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

하백원의 만국전도와 동국지도 / 동국지도 중 함경남도
하백원의 만국전도와 동국지도 / 동국지도 중 함경남도
인문지리
지명
우리 나라 북동부에 위치한 도.
정의
우리 나라 북동부에 위치한 도.
개관

동쪽은 동해, 서쪽은 낭림산맥을 경계로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남쪽은 철령(鐵嶺)을 경계로 강원도와 접하며, 북쪽은 압록강을 국경으로 중국의 만주와 맞닿아 있다.

동단은 단천군 광천면마천령(摩天嶺)으로 동경 129°04′, 서단은 장진군 동문면아득령(牙得嶺)으로 동경 126°56′, 남단은 안변군 신고산면 삼방리로서 북위 38°41′, 북단은 혜산군 보천면백두산으로 북위 42°28′이다.

이 지역은 낭림산맥·마천령산맥을 경계로 하여 인접한 주변 지역과 구분되는 산간벽지이며, 함경북도와 함께 관북(關北) 또는 북관도(北關道)로 일컬어져 왔다.

면적은 3만 1977.49㎢로 전 국토의 14.5%를 차지한다. 인구는 201만 5332명(1944년 현재)으로서 전국 총인구의 7.8%를 차지하며, 시부인구(市部人口)는 전도인구의 11.6%이다. 시부인구에 11개 읍부인구(邑部人口)까지 합하면 도시 지역 인구가 31.5%를 차지한다.

대부분 고산 지대이며 한랭하여 사람들이 살지 않는 산간벽지였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일제의 대륙 침략 전진 기지로서 교통을 비롯하여 각종 천연자원이 개발됨에 따라 공업화·도시화가 비교적 빨리 되었다. 3개 시 16개 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청 소재지는 함흥시이다.

연혁

이 지역은 원래 동예(東濊)·옥저(沃沮)의 땅이었다. 발달된 중국의 철기문화가 낙랑(樂浪)을 배경으로 관서 지방에서는 꽃을 피웠으나, 이 도는 개마고원(蓋馬高原)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낭림산맥에 막혀 문화의 발달이 다소 늦어졌다.

그 뒤 위씨조선(衛氏朝鮮)에 속하였다가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되어 북은 현도군(玄菟郡), 남은 임둔군(臨屯郡)에 예속되었다. 고구려의 끈질긴 저항으로 한사군이 쇠멸되어 미천왕 이후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었고, 진흥왕에 의하여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일시 당나라의 영토가 되었으나 699년발해가 건국되자 발해에 속하였다. 926년에 발해가 거란족에게 멸망된 뒤 오랫동안 여진족의 거주지로 방치되다가, 북진정책을 표방하는 고려의 건국 이후 1107년(예종 2)에 윤관(尹瓘)이 여진을 정벌하고 구성을 쌓아 고려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곧 금(金)나라에 되돌려 주었고, 1258년(고종 45)에 고려가 원(元)나라에 항복하여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설치되었다. 그 뒤 1356년(공민왕 5)에 쌍성총관부를 탈환함으로써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성종 때 삭방도(朔方道), 문종 때 동북면(東北面) 또는 동북로(東北路), 명종 때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공민왕 때 다시 삭방도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영흥 출신의 태조이성계(李成桂)의 경략(經略)에 의하여 세력을 확장하였고, 1433년(세종 15)에 김종서(金宗瑞)에 의한 육진을 두고 경상도 농민을 이주시켜 현범역을 확정하였다.

태종 때 영길도(永吉道)·함길도(咸吉道), 성종 때 영안도(永安道)로 불렸고, 1509년(중종 4)에는 함경도로 개칭되었다. 1895년(고종 32) 23부제 실시로 함흥부·갑산부에 속하게 되고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눔에 따라 함경남도가 되어 1부 13군으로 구성되었다.

1910년에 덕원부(德源府)가 원산부(元山府)로 개칭되었고, 1914년에 덕원·신흥·풍산 등의 3군이 신설되었으며, 1930년에는 함흥읍이 부로 승격하여 함주군(咸州郡)이 신설되었다.

1940년에는 삼수군과 갑산군의 일부를 분리, 혜산군을 신설하였고, 1942년에는 덕원군을 문천군에 병합하였으며, 1944년에는 흥남읍을 부로 승격하였다. 1945년 당시 3개 시 16개 군 10개 읍 119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자연환경

[지 형]

지세로 보아 크게 고원 지대와 평지대로 나누어진다. 백두산(白頭山, 2,744m)으로부터 소백산(小白山, 2,174m)·북포태산(北胞胎山, 2,289m)·아무산(阿武山, 1,809m)·백사봉(白沙峰, 2,099m)·두류산(頭流山, 2,309m) 및 안반덕(安班德, 1,830m)으로 이어진 마천령산맥이 함경북도와의 경계를 이루고, 형천산(衡天山, 1,463m)·희색봉(稀塞峰, 2,185m)·아득령(牙得嶺, 1,479m)·맹부산(猛扶山, 2,214m)·소백산(小白山, 2,184m)·동백산(東白山, 2,096m)·차일봉(遮日峰, 1,743m)·백산(白山, 1,837m)·병풍산(屛風山, 1, 353m)으로 이어지는 낭림산맥이 관서 지방과 경계를 이룬다.

