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좌(蓮華座)는 연화대(蓮華臺) 또는 화좌(華座)라고도 한다. 연화좌의 중심 도상이라 할 수 있는 연꽃은 청정함과 초월성의 상징으로 일찍부터 존숭되었다. 연화는 인도 신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여기서의 연화는 창조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연화에 앉은 브라흐마가 세계를 창조하는 신화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후 연화는 불교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물에서 나고 자라지만 물에 물들지 않는 연화와 같이’라는 비유는 불교의 초기 경전을 대표하는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문구로 불교 경전에는 부처가 커다란 연화 위에 앉아 신변(神變)을 일으키거나 대승 교의(大乘敎義)에 관해 설법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3세기 말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여래흥현경(如來興顯經)』에는 부처가 세계에 출현하는 열 가지 인연을 서술하고 있는데, 여기서 부처의 출현은 연화의 탄생에 비유되고 있다.
연화좌는 불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따라서 연화좌는 불상의 등장 이후에 본격적으로 조성되었다. 불교가 만들어진 인도에서 연화좌는 부처가 갖고 있는 신통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연화좌는 간다라 지역뿐만 아니라 5세기 후반부터 6세기에 걸쳐서 서인도 데칸고원 서부에 조성된 석굴사원에서도 확인된다.
이들은 간다라의 경우와 거의 동일하게 설법인을 한 불타가 연화좌 위에 앉고 양옆의 연화 위에 보살이 시위(侍位)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중국에서 연화좌는 재래의 단순한 방형좌뿐만 아니라 수미단 형식, 그리고 통일신라 석불 대좌의 주류를 이루는 삼단 팔각의 연화좌가 제작되었다.
삼단 팔각의 연화좌는 용문석굴에서 일반화된 형식인데, 그 조형(祖型)으로는 아프가니스탄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4세기에 제작된 염견불좌상(焰肩佛坐像)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삼단 팔각 연화좌는 석굴암 본존불의 연화좌에서 시작되었다. 진흙속에서도 청정한 꽃을 피우는 연화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덕이 있는 꽃으로 인식되어 왔다. 때문에 불교에서 연화는 부처와 보살이 앉는 자리로 여겨졌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불상의 대좌는 대부분 연화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