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구미 금오산(金烏山) 정상(977m)의 약사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창건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다. 1618년(광해군 10) 간행된 『일선지(一善誌)』와 1799년(정조23)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이 절이 고찰이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95년(고종 21)의 『영남진지(嶺南鎭誌)』에는 약사암에 관해 “법당은 8칸으로 성내(城內) 삼리(三里)에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1935년 우상학이 지은 「약사암중수기(藥師庵重修記)」에는 본래 지리산에 있던 석불 3기 중 1기를 이곳 약사암으로 이안하고 나머지 2기를 수도산 수도암(修道庵)과 황악산 삼성암(三省庵)으로 옮겨 봉안했다고 적고 있다. 약사암의 약사전 내부에는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그 좌우로 일광·월광보살이 협시보살로 있다. 불상 뒤편에는 후불탱화가 걸려있다. 약사암에서 북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바위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높이 5.5m의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1968년 지정)이 조각되어 있다.
약사암 석조여래좌상은 화강암 1석으로 조성된 높이 95cm의 중형 석불좌상이다. 현재 전면이 두껍게 개금(蓋金)되어 있어 조성 시기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불상의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머리칼 장식인 나발이 표현되어 있다. 머리 위에는 육계가 솟아 있으며 육계 정상에는 낮은 원통형 모양의 정상계주가 있다. 정상 계주 앞에는 반원형의 중앙계주가 크게 조성되어 있다. 정상계주는 육계 나발 사이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 돌출되게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후보된 것으로 보인다. 이마에는 백호가 돌출되어 있고 상호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형태이다. 볼과 턱에 살이 붙어 있어 후덕한 인상을 풍긴다. 목에는 삼도가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통견을 입고 있으며 가슴에는 왼쪽 어깨에 걸쳐 비스듬히 내려뜨려 가슴을 가리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감는 옷인 승각기(僧却崎)를 입고 있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린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결가부좌한 다리 가운데에 올려 놓았다. 현재 왼손 위에는 약함이 올려져 있는데 이것은 근래에 올려 놓은 것이다. 1960년대의 사진에 의하면 원만한 상호에 완전한 형태의 석가여래상임을 알 수 있다. 약사암 석조여래좌상은 현재 두껍게 개금된 상태인데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살이 오른 얼굴임에도 방형으로 표현되지 않았으며 승각기가 수평이 아닌 사선으로 내려온 점 등은 조성 시기가 조선시대보다 더 올라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면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불일 가능성이 크다. 약사암 석조여래좌상은 영남지역의 석불 연구에 있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