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사는 백제 무왕때 창건했다고 전한다. 고려 공민왕이 이 절을 방문해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였는데 이로 인해 절의 이름을 ‘나라의 기둥’라는 의미에서 상주사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몇 차례 중수하였고, 근래에도 중창불사가 있었다. 현재 절의 중앙에는 대웅전과 관음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대웅전의 서편에는 나한전과 요사 등이 있다. 상주사 대웅전에 봉안된 삼불상은 아미타불 · 석가불 · 약사불로 구성되었다. 주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협시한 삼불의 구성은 조선 후기 사찰의 주전각인 대웅전에서만 봉안되었고, 다른 전각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형식이다. 이러한 삼불 구성은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불-중방 사바세계의 영산교주인 석가불-동방 유리광세계의 교주인 약사불이라는 공간상의 구분에 따라 불국토를 형상화한 것이다. 삼세불이 과거불 · 현재불 · 미래불을 나타내는 시간 개념의 명칭인 반면에 상주사 대웅전에 봉안된 삼불은 공간 개념의 불상이기에 불상의 명칭은 삼신불이나 삼존불 또는 삼방불이 적절하다. 상주사 삼존불좌상은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상과 아미타여래상이 배치되어 있다. 규격 면에서 두 불상보다 석가여래상을 크게 제작하여 삼존불상의 주존불임을 강조하고 있다. 세 불상은 넓은 어깨, 안정감이 느껴지는 얼굴, 신체비례, 옷주름 표현 등은 동일하고 손 모습, 대의 입는 법, 승각기 표현 등에서는 서로 차이가 있다. 목조삼존불좌상은 모두 이마가 넓은 방형의 얼굴에 눈은 반개하였으며 편평하고 오뚝한 코, 단정히 다문 입 등에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앙의 석가여래좌상은 변형 편단우견식 대의를 입었으며 약사불과 아미타불은 통견식으로 대의를 입었다. 중앙에 위치한 석가여래좌상은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려뜨린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약사불과 아미타여래는 한쪽 손을 가슴 부위까지 올리고 다른 손은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데 두 불상의 손 위치가 서로 반대이다. 목조삼세불좌상은 모두 높이가 1m를 넘는 대형 목불로서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조형과 유려한 옷 주름 등을 특징으로 하는데 조선시대 목불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