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상 ()

해남 진불암 목조 16나한상
해남 진불암 목조 16나한상
조각
개념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인 나한의 모습을 표현한 불교조각. 응공 · 살적 · 불생 · 이악.
이칭
이칭
응공(應供), 살적(殺賊), 불생(不生), 이악(離惡)
내용 요약

나한상은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인 나한의 모습을 표현한 불교 조각이다. 나한상은 나말여초부터 나한신앙의 유행과 함께 조성되었다. 나한상은 16나한상, 18나한상, 50나한상으로 분류된다. 현존 나한상들은 17세기 이후의 것이 대부분이다. 조선 시대 나한상으로는 강원도 영월 창령사지 석조오백나한상, 순천 송광사의 십육나한상 등이 있다. 나한상은 불상·보살상과 달리 도상에 얽매이지 않아 여러 자세와 다양한 지물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 불교 조각의 다양한 미의식을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높다.

정의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인 나한의 모습을 표현한 불교조각. 응공 · 살적 · 불생 · 이악.
개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인 말로, 산스크리트어 아르하(Arhat)의 음역이다. 일체의 번뇌(煩惱)를 끊고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聖者)로서, 응공(應供), 무학(無學), 응진(應眞), 살적(殺賊), 불생(不生), 이악(離惡) 등으로도 번역된다. 나한은 소승의 법을 수행하는 성문사과(聲聞四果) 중에서 가장 높은 과위(果位)를 이룬 존재이다. 난제밀다라(難提蜜多羅, 慶友)가 저술하고 현장(玄奘)이 당의 654년에 번역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이하 『법주기』)에서는 십육나한(十六羅漢)석가모니불의 부탁을 받아 미륵불이 도래할 때까지 정법(正法)을 지키고 중생을 도와주는 보살로 기록하고 있다. 소승(小乘)적인 성격이 강한 나한은 『법주기』가 번역되면서 대승(大乘)적인 개념으로 바뀐다.

연원 및 변천

중국에서 나한상의 가장 이른 예는 당말오대(唐末五代)로 편년되는 소조(塑造) 나한상이다. 이 상은 돈황 막고굴(敦煌 莫高窟) 제54굴에서 반출되어 현재 프랑스 기메(Guimet)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 북송대에 조성된 항주(杭州) 연하동(煙霞洞) 18나한상, 남송대의 항주 비래봉(飛來峰) 18나한상 등이 있다.

우리나라 나한상에 대해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조의 강원도 오대산(五臺山) 북대(北臺) 상왕산(象王山)에 봉안된 오백나한화상(五百羅漢畵像)이 가장 이른 기록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고려 태조(太祖) 6년(923)에 오대 후량(後粱)에 사신으로 갔던 윤질(尹質)이 오백나한화상을 가져와서 신광사(神光寺)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기록 속의 나한상이 그림의 형태인 조각의 형태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서 나한상이 나말여초(羅末麗初)부터 출현한다는 것을 알려 준다.

고려시대 나한상에 대한 기록으로는 고려 예종(睿宗) 13년(1118)에 송의 황제가 보내온 십육나한상(十六羅漢像)을 안화사(安和寺)에 봉안하였다는 것과 함께 장안사(長安寺) 나한당의 십육나한상, 복령사(福靈寺) 십육나한소상(十六羅漢塑像), 묘광사(妙光寺) 십육나한상, 금골산(金骨山) 서굴(西窟)의 십육나한상, 단속사(斷俗寺) 석조오백나한상, 석왕사(釋王寺) 석조오백나한상 등이 있다.

조선시대 나한상에 대한 기록으로는 세조의 둘째 딸인 의숙(懿淑)공주와 그의 남편 정현조(鄭顯租)가 발원한 상원사(上院寺) 목조문수동자상(木造文殊童子像)의 복장문(腹藏文)에 십육나한상을 조성하였다는 내용 등이 있다. 현존하는 나한상들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등 전란으로 소실된 전각들이 재정비되면서 나한전이 세워지고 그 속에 봉안되었던 17세기 후반 이후의 것이 대부분이다.

내용

나한상은 나한재(羅漢齋)오백나한재, 반승(飯僧) 등의 나한신앙의 유행과 더불어 조성되었다. 나한상은 16나한상, 18나한상, 500나한상으로 분류된다. 16나한상은 『법주기』에 근거하며, 여기에 2존의 나한상이 더해져서 18나한상이 조성된다. 한편 500나한상은 16나한 중의 한 분이 권속으로 500나한을 거느린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들 나한상들은 나한전, 응진전(應眞殿),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 영산전(靈山殿) 등에 봉안된다.

16나한상과 18나한상은 단독의 석가모니불상이나 삼존불상, 혹은 가섭상(迦葉像)과 아난상(阿難像)이 시립한 오존불상의 좌우에 각각 배열되는데, 이들 상의 왼쪽에 홀수 서열의 나한상이, 오른쪽에 짝수 서열의 나한상이 봉안된다. 이들 나한상 뒤에는 각각 나한도가 있다.

현황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조성된 나한상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고려시대 나한상으로는 마모가 심하여 도상적인 특징은 알 수 없으나, 16개의 감실(龕室) 속에 각각 1존씩 배치한 천안 성불사(成佛寺) 마애십육나한상(磨崖十六羅漢像), 경기도 화성에서 출토되어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영통사(靈通寺) 승려 발원의 동제빈도로존자상(銅製賓度盧尊者像), 김천 직지사(直指寺)에서 출토되어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동나한상(金銅羅漢像) 등이 있다.

조선시대의 나한상으로는 강원도 영월 창령사지(蒼嶺寺址)에서 출토된 석조오백나한상, 정덕(正德) 11년(1516)에 조성된 실상사(實相寺) 서진암(瑞眞庵) 석조나한상, 인조(仁祖) 6년(1628)경에 인목대비(仁穆大妃) 김씨가 발원한 수종사(水鐘寺) 석탑 발견 금동나한상, 전라남도 나주 불회사(佛會寺)에서 발견된 오백나한상 파편, 인조 2년(1624)년경으로 추정되는 순천 송광사(松廣寺) 응진당(應眞堂)의 십육나한상(보물, 2008년 지정), 순치(順治) 13년(1656)경에 조성된 전주 송광사(松廣寺) 오백나한전의 목조십육나한상, 1684년에 색난(色難)에 의해 조성된 강진 정수사(淨水寺) 목조십육나한상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나한상은 불상이나 보살상과 달리 불교 경전의 도상에 얽매이지 않아 여러 모습의 자세와 다양한 지물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극도로 생략된 모습이 있는가 하면, 움직임이 크고 해학적인 모습도 있다. 나한상의 지물(持物)로는 염주(念珠), 발(鉢), 동물, 경전, 금강저(金剛杵), 과일 등이 있다. 그러나 나한상이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든 간에 상이 갖추어야할 심오한 정신적인 면은 항상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불교 조각의 다양한 미의식을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높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密多羅所說法住記)』(玄奘 譯)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49책
『나한』(국립춘천박물관, 2003)
「17세기 후반 영남 조각승 승호(勝湖) 작 나한상 연구」(김희경, 『미술사와 문화유산』, 명지대학교문화유산연구소, 2012)
「조선후기16나한상에 대한 연구」(조은정, 이화여자대학교 석사논문, 1987)
집필자
배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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