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정지원” 명문이 새겨진 금동여래입상.
개설
내용
주존인 불상은 통견(通肩 : 옷이 양쪽 어깨를 덮고 있는 것) 형식으로 법의(法衣 : 불상의 옷)를 입고 있으며,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 시무외인(施無畏印 :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의 수인)을, 왼손은 아래로 내려 뜨려 여원인(與願印 : 소원하는 바를 들어준다는 의미의 수인)을 취하였다. 불상은 초기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인 머리와 손이 몸에 비해 큰 편이며, 전체적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커다란 육계(肉髻 : 정수리 위에 솟아나온 부분)와 장방형의 상호를 갖추고 있는데,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불상은 4등신(等身)의 비례에 부드러운 조형을 갖추고 있다. 법의의 끝자락은 ‘八’자 형태로 펼쳐져 대좌 옆으로 내려오고 있다. 얼굴만 남아 있는 좌협시 보살상은 보관(寶冠 : 보배로운 모자)을 쓰고 있다. 우협시보살상은 3등신의 비례를 갖추고 있으며, 불상과 같이 법의는‘八’자형이다.
광배는 윗부분이 뾰족한 연잎 형태로서, 두광(頭光 : 머리 주위의 빛의 표현)과 신광(身光 : 몸 주위의 빛의 표현)을 따로 구획하였으며, 그 바깥에는 도식화된 불꽃 문양이 좌우대칭으로 표현되어 있다. 광배의 윗부분에는 앙련(仰蓮 : 연꽃이 활짝 핀 모습) 형식의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화불(化佛 : 작은 불상)이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마치 그릇을 엎어 놓은 듯한데, 표면에는 복련(覆蓮 : 연꽃이 덮어져 있는 모습) 형식의 단판연화문(單瓣蓮華文 : 연잎 하나로 이루어진 연화문)이 음각되어 있다. 대좌 밑 안쪽에는 일정 부분 공간을 이루고 있다.
한편 광배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정지원이 죽은 아내 조사를 위하여 삼가 금상을 만들어 빨리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나길 바란다(정지원위망처조사경조금상조리삼도(鄭智遠爲亡妻趙思敬造金像早離三塗))”는 내용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 불상이 백제의 고도 부여(扶餘)에서 발견되었지만, 명문에 보이는 정씨와 조씨가 정작 백제 성씨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명문의 내용은 6세기 후반 삼국시대 사람들의 불교적인 내세관(來世觀:내세에 대한 관념)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은 부여의 부소산성에서 발견되었지만, 백제에서 조성되었다는 어떠한 내용도 명문에서 확인되지 않아 백제의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삼국시대불교조각』(국립중앙박물관, 1990)
- 『문화재대관』 5 보물 3(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 『국보』 2 금동불·마애불(황수영 편, 예경산업사, 1986)
- 「중국 산동성 불상과 삼국시대 불상」(김춘실, 『미술사논단』19, 한국미술연구소, 2004)
- 「백제불상조각연구」(김원룡, 『대한민국학술원논문집』31, 대한민국학술원, 199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