또한, 만탑산(萬塔山, 2,205m)·후치령(厚峙嶺, 1,335m)·희사봉(希砂峰, 2,117m)·부전령(赴戰嶺, 1,445m)·북산(北山, 2,070m) 등으로 이어지는 함경산맥이 동해안과 나란히 달리고 있다.

이와 같은 산맥들로 둘러싸인 개마고원은 북으로 완만하게 경사져 있다. 개마고원의 지질은 고기(古期)의 화강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백두산 일대에는 신기(新期) 석영조면암이 분포하고 현무암의 용암대지(熔岩臺地)를 이룬다.

평지대는 동해안을 따라 좁고 길게 분포하는데, 화강암 풍화층과 충적층이 산재하여 토질은 비옥한 편이다. 산악이 중첩하여 기복이 심하고 횡단산맥이 동해로 치우쳐 급사면을 이루며 하천은 짧다.

횡단산맥을 수원(水源)으로 하여 압록강에 합류하는 고지대의 하천은 지세의 경사가 완만하여 곡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림천(佳林川)은 아무산에서 발원하여 서남류하다가 보천보(普天堡)에서 압록강으로 흘러들고, 허천강(虛川江)은 명당봉에서 발원하여 웅이강(熊耳江)과 운룡강(雲龍江)을 합류하여 별동면을 거쳐 압록강으로 유입하며, 장진강(長津江)은 소마대령(小馬垈嶺)에서 발원하여 삼포리강(三浦里江)·부전강(赴戰江)을 합류하여 신갈파진(新乫坡鎭) 하류에서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이에 반하여 동해로 유입하는 평지대의 하천은 상류 구간에서는 유속이 급격하나, 평지에 이르면 유속이 감소하여 사주(砂洲)가 많고 분류(分流)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 하천은 유량이 적어서 하천수의 이용이 불편하므로, 고지대 하천의 흐름을 동해 쪽으로 전환하여 수력발전과 관개에 많이 이용하고 있다.

화동령(樺東嶺)에서 발원한 파독천(波獨川, 南大川)은 단천읍에서 복대천(福大川)과 합류하여 동해로 유입하며, 각고산(角高山)에서 발원한 용흥강(龍興江, 橫江)은 입석천(立石川)·단속천(端屬川)·덕지강(德池江) 등과 합류하여 남쪽으로 흘러 영흥만(永興灣)내의 송전만(松田灣)으로 흘러든다. 성천강(城川江)은 금패령(禁牌嶺)에서 발원하여 동덕천(東德川)·흑림강(黑林江)을 합류하며 함흥시 일대에 넓은 사주를 형성한다.

이 밖에도 검산령(劒山嶺)에서 발원하는 금진강(金津江), 추가령(楸哥嶺)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심천강(深川江, 南大川), 검덕산(劍德山) 서쪽 산록에서 발원하는 남대천(南大川), 천의산(天依山)에서 발원하는 여위천(汝渭川) 등이 동해로 유입한다.

동해안 쪽으로 자연 호수인 석호(潟湖)가 많은데, 그 가운데 광포(廣浦)는 최장경 5,950m, 최단경 1,180m, 둘레 13.7㎞로 관개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동해로 유입하는 하천과 자연 호수의 주변에는 충적평야가 발달하였다. 성천강·여위천 주변에는 함흥평야, 용흥강·덕지강 일대에는 영흥평야(永興平野), 남대천 하류에는 안변평야(安邊平野) 등이 동해안을 따라 좁게 분포한다.

또한, 고원 지대에는 장진호·부전호·황수원호(黃水院湖) 등 거대한 인공 호수가 축조되어 발전에 이용되며 경승지로도 이름이 높다.

해안선은 동해안내에서는 비교적 굴곡이 심하여 451.6㎞에 달하며, 77개의 섬이 있고 간만의 차가 작아 중요한 항구가 많다. 해안에는 파도에 의하여 퇴적된 사주(砂洲)가 발달하여 명사십리(明沙十里)·군선(群仙) 등의 명승지가 많다.

[기 후]

한반도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넓은 산악지를 이루고 있어, 겨울철에 한랭건조한 대륙성기단의 영향이 탁월한 반면 여름철의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단의 영향은 약하다. 따라서, 기온이 한랭하고 여름철 강우량이 적은 아한대동계과우기후(亞寒帶冬季寡雨氣候)를 이룬다.

