무역은 1903년 신의주와 용암포의 개항, 1941년 다사도의 개항 및 만주와의 철도접속지에 특설개시장이 생기면서 활발해졌다.

신의주의 경우 1939년의 수출액은 7402만 3000원, 수입액은 4637만 5000원으로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그 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모든 것이 마비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1945년 현재 금융기관은 은행지점 11개소, 금융조합연합회의 단위조합 41개소, 무진회사(無盡會社) 1개소, 동양척식주식회사 지소 1개소 등이 있으며 농촌자금의 유통에는 대금업(貸金業)과 계(契)가 큰 구실을 하였다.

교통

도로의 총연장은 1943년 현재 4,127.8㎞(국도 1,710.6㎞, 지방도 2,417.2㎞)로 반 이상이 포장, 개수되었다. 남북을 종관하는 1급국도 의주공로(義州公路 : 서울∼신의주간)는 서부 연안지방을 경의선(京義線)과 거의 병행하는데, 이 공로는 중국과 내왕하는 국제도로로서 역사상 사신왕래·문물교류에 큰 몫을 해왔다.

또한 남해∼초산간 국도는 평안남도 영원방면에서 묘향산맥을 넘어 도의 중앙부를 지나 초산에 이르며, 마산∼중강진간 국도는 장진에서 낭림산맥을 넘어 도의 동부를 북상해 중강진에 이른다. 이상 3개의 종관도로 사이를 2급국도 3선이 통해 보충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를 횡단하는 동서 공로로는 의주∼함흥간의 도로와 위원∼장진간의 국도 등이 있다. 도내 각 군청 소재지와 인접한 도의 주읍(主邑)을 연결하는 국도·지방도가 있고, 국경지역에는 국경도로가 있어 도로교통은 그리 불편하지 않다.

또한 이 도의 교통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은 철도로서, 동부·중부·서부를 남북으로 달리는 3개의 노선이 있다. 서부에는 경의선이 연안 평야지대를 관통하는데 종착역인 신의주에서 압록강철교를 건너 중국의 안둥(安東)과 연결되므로 유럽·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철도라 할 수 있다.

중부를 달리는 평북선(平北線)은 경의선의 정주역에서 분기되어 구성·삭주를 지나 수풍·청수에 도달하는데 연안지역의 개발과 수력개발에 크게 기여한다. 동부를 종관하는 만포선(滿浦線)은 경의선의 서포역(西浦驛)에서 나누어져 북상해 청천강 유역의 구장(球場)·희천과 독로강계곡의 강계를 지나 만포진에 이르며, 여기서 다시 만주의 동변도(東邊道)의 철도종점인 집안(集安)과 연락된다.

만포선은 동부 벽지의 동맥선으로 동부지방의 임산·지하자원 개발에 큰 구실을 한다. 이 밖에도 신의주에서 다사도에 이르는 다사도선, 경의선의 맹중리역(孟中里驛)에서 박천에 이르는 박천선 등이 있다.

한편 수운(水運)은 약 5개월간의 결빙기간이 있어서 활발하지 못하다. 압록강 상류의 혜산진까지는 목선이 운항되며 신갈파진까지는 저흘수(低吃水) 프로펠라선의 운항이 가능하다. 청천강은 수량이 적어 하구에서 40㎞까지만 목선이 내왕할 수 있다.

연해교통은 연안의 지리적 조건이 불량해 미미한 정도인데, 용암포·신의주에서 남포·인천과 만주의 여대(旅大)에 연락이 있을 뿐이다. 최근에 다사도의 축항(築港)으로 유일한 부동항을 가지게 되었다.

문화·관광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서원과 서당이 있었다. 도내에는 26개의 서원이 있었으나 1868년(고종 5)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정주의 표절사(表節祠)만 남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561명이며, 군별로는 정주·박천·영변 순이다. 그러나 효종까지는 없고 현종 이후에야 급제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중앙정부의 푸대접이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서당은 신교육이 실시된 이후에도 보통학교가 설립될 때까지 남아 있었다. 1916년에 2,093개소였던 것이 3·1운동을 계기로 1922년에는 2,423개소로 증가했으나 그 뒤 점차 감소해 1934년에는 1,015개소(학동수 3만702명)로 되었다.

