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상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보살상.
내용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은 1973년 개금(改金) 당시 복장(腹藏)에서 발원문만 9건 12점이 발견되었다. 발원문 가운데 “신룡 원년부터 순치 18년 신축년에 이르기까지 옛날과 마찬가지로 3번 중창했다. 문수존상을 조성하고 아울러 36화형을 조성했다(自神龍元年至順治十八年辛丑如舊三中創文殊尊像造像幷三十六化形)”는 내용을 통해 순치 18년(1661. 현종 2년)에 조성된 문수보살상임이 밝혀졌다.
세부를 살펴보면, 방형(方形: 네모반듯한 모양)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단정한데 표정은 엄숙하다. 머리 위에는 화려한 불꽃무늬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고, 그 아래로는 몇 가닥의 보발(寶髮), 즉 보살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다. 보관 좌우에는 관대(冠帶: 관의 띠)가 있으며, 바람에 날리는 듯 U자형으로 꺾어져 위로 올라간다. 귀는 길어 늘어져 있으며, 두 가닥의 보발이 귓불을 감싸고 있다.
상은 보살상이지만, 불상의 대의(大衣)를 통견(通肩: 양어깨를 덮음) 형식으로 걸쳤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보살상을 법당의 주존으로 봉안하면서 불상의 대의를 걸치는 사례가 많다. 대의는 두께가 두꺼워 신체의 윤곽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양 무릎의 너비가 넓어 안정감이 있으며, 같은 시기의 다른 조각에 비해 옷주름이 유려하고 힘이 있다. 따로 만들어 끼운 양손은 매우 섬세한데, 왼손은 가슴까지 들고 오른손은 다리 위에 얹어 기다란 지물(持物)을 들었다. 지물은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는 여의(如意)와 연봉오리로 이루어져 있다.
신체 위에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이 없으며, 불상의 대의를 걸친 점, 가슴 위에는 수평으로 가로지른 내의가 있지만 내의를 묶은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은 조선 후기 보살상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은 1661년 환적 의천(幻寂 義天, 1603-1690)이 돌아가신 부모의 영가천도를 위해 조성한 것이며, 조각은 당대 최고의 조각승인 회감(懷鑒)이 맡았다. 상원사 문수전에 봉안된 1466년 목조문수동자좌상과 1661년 목조문수보살좌상은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조선 최고의 불교조각이며, 한국 조각사 연구의 중요한 기준작품이다.
참고문헌
- 『강원도문화재대관-강원도지정편-』(강원도, 1993)
- 「오대산상원사 문수보살상복장유물에 대한 소고」(임영자, 『월간문화재』10, 197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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