그러나 동해안 저지대는 함경산맥이 겨울철 북서 계절풍을 막아 주고 동해안에서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므로, 비교적 온화하고 강수량도 많다. 특히, 원산·안변 등 영흥 남쪽은 서울과 유사한 다우 경향을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은 7℃ 내외로 온난한 기후이나 실제로는 한서의 차가 심하다. 1월 평균 기온은 동해안 저지대가 -3.4∼-5.8℃, 서북부 고지대는 -16.4∼-19.6℃로 겨울철 기온의 동서차가 13℃로 매우 크다. 8월평균기온은 동해안 저지대가 23.2∼24.6℃, 서북부 고지대는 17.9∼20.8℃이다. 그러나 기온의 지역차는 6℃로 겨울철에 비하여 훨씬 작다.

기온의 연교차는 동해안 저지대에서 30℃ 내외를 나타내는 데 비하여 서북부 고지대에서는 40℃ 내외를 보여 서북부 고지대가 더 대륙성 기후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강수량에 있어서 서북부 고원 지대는 600∼700㎜로 우리 나라 최과우지이며, 동부 해안 지대는 800∼900㎜를 나타내는데, 특히 원산 지방은 1,200㎜ 이상의 다우 지역이다.

서리가 내리는 기간도 지역마다 차이가 심한데, 초상일은 삼수는 9월 15일, 신흥은 10월 24일로 약 40일의 간격이 있으며, 종상일은 영흥은 4월 1일, 풍산은 5월 29일로 약 60일의 간격이 있다. 그 결과 장진·삼수 지방은 10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 눈이 내리고, 고원 지대의 무상 기일이 127일에 불과하여 농업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인문환경

[인 구]

이 도는 본래 중앙에서 먼 산간벽지로서 인구가 적었다. 정확한 인구조사는 일제 강점기의 국세 조사에 의하면, 일본인까지 합쳐 1925년 141만 2996명, 1930년 157만 8491명, 1935년 172만 1676명, 1940년 187만 8992명, 1944년 201만 5332명이었다.

이러한 인구 증가는 1930년대 이후 급증하였는데, 이는 자연증가율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해안 지역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남부 농업 지대와 산간지대에서 이주자가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1935년 이후 함흥·원산·흥남의 도시 공업 집중은 함경북도의 청진과 더불어 인구의 급속한 증가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1943년 전국의 도시 거주 인구는 11.6%인 데 비하여 3개 시 10개 읍의 인구가 전체 도 인구의 31%를 차지함으로써 일찍이 개화하였음을 나타내준다. 이 지역의 인구 분포는 장진·풍산 등의 산간 고원 지대에서는 희박하고 동해안의 하천유역에서는 높다.

[취 락]

함흥·원산·흥남시는 1930년대 이후 급성장하였다. 조선 시대부터 도청 소재지로서 교육·문화·공업·군사의 중심지인 함흥은 1930년에 부(府)로 승격하였다.

함흥평야의 수리공사로 비옥한 농업 배후지를 가지게 되었고, 함경선과 내륙 부전고원 철도의 연결 및 흥남·본궁(本宮) 공업 지대의 발전으로 관북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함흥에서 동남쪽 12㎞ 지점에 위치한 어항인 흥남은 1929년 유역 변경에 의한 부전강수력발전소가 완성되고 그 동력으로 질소비료 공장이 건설됨으로써 읍으로 승격되었다.

그 뒤 여러 가지 관련 중화학공업이 확대되어 대규모 근대 공업의 효시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1944년에 부로 승격하였다. 1886년에 부산·인천과 더불어 개항된 원산은 동해안 유일의 대항구도시로서 천연적 양항이다.

원산항은 수심이 깊고 만의 내부가 넓으며 남·북에서 뻗은 반도가 방파제 구실을 하므로 거선(巨船)의 정박도 가능하다. 경원선·함경선이 부설됨으로써 1927년의 출하량(出荷量)는 부산·인천·신의주에 이어 4위를 차지하였고, 군항·해수욕장·공업 지역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뒤 청진항이 건설되어 다소 세력이 약화되기도 하였으나 평원선의 개통으로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 밖에도 군청 소재지에는 10개의 읍이 있어 농어촌 중심지를 이룬다.

산업

한랭한 기후의 산악 지대가 광범위하여 잡곡을 생산하는 빈약한 농경 상태가 장기간 계속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그들의 자본과 기술에 의하여 풍부한 자원이 개발되었다.

일본은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화(兵站基地化) 정책하에 남농북공(南農北工)의 개발 전략으로 이 지역의 풍부한 임산자원·지하자원·수산자원·수력 에너지 자원 등을 개발하여 근대적 공업이 가장 먼저 발달하였다.

1930년대부터는 북부 산악 지대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산업 특성은 취업 구조에서 잘 나타나는데, 1941년 현재 농업은 57%로 전국 평균 69%보다 낮으나, 공업은 7.7%로 전국평균 4%의 2배 가까이 된다. 이 밖에 수산업(4%)·상업(8. 7%) 등도 발달하였다.