근대적 교육시설로는 1903년에 설립된 명신학교(明新學校)가 그 시초이다. 1941년 현재 공립초등학교 242개교, 사립초등학교 3개교, 공립중등학교 10개교(일본인전용학교 2개교), 사립중등학교 6개교(1935년) 등과 구성농업실수학교(龜城農業實修學校)·희천여자기업보습학교(熙川女子機業補習學校)·선천여자기업보습학교(宣川女子機業補習學校)·태평농업실수학교(泰平農業實修學校)·팔원여자농업실수학교(八院女子農業實修學校)·초산농잠실수학교(楚山農蠶實修學校)·선천농업실수학교(宣川農業實修學校)·중강농업실수학교(中江農業實修學校) 등이 있다.

이 지역은 산천이 아름답고 4,000여 년간 국경지대의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어 명승·고적·문화재가 많다. 문화재로는 용천군 동하면의 용천서문외석당(龍川西門外石幢), 동상면에 있는 용천다라니석당(龍川陀羅尼石幢), 용천군 읍내의 용천 구읍내석불입상·구읍내석수(舊邑內石獸), 정주군 동주면에 있는 심원사대웅전(深源寺大雄殿), 태천군 서성면의 태천 농오리산성(籠吾里山城) 등 중요한 유물·유적이 많이 있다.

명승·고적지로는 신의주시의 압록강철교, 의주군의 통군정(統軍亭)·의주 금강산, 구성군의 진남루(鎭南樓)·굴암사(窟巖寺), 태천군의 협수대(挾水臺)·산성지(山城址), 운산군의 백골산(白骨山)·고구려고분군, 희천군의 원명사(圓明寺)·봉단성지(鳳丹城址)·우농정(寓農亭)·영파정(映波亭), 영변군의 약산동대(藥山東臺)·묘향산 보현사(普賢寺)와 단군굴(檀君窟), 박천군의 주필정(駐蹕亭)·고박릉성(古博陵城), 정주군의 양성기적비(兩聖記蹟碑)·석굴암·장성유지(長城遺址), 선천군의 동림폭포(東林瀑布), 검산 망부총(望夫塚), 철산군의 서림산성(西林山城) 등이 있다.

또한 용천군의 용골산성지(龍骨山城址)·유등정폐현(柳等井廢縣), 삭주군의 연평령행성(延坪嶺行城)·삭주팔경(朔州八景), 창성군의 수풍호(水豊湖), 벽동군의 오사헌(五事軒)·탄진정(彈珍亭), 초산군의 신막종유동(新幕鍾乳洞)·백두산·영호정(映湖亭), 위원군의 도을한보(都乙漢堡)·용복사(龍福寺), 강계군의 인풍루(仁風樓)·만포진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 자성군의 여연성지(閭延城址), 후창군의 직령무림(直嶺茂林)·금강굴·오가산 천연식물원 등도 유명하다.

광복 후 변천

우리 나라 북서부에 있는 북한의 도. 동쪽은 자강도, 서쪽은 황해, 남쪽은 평안남도, 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인접되어 있다. 동단은 구장군 개화리로 동경 126°22′, 서단은 신도군비단섬으로 동경 124°19′, 남단은 신도군납도로 북위 39°16′, 북단은 벽동군 동하리로 북위 40°41′이다. 면적 1만 2575㎢로 전체 국토 면적의 약 5.7%를 차지한다. 인구는 270만 9010명(1996년 추정)이며, 도 소재지는 신의주시이다.

1949년 1월 자강도(慈江道)를 신설하면서 강계·자성·후창·위원·초산·희천 등이 자강도에 편입되었고,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시 13개의 군(향산·구장·북진·운전·곽산·동창·천마·대관·청성·염주·피현·동림·우시)을 신설해 1시 26군으로 되었다.

