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감로도.
개설
내용
중단에는 시식대를 중심으로 영혼천도 의식을 행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단 위에는 수많은 제기와 촛대, 꽃 등 공양물이 가지런히 놓여 있으며, 제단 주위로 손에 감로수를 들고 의식을 집전하는 승려와 합장한 아귀 1구, 천도법회에 참석한 상주들이 삼삼오오 모여 제단을 향해 합장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서 의식을 집전하는 승려는 죽은 어머니의 영혼을 위하여 성반(聖盤)을 올려 어머니를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였다는 목련존자(目連尊者)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식대의 좌우로는 왕후장상(王侯將相)과 일반서민들이 무리지어 모여 있다.
시식대 아래로는 일상생활과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고통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하단이 배치되어 있다. 상단의 존상에 비해 하단의 각 장면은 작게 표현하여 화면에 비교적 여백이 많다. 참혹한 전쟁의 참상을 비롯하여 유랑 예인들의 흥겨운 놀이판, 술 취해 싸우는 사람, 바둑 두는 모습, 칼을 쓴 죄인, 무너진 집 아래 깔린 사람, 호랑이에게 물린 사람, 물에 빠진 사람, 우물에 빠진 어린이, 스스로 목을 조르는 사람 등 환난 장면과 쟁기질, 모심기, 광주리를 머리에 인 여인 등 농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단에는 특히 총을 쏘는 무리와 창으로 찌르는 무리, 활 쏘는 기마병, 목이 잘린 사람과 넘어진 말 등 전쟁장면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상당히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다. 이와 함께 화면 최하단의 농사장면은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묘사한 것으로, 그야말로 불화 속의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각 장면마다 인물의 표정이 살아있고 인간, 우마(牛馬), 아귀, 옥졸 등 다양한 중생들의 사실적인 동작 묘사는 정밀하고 생동감에 차있어 실재감이 느껴진다.
채색은 황토색을 바탕색으로 하여 적색과 녹색, 하늘색, 검은색, 청색, 흰색 등을 사용하였다. 화면의 오른쪽은 채색이 선명하고 손상된 곳이 거의 없으나 왼쪽은 녹색안료가 부분적으로 검은색으로 변해 얼룩이 진 것처럼 보이는 등 훼손된 부분이 눈에 띄고, 채색도 박락되거나 퇴색된 부분이 많아 화면 좌우의 색감이 크게 대비된다. 필선은 철선을 사용하여 비수(肥瘦)가 드러나지는 않으나 유연하고 능숙한 필치와 뛰어난 인물 묘사력에서 화승들의 기량이 뛰어났음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화기가 일부 결손 되었지만 의성 대곡사에 봉안되었던 불화로 추정된다. 13명의 화승 가운데 쾌일(快日)을 제외한 12명은 1764년 수화승 치삭(雉朔)과 함께 경상북도 의성 대곡사 지장보살도 제작에 참여했던 화승들이다. 이 감로도의 수화승인 치상(雉翔)과 대곡사 지장보살도의 수화승인 치삭(雉朔)은 동일인으로 생각되므로, 이 감로도는 1764년에 지장보살도와 함께 조성되어 대곡사에 봉안되었던 불화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시대 감로탱 특별전: 감로 상·하』(통도사성보박물관, 2005)
- 『감로탱』(강우방ㆍ김승희, 예경 1995)
- 「조선시대 감로탱화 하단화의 풍속장면 고찰」(이경화, 『미술사학연구』220, 한국미술사학회, l998)
- 「감로탱의 도상과 신앙의례」(김승희, 『감로탱』, 예경, 1995)
- 「감로탱의 양식변천과 도상해석」(강우방, 『감로탱』, 예경, 1995)
- 「감로탱의 알레고리」(강우방, 『한벽논총』3, 월전미술관, 1994)
- 「조선후기 감로도의 도상연구」(김승희, 『미술사학연구』196, 한국미술사학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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