[농 업]

함흥·영흥·안변·북청평야 등 비교적 넓고 기름진 평야가 있으나 산악 지대가 넓어 경지율은 11.3%에 불과하다. 경지면적 47만 7569ha 가운데 논 14.7%, 밭 60.3%, 화전 24.8%로 밭농사가 85%를 차지한다.

한랭한 기후 때문에 1년1작을 하여 토지 생산력이 낮고, 생육 기간이 짧기 때문에 조생종과 내냉성(耐冷性) 작물이 많다.

주요 농작물은 동해안 지방에서는 쌀·조·콩, 고원 지방에서는 감자·귀리 등이다. 쌀은 일제의 산미증산계획에 따라 1920년대에 작부 면적이 확대되었다.

일찍부터 토지개량사업이 시행되어 관개율이 83%에 달하며, 1943년의 쌀 생산량은 83만 석에 이른다. 조와 봄보리는 각지에서 생산되어 주요 식량으로 되어 있고, 감자와 귀리는 한랭한 산간 지방의 특작물이다. 이 밖에 피·메밀·콩 등이 많이 생산되며, 기후상 사과 재배도 성하다.

고산 지방의 특유한 화전농업은 소 사육과 함께 전국의 28%에 이르러 이 지방 농가 호수의 3분의 1에 가까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산간 화전에서는 감자·잡곡을 조방적·약탈식으로 경작한다. 특용작물로는 육지면(陸地棉)·대마·담배 등을 재배한다.

[임 업]

개마고원 동부의 군선(群仙)과 서부의 장진강·허천강 유역은 축적재량(蓄積材量)이 제일 많은 임산물의 중심 지대이다. 혜산·갑산·풍산·삼수·장진 일대는 인구도 희박하여 삼송(杉松)·낙엽송·홍송(紅松) 등의 침엽수림이 수해(樹海)를 이룬다.

무산 삼림 지대에서 채벌되는 목재는 압록강 상류의 허천강구 부근의 혜산진을 통하여 뗏목으로 신의주 방면으로 운반되고, 서부 개마고원 부근의 것은 장진강을 이용하여 신갈파진에서 모아 압록강을 통하여 신의주로 운반되었다.

그러나 수풍(水豐)댐이 건설된 이후는 길혜선(吉惠線)을 비롯한 개척 철도 및 함경선을 통하여 함흥·흥남 등지로 운반된다.

임야 면적은 약 265만 ha로 전체 도 면적의 80%를 차지하며, 침엽수림 24%, 낙엽수림 23%, 혼효림 18%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산업]

동해안은 대륙붕이 좁고 해저의 경사가 심하나 도처에 사빈이 발달하고 한류와 난해류가 교차되므로 황금 어장을 이룬다. 주요 어종은 한류 어족인 명태·대구와 난류 어족인 청어·고등어·가자미·정어리 등이다.

명태는 두만강구에서 강원도 연안에 이르는 일대에서 많이 잡히는데 중심 항구는 신포(新浦)이다. 이 지역에서의 명태 성어기는 12∼1월이며, 1943년에는 전국 어획고의 85%를 차지하였다.

또한, 고등어는 원산 부근에서 많이 잡히며, 영흥만의 용흥강에는 가을철에 산란을 위하여 올라오는 연어잡이가 유명하다.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3만 2157명이고, 어선은 동력선 298척, 무동력선 5,665척이다. 이 밖에 송전만에서는 대규모 굴 양식이 성하다.

[광 업]

지하자원은 대부분이 평지대에서 산출되고 있는데, 매장량은 많지 않으나 다양하게 나타난다. 주요 광물은 금·철·광석·석탄·흑연 등이다. 금은 영흥·정평·안변 등지에서 많이 산출되는데, 신흥·장진·풍산·갑산 등지에서는 사금으로 출토된다.

도내의 철광구는 49개이고 주산지는 이원철산(利原鐵山)으로, 채굴된 광석은 차호역(遮湖驛)에서 일본으로 수출된다. 흑연은 영흥에서 산출되는데, 광질이 토상흑연으로 우수하며 매장량이 풍부하다.

이 밖에 구리는 갑산, 석탄은 고원·문천, 납·아연은 덕원, 마그네사이트는 단천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들 지하자원은 초기에는 일본에서 제련하였으나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뒤에는 해안의 중화학공업 지대에서 가공하였다.

[공 업]

높고 험한 산지를 이용하여 압록강 상류의 하천을 인공호로 축조하고 경사가 급한 동해안으로 역류시킴으로써 낙차를 이용한 풍부한 수력발전을 할 수 있었다.