1954년 10월에 우시군을 분리해 자강도로 편입했고, 1967년 10월 구성군을 시로 승격했으며, 용천군의 서석리 일부와 신서리(황금평리)신도노동자구를 합해 신도군을 승격했다가 이후 용천군에 병합하였다.

1974년 5월에는 청성군의 대부분 지역을 삭주군에, 나머지 지역을 의주군에 분리·병합해 청성군을 폐지하였다. 1980년 5월에 박천군의 송도리·용흥리·덕성노동자구를 평안남도 안주군으로 편입시켰다. 1988년 7월에는 다시 신도군이 신설되었다.

행정구역은 2개의 시(신의주·구성), 23개의 군(피현·용천·염주·철산·동림·신천·곽산·정주·운전·박천·영변·구장·향산·운산·태천·천마·의주·삭주·대관·창성·동창·벽동·신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환경]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로 되어 있고 평야보다 산지비율이 높은 도이다. 그러나 80% 이상 지역이 500m 아래이며 특히 경제활동에 널리 이용되는 200m미만의 지역이 대부분이다.

도에는 자강도와 경계를 이루면서 뻗은 피난덕산맥을 비롯하여 묘향산맥·천마산맥·문수산맥 등 산맥들이 있으며, 지세는 일반적으로 북부와 동북부 지역이 높고 서쪽과 남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넓은 평야를 이룬다. 대표적인 평야는 용천벌·운전벌·박천벌 등이다.

하천은 도내에 790여 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독립하천은 27개, 5㎞ 이상 되는 하천은 260여 개, 밀물의 영향을 받는 하천은 70여 개이다. 주요 하천은 압록강·청천강·대령강·구룡강·삼교천 등이다. 또한, 북한지역에서 제일 큰 인공호수인 수풍호를 비롯하여 만풍호·대하저수지·매봉저수지·봉명저수지·운전저수지 등 50여 개의 인공호수들이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7∼9℃, 1월 평균기온은 -7.9(철산)∼-12.5℃(벽동), 7월 평균기온은 22∼24℃이다. 연평균강수량은 900∼1,400㎜로서 동창군·운산군 등 청천강·구룡강·대령강 상류 일대는 우리 나라에서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 속한다. 첫서리는 9월 하순∼11월 초순 사이, 마감서리는 3월 하순∼4월 말에 내린다. 안개는 7월에 많이 끼는데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지방은 태천·신의주·박천·의주·삭주·철산 등 바닷가와 큰 강들의 연안지대이다.

이 도는 온대북부 식물분포구에 속한다. 각이한 지형조건과 생태적 조건의 다양성으로 간석지식물부터 고산식물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고 풍부하다. 묘향산에는 약 600종의 고등식물이 있으며, 신미도에는 280여 종의 식물이 있다. 특히 신미도에는 북부일대에서 보기드문 상수리나무·동백나무·보리수나무·소사나무 등 남부계통의 식물들이 분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림은 도 전체면적의 약 65%, 그 가운데서 임목지가 85%를 차지한다. 산림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도의 동부, 창성군·벽동군·동창군·대관군·향산군 일대이다. 특히, 북동부지역은 산과일·산나물 등이 매우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에는 묘향산 자연보호구, 삭주온천 식물보호구, 신미도 식물보호구, 천마산 동물보호구, 당아산 동물보호구 등이 지정되어 있다.

[산업·교통]

주요 산업은 농업·광업·수공업인데, 운전군의 유기, 영변군의 철물 및 견적물, 태천군의 의류제품, 운산·동창군의 금채굴 등 공업의 영세성을 면하지 못했으나 광복 후에는 기계제작공업, 대규모의 중공업·경공업으로 방직·편직·식료품·생필품공업이 성하며, 기계제작공업으로는 대형굴착기·각종 공구류·농업 및 운수업에 소요되는 각종 기계들이 생산된다.

