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석사자상은 평양에서 출토된 유물로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자는 용맹하고 위엄 있는 동물로 일찍부터 동·서양의 고대 미술에 표현되어 힘과 신성의 상징으로 쓰였다. 우리나라에는 사자가 서식하지 않으나, 불교의 전래와 함께 사자상도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조를 보면 신라가 우산국을 정벌할 때 나무로 만든 사자 인형을 이용해 적을 위협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유사(三國遺事)』 권4 ‘자장정률(慈藏定律條)’조에는 문수보살이 사자보좌(獅子寶座) 위에 앉았다는 내용이 있다.
삼국 중 불교를 가장 먼저 수용한 고구려에서는 일찍부터 불상의 대좌에 사자를 표현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은 한강의 뚝섬에서 출토된 불상의 사자좌이며, 이와 유사한 사례를 고구려 장천 1호 무덤의 예불하는 그림에 묘사된 불상의 대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평양성과 영명사 등 궁전과 사찰 앞에 석사자상을 두어 수호신 역할을 하게 했으며 이러한 전통은 발해에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고구려석사자의 높이는 65㎝이며, 원래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궁전 안에 세워졌던 것이라 전해진다. 현재는 북한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앞에 놓여 있다. 석사자는 가슴을 내밀고 앞다리를 곧게 일직선으로 세워 몸에 바싹 밀착시킨 자세로 앉아 있다. 사자의 머리는 마모가 심해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입을 꼭 다물고 머리를 들어 올린 상태이다. 사자의 코 부분은 파손되어 있다. 턱밑에 표현된 사자의 갈기는 석등의 귀꽃을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머리 주변에도 사자의 갈기가 규칙적으로 새겨져 있다. 평양성 출토 고구려 석사자와 유사한 형태로는 평양 영명사터 출토 석사자가 있다. 영명사터 출토 석사자는 암수 한 쌍이 짝을 이루고 있다. 이 중 수사자는 가슴이 튀어나오고 앞다리에 가로 주름이 있는 모습인데, 평양성 출토 고구려 석사자와 매우 유사한 형태이다. 영명사터 석사자의 모습으로 미루어 평양성 출토 고구려 석사자의 경우도 암수 한 쌍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