1929년 부전강수력발전소 준공 이후 허천강·장진강수력발전소를 연이어 건설하여 연간 112만 ㎾의 전력을 생산하였다. 이러한 전력 생산은 풍부한 지하자원, 편리한 철도 교통, 좋은 항구 등과 함께 동해안 여러 도시의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흥남의 화학비료·제련·제철 공업과 본궁의 석회질소·카바이드·가성소다 공업 등이 발달하여 함흥에서 흥남에 이르는 지역은 신흥 공업 지대로 변모하였다.

이 밖에도 이원의 제철 공업, 문천의 시멘트·제강 공업, 단천의 마그네사이트 공업, 원산의 정유·조선·아연 공업 등의 발달로 일제 말 전국 제일의 관북 중화학공업 지대를 이루었다.

[상 업]

지방 산업의 중심지인 시장은 131개이며, 주요 거래 품목은 농산물·가축·수산물·직물·잡화 등이다. 항구를 통한 무역은 수출이 보다 많았다.

주요 수출품은 유안비료(硫安肥料)·쌀·콩·지방산 등이며, 주요 항구는 원산·흥남·서호진·차호항 등이다. 주요 수입품은 면직물·휘발유·철제품·등유·기계유 등이며, 주요 수입항은 원산·흥남·서호진·신창 등이다.

교통

험준한 고령(高嶺)들이 첩첩이 가로놓여 있어서 조선 시대까지는 산간벽지로 고립되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남북 방향의 철도가 많이 부설되고, 만주와의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는 해안 공업도시가 건설됨에 따라 교통의 개발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1914∼1928년에 걸쳐 함경선을 부설하였고, 뒤이어 1934년에는 길주∼혜산진 간의 개척선인 혜산선을 건설하였다. 또한, 1933년에는 함흥에서 오로(五老)를 거쳐 장진에 이르는 송흥선(松興線)을 부설하였으며, 장진선의 신흥역(新興驛)에서 부전호(赴戰湖)에 이르는 흥남선의 사철과 함흥∼장풍 간의 함남선, 순천에서 낭림산맥의 계곡을 따라 양덕에 이르는 평원선 및 동해북부선 등을 완공하였다.

이 밖에도 용담∼천내리 간의 천내선(川內線), 신북청∼북청 간의 북청선(北靑線), 증산∼차호 간의 차호선(遮湖線), 나흥∼이원철산 간의 철산선(鐵山線), 옥평∼원산북항 간의 부두선(埠頭線), 단천∼홍군(洪君) 간의 단풍선(端豐線), 여해진(汝海津)∼용양 간의 용양선(龍陽線) 등 많은 지선이 얽혀 있어 고원 지대의 산업 개발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도로교통은 1등도로 449㎞, 2등도로 1,249㎞, 3등도로 1,733㎞가 있다. 서울∼원산 간의 도로는 철령을 넘어 안변을 지나 원산으로 연결되고, 평양∼원산 간 도로는 마식령(馬息嶺)을 넘어 덕원을 거쳐 원산에 이르고, 원산∼회령 간 도로는 원산에서 덕원을 통과하여 동해안을 따라 마천령을 넘어 함경북도로 들어간다.

하운(河運)은 압록강의 신의주∼신갈파진 간에서 이루어졌다. 신의주∼중강진 간에는 월 9회, 중강진∼신갈파진 간에는 월 6회 운항되었다. 동해안에는 양항이 많아 해운 교통이 활발하다. 1880년에 원산항이 개항된 이래 일본·러시아와 순환 항로가 개설되어 해운이 급성장하였다.

이 밖에도 흥남·함흥의 외항인 서호진, 이원의 외항인 서호, 단천의 외항인 여해진 등의 양항이 있어 내륙의 철도와 해상을 연결하며 풍부한 자원의 유통 기능을 한다.

문화·관광

신교육 이전의 교육기관으로는 향교 13개소, 서원 1개소(老德書院), 서당 등이 있었는데 이 지역은 중앙 인사의 적소지(謫所地)였고 관북인의 경원정책(敬遠政策)으로 등과의 길이 거의 막혀 있었다.

근대식 교육기관으로는 1897년 함흥향교 내에 설립한 외상생(外庠生)이 효시이며, 외상생은 사립풍흥학교(私立豐興學校)로 되었다가 사립일신학교(私立日新學校)와 합쳐 함흥고등보통학교로 되었다.

이후 1903년에 원산루씨학교(元山樓氏學校)를 비롯하여 함흥·원산시를 중심으로 선교계의 교회·학교, 그리고 군·면 소재지를 중심으로 초등·중등 및 실업학교가 확대되었다.

광복 당시에는 전문학교 2개교를 포함하여 보통학교 351개교(간이학교 68개교 포함), 공민학교 2개교, 중학교 20개교, 실업학교 12개교 등이 있었다.

민속놀이로는 북청사자놀음(국가무형문화재, 1967년 지정)이 유명하다. 향토음식으로 조밥·함흥냉면·가자미식해 등이 있다. 도내에는 유적과 명승지가 널리 산재한다.

