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종은 1794년(정조 18)에 조성되어 현재 강릉의 관음사 법당에 봉안되어 있다. 정상부에는 음통과 용뉴(龍鈕: 용 모양의 꼭대기 장식)가 1개씩 있다. 용뉴의 용은 꼬리로 음통을 한 번 휘어 감고 있으며 2조의 발톱이 있는 다리로 종의 상부인 천판을 부여잡고 있다. 용은 이목구비가 잘 표현되어 있고 신체 비늘 묘사도 정교하다. 천판은 반구형이며 특별한 문양은 없다. 천판과 종신이 만나는 부분을 도드라진 1조의 선으로 구분하였다. 종의 상대에는 특별한 문양이 없다. 상대 아래에는 범자가 양각된 2중의 원문이 종신 윗부분 네 곳에 배치되어 있다. 범자문 아래에는 연곽(蓮郭)이 있다. 일반적인 방형의 연곽과는 다르게 사다리꼴 모양이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합장한 보살상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화관을 착용하고 합장한 자세의 보살상은 비례적이다. 연곽의 둘레에는 당초문을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나 관음사 소장 동종은 조선시대 기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도문양을 양각하였다. 연곽 내부에는 가볍게 도드라진 연뢰(蓮蕾)가 3개씩 세줄로 배치되어 있다. 연뢰의 간격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넓어지는데 그 주변에는 세형 연판이 둘러져 있다. 종신의 중앙 부분 아래쪽에 한 줄의 도드라진 선을 두어 종신을 구획하였다. 이 선 밑에는 명문이 있는데 “건륭오십구년 강릉 보현사 대종명 범종(乾隆五十九年 江陵寶賢寺大鐘銘梵鐘)”이라는 글이 있어 이 종이 1794년에 조성된 강릉 보현사의 종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문에는 종을 만든 권동삼(權東三)이란 장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주종장(鑄鐘匠)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권동삼은 1788년 안국사의 종을 제작할 당시 이만중의 차종장(次鐘匠)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주종장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청곡사의 종을 단독으로 주종하였는데 이 종은 문양이 전체적으로 큰 편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관음사 동종과 유사한 형식이다. 1794년 관음사 동종을 제작한 권동삼은 이후 1803년에는 선운사의 종을 제작하였다. 권동삼은 이만중과 주종 작업을 함께하였지만, 연곽이나 보살의 배치 등에서는 이만중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관음사 소장 동종을 포함해서 현재까지 3점의 동종을 제작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가 제작한 동종을 살펴보면 종을 만들 때마다 문양의 형태 및 도안 구성 등에 변화를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성 시기와 장인을 밝히는 명문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자료적 가치가 큰 조선 후기의 동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