전력공업은 수력발전이 대부분인데 수풍발전소(70만㎾)·태천발전소(80만㎾) 외에도 중소규모의 발전소들이 많이 건설되었다. 채굴업은 석탄과 광물생산이 주인데, 평남북탄전 구장지구에 용등·용문·용수 등의 대규모 탄광과 20여 개의 중소규모 탄광이 있어 석탄생산량이 광복 전 18만 톤에서 400만t으로 증가되었다.

광물생산의 대표적인 것은 인회석·석회석·흑연 등의 비금속과 철·아연·납·금·등의 금속광물이다. 주요 산지는 삭주·철산·선천·태천·덕현 등지인데, 인회석은 삭주군, 흑연은 태천군에서 많이 생산된다. 화학공업은 화학섬유·화학비료를 많이 생산하며, 특히 카바이드는 광복 직후 1만 6000 톤에 불과했으나 청수화학공장이 설립된 이후 10여만 톤으로 급증하였다.

건재공업은 시멘트생산이 주를 이루며, 생필품공업은 신의주의 방직·편직·화장품·신발·종이 생산과 영변·구성·박천의 방직공업이 유명하다. 특히 신의주의 법랑칠기와 태천의 옻공예는 이 지방 특산물의 하나이다.

농업은 농산업·축산업·과수업·공예작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림은 도 넓이의 약 65%, 그 가운데서 임목지가 85%를 차지한다. 산림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도의 동부, 특히 창성군·벽동군·동창군·대관군·향산군 일대이다.

창성군·벽동군을 비롯한 도의 북동부 지역은 산과일, 산나물 등이 매우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경지면적은 광복 전의 10만 정보에서 20만 정보로 확장되었으며, 이 중 논이 40%, 밭이 50% 정도를 차지한다. 주요 작물은 벼·옥수수·콩이다.

벼는 염주·용천·정주·운전·박천 등지에서 많이 재배되고, 옥수수는 의주·영변·태천·향산·운산 등지에서 주로 재배된다. 공예작물인 담배는 정주·용천·박천·운전·선천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며, 땅콩은 의주·피현에서 주로 생산된다.

양잠업은 북한지역에서 가장 성행한다. 가축으로는 소·양·염소·토끼 등을 많이 기르는데, 벽동군은 도내 제일의 양 사육지이다. 또한 신의주·용천·동림·삭주·구성·박천·구장 등지에는 축산단지가 조성되어 닭과 오리를 많이 기른다.

과수원의 경우 광복 전에는 미미했으나 오늘날에는 창성·벽동 등의 산간지방에서 사과·배·복숭아·포도·살구 등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수산업의 주요 기지는 신의주·용암포·비단섬·쑥섬·철산·곽산·운전 등이며, 주요 수산물은 멸치·조기·삼치·전어·갈치·농어·숭어 등이다. 근해에는 천해양식과 담수양어도 발달해 바지락·굴·조개·다시마·잉어·숭어·뱀장어·초어·은어·칠색·송어 등을 양식하고 있다.

철도망은 평의선(평양∼신의주간)·평부선·만포선·다사도선(용천∼다사도간)·백마선(염주∼남신의주간)·박천선(맹중리∼박천간)·청년팔원선(팔원∼구장간)·구성선(구성∼영변간)·덕현선(남신의주∼덕현간)·용암선(구장∼용암간)·용문선(어룡∼용문간) 등이 있다.

도로망은 신의주∼신안주간, 정주―대관―청수간, 창성∼향산간, 의주-구성-영변간, 구장∼향산간, 신의주-삭주-벽동간, 운산∼맹중리간 등이 있다. 수운의 중심지는 신의주와 수풍인데, 신의주항을 이용해 압록강 하류의 섬들과 용암포·철산·애도·정주·남포·해주 사이에 화물을 수송하며, 수풍 상류에서도 의주·수진·옥강·청성 사이에 화물과 여객을 운송하고 있다. 또한 신의주·유초도·황금평·비단섬 사이에는 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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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지리』(강석오, 새글사, 1971)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노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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