국보로는 석왕사(釋王寺)의 응진전(應眞殿)과 호지문(護持門), 진흥왕의 황초령순수비(黃草嶺巡狩碑)와 마운령순수비(摩雲嶺巡狩碑), 안변 가학루(駕鶴樓) 등 5점이 있고, 고적으로는 숙신고도토성(肅愼古都土城)·여진비(女眞碑)·태봉궁(泰封宮)·진명성지(鎭溟城址)·발해의 고도지(古都址)·고장성(古長城)·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경흥전(慶興殿)·준원전(濬源殿)·창의사(彰義祠)·석왕사·귀주사(歸州寺) 등과 고분군이 있다.

명승지로는 민족의 성산(聖山)인 백두산을 들 수 있다. 이 산은 순상화산으로 산정에는 칼데라호인 천지(天池)가 있으며, 단군신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또한, 부전고원·삼방폭포(三防瀑布)와 명사십리·송도원(松濤園), 우리 나라 최대의 석호인 광포 등이 유명하다. 천연기념물은 차일봉과 북수백산(北水白山)의 고산식물군을 비롯하여 기형적송(畸形赤松)·풍산견(豐山犬)·담비잘·음나무[海桐朴]·부채꽃[千屈菜]·노랑부리저어새·괭이갈매기·흰수염바다오리 등 다양하다.

광복 후 변천

1946년 9월에 원산시와 문천군·안변군을 강원도에, 1949년 1월에는 장진군의 동문면을 자강도에 이관하였다. 1952년 12월 면 행정단위를 폐지하고, 시·군의 행정구역을 분리, 통폐합하여 오로·퇴조·신상·요덕·인흥·수동·신창·덕성·신포·광천·허천·부전·보천·낭림·풍서·신파 등 16개 군을 신설하였다.

1954년 10월에 혜산·보천·갑산·삼수·신파·풍서·풍산·부전 등 북부의 8개 군을 양강도에, 낭림군은 자강도에 이관하였으며, 평안남도의 대흥군을 합병하였다.

한편, 함주군의 일부와 정평군의 일부로 흥산군을 신설하였다. 1960년함흥시가 직할시로 승격될 때 흥남시·낙원군(당시 퇴조군)·함주군과 영광군(당시 오로군)의 일부가 그곳에 이관되었다가 그 뒤 원상복귀하였다.

1965년양강도의 부전군을 다시 합병하였고, 신포군은 시로 승격하였다. 1970년함흥직할시가 다시 일반 시로 환원되면서 함경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72년 대흥군이 다시 평안남도로 이관되고, 1974년 인흥·신창·신상·흥산·수동·덕산·광천군이 폐지되었다.

1981년단천군이 시가 되었으며, 오로군이 영광군으로, 퇴조군이 낙원군으로 개칭되었다. 동쪽은 동해, 서쪽은 자강도와 평안남도, 남쪽은 강원도, 북쪽은 함경북도·양강도와 접해 있다.

동경 126°42′∼129°09′, 북위 39°13′∼41°11′에 위치한다. 면적 1만 8427㎢, 인구 약308만 명이며(1993년 현재), 행정구역은 함흥·신포·단천 등 3개 시와, 함주·낙원·정평·금야·고원·요덕·장진·부전·영광·신흥·홍원·북청·덕성·이원·허천 등 15개 군으로 되어 있으며, 도 소재지는 함흥시이다.

이 도는 산지와 경사지가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도의 평균 높이는 해발 745m이며, 북부가 높고 남부가 낮다. 북부에는 부전령산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북수백산맥과 연화산맥이 남북 방향으로 뻗으면서 장진고원·부전고원 등 내륙 고원 지대를 이루고 있다.

동남쪽은 검덕·대덕·거두봉·함관령산맥 등의 가지산들이 뻗으면서 동해 사면을 이루고, 이들 산맥에는 해발 2,000m가 넘는 산들이 솟아 있다. 동해 사면과 북부 내륙 지대 사이에는 황초령·부전령·금패령·후치령 등의 고개들이 있다.

북동부에는 백두산맥이 함경북도와의 경계를 따라 뻗어 있고, 높이 1,500m 안팎의 산들이 솟아 있다. 서부 지역은 자강도와의 경계 지역에 낭림산맥이, 평안남도와의 경계 지역에 북대봉산맥이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1,500∼2,000m의 높은 산들과 고개들이 동서 간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하천은 장진강과 허천강이 북부 내륙 쪽으로 흘러 압록강과 합류하고, 동해 쪽으로는 북대천·남대천·서대천·성천강·금진강·용흥강이 흐르고 있는데, 길이가 짧고 물길이 곧으며 유속이 빠른 것이 특징이다.

