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명 전씨 아미타불비상 ( )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조각
유물
국가유산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이칭
이칭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보(1962년 12월 20일 지정)
소재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 (명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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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비상은 충청남도 연기군 비암사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명문에 의하면 이 비상은 계유년에 전씨 일가의 발원으로 조성된 것이다. 불상 앞면에는 광배가, 광배 가운데에는 아미타불 삼존상과 그 권속들이 조각되어 있다. 광배 밖, 즉 비상의 가장 윗부분 좌우에는 천궁을 받들고 비약하는 천인을 조각하였다. 불상 뒷면은 4단으로 구획되어 각 단마다 불상이 5구씩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은 백제 유민들이 조성한 것이다. 백제 시대 초기 불상 양식 연구에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정의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개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960년 충청남도 연기군 비암사(碑巖寺)에서 다른 2점의 불비상(佛碑像)과 함께 발견된 아미타불삼존비상이다.

내용

앞면은 윗부분에 비하여 아랫부분의 너비가 약간 넓은데, 가장자리를 따라서 감실형(龕室形)의 테두리를 새겼다. 그리고 그 안을 한 단 낮게 하여 상부에 커다란 이중의 주형 광배(舟形光背)를 조각하였다. 광배 좌우에는 각각 주악천(奏樂天)이 배치되었으며, 가운데 아미타불삼존상과 그 권속들이 조각되엇다.

본존은 복련(覆蓮)의 연화좌 위의 네모 반듯한 대좌결가부좌하였고, 협시보살과 인왕(仁王) · 나한(羅漢)들이 좌우에 새겨져 있다. 얼굴 부분은 마멸되어 확실하지 않으나, 머리 위에 육계(肉髻)가 높이 솟아 전체적으로 갸름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신체는 건장하며 안정된 자세를 이루고 있으며, 시무외인(施無畏印) · 여원인(與願印)을 짓고 있는 두 손은 비교적 크게 표현되어 삼국시대 이래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슴 부근에서 여러 겹의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는 통견(通肩)의 법의는 무릎 아래에서 이중의 Ω자형의 주름을 이루며 네모 반듯한 대좌를 거의 덮어 흐르고 있다. 신체의 굴곡은 옷주름이 두꺼워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두광(頭光)은 원형으로, 세 줄의 동심원 안에 연꽃이 배치되고 가장자리에 꽃무늬와 연주문(連珠文)이 장식되었다.

협시보살상은 본존 쪽으로 몸을 약간 튼 자세로 연화좌 위에 서 있는데, 삼국시대의 엄격한 정면 직립의 자세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아직 통일신라시대의 삼곡(三曲)자세로까지는 발전되지 못한 형태이다. 머리에는 연꽃을 돌린 간단한 원형 광배를 두르고 있으며, 마멸이 심하여 자세하지는 않으나,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듯하다. 목에는 기다란 영락(瓔珞)을 두르고 있고, 천의는 무릎 부근에서 X자형으로 교차되었다. 한 손은 들어 올려 가슴 근처에서 보주를 들고 있으며, 한 손은 내려 정병(淨甁)을 잡고 있다. 이 협시보살상 아래에는 걷고 있는 형태의 사자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보살상 좌우에 있는 금강역사상 또한 본존을 향하여 몸을 돌리고 있는데, 왼쪽[向右]의 금강역사상은 왼손에 긴 창을 들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표현된 금강역사상은 당시의 금강역사상 표현과는 달리 갑옷을 입은 모습이며, 허리에서 X자형으로 교차되는 영락 또한 특이하다. 나한상은 모두 4구로서 상체 부분만 조금 보이고 있어, 보살상이나 금강역사상과 동일선상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들 불상 위로는 거대한 이중의 주형 광배가 조각되었다. 화염형(火焰形)의 연주문으로 광배를 2분하였는데, 내부에는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화불(化佛) 5구가 조각되고, 본존의 두광 바로 위에 커다랗게 보주를 새겨 놓았다. 외부에는 좌우 각 4구의 비천(飛天)을 새기고, 중앙에는 머리 위로 궁전형을 받들고 있는 좌상 1구를 배치하였다. 광배 밖, 즉 비상의 최상부 좌우에는 천궁(天宮)을 받들고 비약하는 천인을 조각하였다.

옆면은 주악천과 용을 새겨 앞면의 아미타세계를 장엄하였다. 이 중 특히 주악상은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이 사실적이며 자연스럽게 표현되었고, 용은 비록 상체만 남아 있으나, 용솟음치는 세부 동작이 충실히 묘사되었다.

뒷면은 4단으로 구획되어 각 단마다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불상이 5구씩 병렬로 조각되었는데, 각 불상 사이사이에 이 비상을 발원한 인명과 관등이 새겨져 있다. 명문에 의하면, 이 비상은 계유년 전씨 일가의 발원에 의하여 조성된 것으로, 계유년은 조각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직후인 673년(문무왕 13)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비상이 조성된 곳이 옛 백제 지역이며, 발원자인 전씨의 관등 중에 달솔(達率)과 같은 백제의 관등명이 보이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의 유민들에 의하여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앞면 하단에서 측면 · 뒷면에 이르기까지 비상을 조성한 연대를 비롯하여 발원자 등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불상 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국보』4 석불(황수영 편, 예경산업사, 1985)
『한국조각사』(문명대, 열화당, 1980)
「癸酉銘 阿彌陀三尊四面石像 銘文 검토」(강진원, 『목간과 문자』12, 한국목간학회, 2014)
「7세기 연기지역 아미타불상의 서방정토도상 연구」(홍련희, 『불교미술사학』11, 2011)
「충남연기석상조사」(황수영, 『한국불상의 연구』, 삼화출판사, 1973)
「비암사소장의 신라재명석상」(황수영, 『고고미술』4, 한국미술사학회,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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