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가평군 현등사 지장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청동지장보살좌상.
개설
지장암은 18세기 중엽의 『여지도서(輿地圖書)』, 『범우고(梵宇攷)』, 『전등 · 봉선본말사지(傳燈 · 奉先本末寺誌)』 「운악산현등사사적(雲岳山懸燈寺事蹟)」 등의 기록을 통하여 1823년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871년의 『가평군지(加平郡誌)』에 폐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청동지장보살좌상은 19세기 중반에 지금의 현등사로 옮겨 왔을 가능성이 높다.
내용
청동지장보살좌상은 두건을 쓴 다음 머리 뒤에서 끈으로 묶었는데, 끈의 양 끝자락이 펼쳐져 어깨 뒤로 흘러내리고 있다. 이마 위의 두건은 접혀진 곳이라곤 전혀 없이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두건의 양쪽 자락은 어깨를 덮고 옆으로 흘러내린다.
상호(相好)는 이마의 가로 폭이 넓고 턱이 짧은 방형으로서 완만한 원을 그리는 눈썹과 그 사이에 동그랗게 표현된 백호(白毫), 적당히 뜬 눈, 삼각형의 코, 넓은 인중, 꾹 다문 입, 큰 귀를 갖추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라고 생각되는 두 줄의 선이 새겨져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쪽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오른쪽 무릎 위에 두었는데, 손에 지장보살의 지물(持物)인 보주(寶珠)를 잡고 있다. 왼손은 손등을 위로 한 채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은 통통한 편이나 손가락이 길고, 손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보살상은 대의(大衣)와 승각기(僧脚崎) 등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법의는 신체의 굴곡을 따라 유기적으로 표현되었다. 승각기 띠 위의 주름은 전혀 표현되지 않고 수평으로 밋밋하게 처리되었으며 띠 아래에는 살짝 나온 복부가 표현되었다. 법의 표현 방식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양쪽 어깨를 덮고 내려오는 두건과 오른쪽 어깨에서 팔뚝을 타고 흘러내리는 법의 자락, 오른쪽 발 끝을 살짝 덮은 다음 왼쪽 무릎 위로 드리워진 법의 자락이 지그재그식으로 큼직하게 처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좌는 복판(複瓣) 연화문으로 이루어진 앙련(仰蓮)의 상대와 복련(伏蓮)의 하대가 맞붙어 있는 모습으로, 앙련은 짧고 복련은 길다. 대좌는 다소 균형이 맞지 않고, 조각의 수준도 지장보살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현등사 청동지장보살좌상은 전체적인 비례와 얼굴 표정, 두건 형식, 지그재그식 법의 표현 등을 통하여 18세기 말 불상의 특징을보여 준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사찰문화재』인천광역시·경기도(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조계종출판사, 2012)
-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송은석, 사회평론, 2012)
- 『17세기 조각승과 불상 연구』(최선일, 한국연구원, 2009)
- 『조선후기 불교장인 인명사전』(안귀숙·최선일, 양사재, 2009)
- 『조선후기 승장 인명사전』(최선일, 양사재, 2007)
- 『조선시대 지장시왕도 연구』(김정희, 일지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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