호수는 광포를 비롯하여 하포·내인호·현금연포·상포·범포·용포 등의 자연 호수와 장진호·부전호·문앙저수지·추상청년저수지 등의 인공 호수들이 있다. 하천 유역과 동해 연안 지대에는 금야평야·함흥평야·신창평야 등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해안선은 길이 455.82㎞로서 이원만·낙원만·함흥만과 호도반도, 용대갑·송도갑, 백안단 등이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마양도·화도 등 64개의 섬이 있다.

주요 기반암은 대부분 시생대 화강암과 편마암들이며, 남부 지방에는 고생대 석회암과 퇴적암들이 있다. 토양은 주로 높은산습초토양·산림갈색토양·충적지토양·논토양이 분포되어 있다.

이 도는 다양한 지형 조건과 바다의 영향으로 기후의 지역 차이가 심하고, 다른 지역에 비하여 연평균 기온과 겨울 기온이 높다. 연평균 기온은 해안 지대에서 10℃ 안팎이고, 북부 내륙 지대에서는 2℃ 정도이다.

1월 평균 기온은 -5.1℃(함흥)∼18.0℃(장진)이며, 8월 평균 기온은 22.8℃(함흥)∼17.4℃(장진)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정평 이남 지역은 1,100∼1,300㎜, 내륙 고원 지대는 600∼700㎜, 함흥은 972㎜이다. 북부 내륙 고원 지대에서는 소나기와 안개 현상이 빈번하여 일반적으로 습도가 높다.

첫서리는 9월 초·중순경, 마감서리는 5월 하순에 내린다. 산림은 도 전체 면적의 82%로서 소나무·잣나무·이깔나무·전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 등의 침엽수와 참나무·물푸레나무·다릅나무·고로쇠나무·붓나무·사스래나무·사시나무 등의 활엽수가 많으며, 산나물·산과일·약초가 고밀도로 분포되어 있다.

이 도에는 차일봉식물보호구·부전부채붓꽃보호구·천불산동물보호구·사수산동물보호구·양화밥조개보호구·낙원생복보호구·호도반도자연굴보호구가 있으며, 동흥산은행나무(함흥)·함흥반송·함흥참오동나무·흥남팽나무·호남향나무(신포)·속후회나무(신포)·함주조선닭·천불산사향노루(영광)·신흥엄나무·신흥오동나무·사철오리(정평)·정평박태기나무·금야은행나무·가진소나무(금야)·청백향나무(금야)·금야겨울새·요덕호두나무·성남호두나무(고원)·홍원향나무·대섬신의대군락(홍원)·용전사과나무(북청)·선조사과나무(북청)·중동리소나무(덕성)·배골소나무·단천산양살이터·두연목련꽃(이원)·단천만지송 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 도는 풍부한 지하자원과 동력자원으로 경제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농업은 산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경지면적은 도 전체 면적의 11.5%에 불과하다.

그 중 논이 30%, 밭은 60%이며, 과일 및 뽕나무 밭이 10%를 차지한다. 주요 곡물은 쌀·옥수수·콩·팥·고구마 등이며, 쌀은 주로 남부의 금야평야와 함흥평야에서 생산되고, 옥수수는 전 지역에서 경작되고 있다.

담배·피마자 등의 작물은 단천시·장진군·요덕군·덕성군·허천군 등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요덕군은 누에고치 산지로 이름나 있다. 그 밖에 함주군은 오이, 부전군은 양파 산지이며, 단천시·북청군·덕성군·함주군·허천군은 사과 산지로 이름나 있다.

이 도는 산림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서 덕성군·정평군·요덕군·홍원군·허천군에는 갱목생산사업소가 있으며, 고원군·부전군·장진군 등에는 임산사업소가 있어 원목의 생산과 운반, 가공을 수행하고 있다.

근해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으로서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어종이 다양하여 북한 총 어획고의 30% 이상의 어획량을 올리고 있다.

신포군·홍원군에 수산사업소가 있으며, 신포항은 동해의 원양어업 기지로 되어 있다. 이 도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광업이 발달하여 석탄·비철금속·철광석·석회석·인회석 등의 광물들이 다양하게 채굴되고 있다.

고원과 수동탄광에서는 무연탄이, 금야탄광에서는 유연탄이 채굴된다. 단천지역의 검덕광산과 허천군의 상농광산은 북한 최대의 연·아연광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허천군의 만덕광산에서는 유화철을, 동암광산에서는 인회석을 채굴하여 흥남비료공장의 원료광물로 공급하고 있다.

특히, 단천 지역의 용양광산과 대흥광산은 그 매장량이 37억t에 달하여 세계 제1의 마그네사이트광산으로 이름나 있으며, 석회석은 부래산광산과 운포광산에서 채굴되고 있다.

그 밖에 장진군에는 중석광산, 부전군에는 금광산, 북청·이원·덕성·허천군에는 철광산이 있으며, 흑연·형석·규석·석면 등도 채굴되고 있다. 이 도의 공업은 함흥시·단천시·신포시를 중심으로 발달하여 있다.

