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13㎝, 가로 174㎝. 19세기 중엽 이후 경기도 지역 감로왕도의 도상을 기본으로 하면서 일부 도상을 생략하여 축소된 도상을 표현하였다.
상단의 중앙에는 합장을 하고 정면을 향하여 서 있는 7여래를 묘사하였다. 왼쪽에는 왕후장상(王侯將相)·선왕선후(先王先后)·뇌신(雷神) 등이 구름 속에 서 있는 장면을, 오른쪽에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종래 감로왕도에서 오른쪽에는 아미타삼존, 왼쪽에는 지장보살과 인로왕보살을 배치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도상을 응용하여 변화를 가져왔다.
칠여래 앞에는 삼신불번(三身佛幡)이 걸려져 있는 제단이 묘사되었다. 공양물과 꽃으로 제단을 가득 장식하였으며, 1901년 대흥사 감로왕도에서처럼 사이사이에 황제와 황태자·영친왕·의친왕의 이름을 적은 위패를 배치하였다. 제단 아래의 재 의식 장면은 축소되어 간단히 처리되었다.
오른쪽에는 천막 안에서 독경하는 스님과 바라춤을 추는 승려를 그렸다. 그리고 제단 아래쪽에는 목련꽃이 가득 담긴 커다란 화병 사이에 스님들과 상주가 재를 지내는 광경을 비교적 간단하게 묘사하였다. 아귀(餓鬼)는 화면의 아래 중앙에 작게 묘사되었고, 아귀 좌우로 하단의 장면들이 전개되어 있다.
하단 장면 역시 다른 감로왕도들에 비하여 적은 편으로 중요한 도상만을 취하여 표현하였다. 오른쪽에는 줄타기하는 광대의 모습, 무당의 굿 장면, 서로 싸우는 장면, 호랑이에게 물리는 장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장면, 바둑 두는 장면 등이 표현되었다. 호환(虎患) 아래 아귀들이 물속에서 구걸하는 모습도 표현되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던 왼쪽의 전쟁 장면은 말을 타고 활 쏘고 창을 들고 나아가는 두 명의 병사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지옥의 시왕 심판 장면도 마치 서로 다른 장면처럼 분리되어 버렸다.
이 작품은 19세기 중엽 경기 지역 감로왕도의 도상을 응용하여 나름대로의 새로운 도상을 창출한 것이다. 금색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하여 화면이 다소 탁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