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역 바로 뒤편에 위치한 금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1952년에 철우(鐵牛) 선사가 창건하였다. 선사는 금강사를 창건하기 전에 금강산에서 수행하였는데 금강사의 석조석가여래좌상은 그때 폐사지에서 수습한 것이라고 전한다. 철우 선사는 이 폐사지지에서 석조석가여래좌상뿐만 아니라 2004년 각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금강사 금동약사여래입상과 금강사 금동관음보살입상도 함께 수습하였다고 한다. 그는 금강산 폐사지에서 수습한 불상 등을 구미로 가지고 와서 금강사를 창건하였다. 철우 선사 입적 후에는 정우(正愚)가 주지로 있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금강사는 현재 1,500여 명의 신도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경내에는 대웅전, 심우당, 채월당, 종각, 철우 선사 부도탑 등이 있다.
금강사 석조석가여래좌상은 현재 대웅전에 주불로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무른 성질의 돌인 납석으로 조각되었다. 전체적으로 작은 규모의 불상이나 신체에 비해 머리는 비교적 크게 조각하였다. 전체 높이에서 머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2.5:1의 비율을 보인다. 소라 모양의 머리칼 형태인 나발을 갖춘 머리 위에는 원통형의 정상계주가 있다. 그 앞에는 반달형태의 중앙계주가 조각되어 있다. 일반적인 불상의 상호에 비해 이마의 폭이 넓은 편이다. 이마의 폭이 넓은 관계로 눈 · 코 · 입의 간격은 밀집해 있는 형태이며 코의 길이도 비교적 짧다. 이러한 이유로 상호는 둥근 아동형의 맑은 인상을 풍긴다.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법의는 양어깨를 모두 감싸는 통견의를 착용하였다. 가슴에는 군의 상단이 주름 없이 간결하게 표현되었으며 한 줄의 띠가 군의 상단 위에 매듭표현 없이 조각되어 있다. 하체는 오른쪽 발이 왼쪽 무릎 위에 올려진 형태의 결가부좌를 취하고 있다. 하체의 옷주름은 음각과 양각으로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자연스럽게 양쪽으로 호형의 사선을 그리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아래를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등을 위로 향한 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깊이 있게 내리지는 않았지만 석가여래가 기본적으로 취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고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복장기가 있어서 불상 제작의 내력을 확인할 수 있다. 복장기에 의하면 이 불상은 1701년(숙종 27)에 제작되어 금강산 마하연 법화원(法華院)에 봉안되었던 불상이라고 한다. 특히 조각, 개금, 탱화 제작자의 이름으로 보아 상주 북장사 괘불탱을 조성한 영남 북부지역의 금어들에 의해 불상이 조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강사 석가석조여래좌상은 작은 규모의 불상이지만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의 불상양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