함흥 지역에는 흥남비료공장·흥남제약공장·본궁화학공장·2.8비날론공장 등의 화학공업과, 흥남제련소·함흥철도종합공장·함흥강철공장·용성기계공장·함흥기계공장 등의 비철금속 및 기계공장이 있으며, 함흥모방공장·함흥제사공장·견직공장 등의 섬유 공장이 있다.

단천 지역은 비철금속 및 내화물 공업의 중심지로서 단천제련소·단천공작기계공장·단천마그네샤크링카공장·단천탐사기계공장·단천TV공장 등이 있으며, 신포 지역은 식료품, 수산물 가공 및 조선공업 지역으로서 신포오리통조림공장·신포어류통조림공장·신포수산물가공공장·원양작업조선공장 등이 있다.

그 밖에 이원7.6철도공장·8.2부래산시멘트공장·성천강전기공장·흥산전동기공장 등이 있다. 전력은 최대 출력 35만 5300㎾의 장진강수력발전소를 비롯하여 부전강수력발전소·함흥화력발전소가 있으며, 그 밖에 중소형발전소들이 있다.

이 도는 북한의 동·서 해안 지역과 남북 지역을 연결하는 교차적 위치에 있고, 도 중심부에 함흥공업지구가 있으므로 육상 및 해안 운수가 발달하였다.

철도는 평라선(평양∼나진)이 평남 지역으로부터 들어와 남쪽은 고원역에서 강원선(고원∼원산∼고산)과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해안선을 따라 함경북도로 이어진다. 도내에는 장진선(영광∼사수)·신흥선(함흥∼부전호반)·북청선(북청∼상리)·단풍선(단천∼홍군)·함남선(여해진∼대흥) 등의 지선들이 있다. 도로는 7번국도가 평라선 철도와 평행해서 함경북도로, 9번도로는 북청에서 후치령을 넘어 양강도로 연결된다. 그 밖에 함흥∼장진, 함흥∼부전, 금야∼요덕 사이에 도로가 있다.

유물·유적으로는 신석기 시대의 원시 유물인 함주고인돌, 홍원군 북상리 고분군을 비롯하여 산성·절터·누각 및 비석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함흥시에는 진흥순수비인 황초령비·마운령비가 보존되어 있고, 함흥본궁·향교·선화당·제월루·창의사비·경흥전·의릉·구천각 등이 있으며, 북청군에는 청해토성·여진문자비·북청읍성이 있다.

단천시에는 기암리에 운시산성, 두연리에 동덕사·공민루가 있으며, 홍원군에 요원산성·함관령비, 영광군에 백운산성·용흥사·덕안릉·가평고성, 이원군에 복흥사7층탑·정광사, 신흥군에 육충사비, 금야군에 금자루, 함주군에 이제마묘, 고원군에 양천사 등의 사적들이 남아 있다.

이 도에는 북부 내륙 고원 지대와 동해안을 끼고 이름난 명승지가 많다. 부전고원은 조선8경의 하나로 경치가 뛰어나고, 광포·장진호 등의 호수와 함께 함흥의 마전, 북청의 속후, 이원의 송탄·학사대 등 동해안을 따라 명승지가 많으며, 함흥의 동흥산도 명승지로 이름나 있다. 금야군에는 인흥온천이 있으며, 요덕약수, 신포의 현금호약수, 허천의 상농약수가 유명하다.

함흥시는 동해안 일대의 교육·문화의 중심지로서 각급 교육기관과 문화시설이 집중되어 있으며, 기타 시·군 지역에도 교육·문화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대학 및 연구기관으로 함흥화학공업대학·수리동력대학·금야농업대학·고려약학대학·정성의학대학·최희숙교원대학·동흥교원대학·새날사범대학·김형권사범대학·기술사범대학·함흥자동화대학·흥남공업대학·함흥전자계산기대학·본궁공업대학·신포수산대학·신창공업대학 등의 대학과 과학원 함흥분원·의학과학원·함흥결핵연구원·경공업과학원·함흥섬유연구소·산림과학원·함흥산림시험장·농원과학원 함흥분원 등이 있다.

그 밖에 함흥건설전문학교·신포고등수산전문학교·북청고등물리전문학교·단천고등탐사전문학교 등 70여 개의 고등전문학교가 있으며, 500여 개의 고등중학교, 600여 개의 인민학교가 있다.

체육 시설은 관람석 3만 석 규모의 함흥경기장을 비롯하여 단천경기장·흥남경기장·북청경기장·신포경기장·금야경기장 등의 야외 경기장이 있으며, 고원·홍원·신포에는 실내 체육관이 있다. 함흥역사박물관과 함흥인민대극장이 있으며, 안전국병원·함흥의대병원 등의 의료 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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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함산지』(함산지편찬위원회, 1939)
집필자
이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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