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불화.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07.6㎝, 가로 45.3㎝. 일본 동경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 소장. 고려시대 지장보살화 중 가장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전신을 오른쪽으로 약간 비틀면서 연꽃대좌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지장보살을 묘사하였다.
화면을 거의 꽉 채우게 그려진 이 보살상은 몸을 약간 비틀고 긴 석장(錫杖 : 중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을 대각선으로 들고 있어 단조로운 화면을 변화 있게 만들고 있다. 특히, 이 석장은 화려한 금니의 원형 두광(圓形頭光)과 함께 지장보살의 당당한 신체로 꽉 메워진 듯한 화면을 단순한 선으로써 잘 조화시키고 있다.
신체는 약간 오른쪽을 향하고 있지만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둥글고 환한 얼굴은 귀족적이라 할 만큼 우아하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초승달 같은 눈썹, 가늘고 긴 눈, 큼직한 코와 작은 입, ︷ 모양의 이마 등은 1320년 작 <아미타구존도>(일본 松尾寺 소장)의 지장보살 얼굴과 유사하다.
이 밖에 검은 바탕에 금니로 둥근 꽃무늬가 새겨진 두건이라든지 귀 옆의 두건 장식, 가사 가장자리의 모란당초문(牡丹唐草文) 등도 퍽 유사하다.
지장보살의 당당한 신체, 넓은 가슴 및 연화좌를 밟고 있는 발의 표현과 연화대좌의 모습, 법의의 문양 등은 14세기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여래상>(일본 東海菴 소장)과 몹시 흡사하다.
그래서 이 작품의 연대를 14세기 초기로 볼 수 있게 한다. 이 밖에도 넓은 가슴, 유연한 자세, 자연스러운 손발의 모습 등은 1320년(충숙왕 7년) 작 <아미타구존도>의 관음보살상과 비슷하나 보다 유연하다.
그리고 당당하고 중후한 체구, 개성 있는 얼굴 표정, 장신구나 가사에 표현된 둥근 꽃무늬, 대좌의 연꽃 등은 1306년(충렬왕 32년) 작 <아미타여래상>(일본 네즈미술관 소장)과 유사하여 14세기 초기의 작품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마치 조각한 듯한 딱딱하고 날카로운 옷주름은 상당히 형식화되어 지장보살화의 전통이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자칫 매너리즘으로 흐르기 쉬운 이러한 선을 단정하고 부드럽게 처리한 점에서 화가의 높은 기량이 엿보인다.
가사 전체를 꽉 메우며 과도하게 사용된 문양은 모두 금니로 채색함으로써 찬란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찬란한 귀족 문화를 이루었던 고려시대의 문화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이 불화는 그림의 크기로 보아서도 큰 법당에 봉안하였다기보다는 귀족·왕족들의 원당(願堂)이나 원찰(願刹)에 봉안하였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