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 복식 중 거들지 양식은 당의, 장옷, 견마기에서 확인된다.
당의는 왕실 이하 사대부의 여인들이 소례복으로 입는 대표적인 예복으로, 소매 끝에 거들지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출토품 중 안동권씨(16641722) 당의의 거들지 양식은 안감 소매 끝에 흰색 명주를 연결하고 겉감에는 한지를 대어 준 후 안감쪽의 명주를 겉감쪽으로 걷어 넘긴 형태이다. 청연군주(17541821) 당의는 안감을 길게 재단하여 한지심 없이 겉감 쪽으로 걷어 올린 형태이다. 해평윤씨(16601701)의 연화문단 당의와 공단 당의도 유사한 방식이다. 덕온공주(18221844)의 당의 2점 중 자적 당의는 소매 안감에서 연결된 흰색의 공단 거들지가 달렸다. 덕온공주의 혼례 때에 항아가 입은 항아 당의(1837년)는 흰 한지로 만든 거들지가 부착되어 있다. 19~20세기의 당의의 거들지 소재는 사(紗), 단(緞), 주(紬)로 다양하고 한지를 심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덕온공주의 녹색 홑 당의는 이색적으로 모시를 심으로 받치고 있다.
견마기는 저고리를 세 벌 갖추어 성장 차림을 할 때 가장 위에 입은 예장용 저고리이다. 견마기의 소매 끝에 거들지가 부착되어 있다는 사실은 고종 24년(1887) 정해년 『진찬의궤』 품목조에서 확인된다. 사천여령 9명의 초록색 곁마기감[絹莫只 外拱 草綠八兩紬]을 마련했는데 이때 백색의 거들지 옷감도 포함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견마기라는 옷에는 흰색 거들지가 부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수원박물관 소장 안동김씨 여인(17세기 중반)의 곁마기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해평윤씨 곁마기, 경주이씨(1700년대 중후반 추정) 견마기가 있다. 안감 소매 끝에 안감보다 질 좋은 명주를 덧붙여 소매 끝단을 겉감쪽으로 접어 올리면 안감 소매에 부착한 질 좋은 명주 옷감이 겉면에 드러나면서 거들지가 완성된다. 전세품으로는 덕온공주의 부금 회장저고리가 있는데, 끝동에 흰색 모시로 된 거들지를 덮어 준 형태여서 곁마기에 해당하는 옷이다.
장옷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덧입었던 여성의 대표적인 외출복이다. 소매 끝에 흰색 거들지를 단 것이 특징이다. 1500년대에는 긴 소매의 수구 부분을 접어서 거들지를 만든 단순한 형태이다. 이외에도 안감 소매 끝에 얇은 옷감을 덧 붙여 끝동 너비 정도로 접어 올린 형태가 있으며, 소매 끝동을 길게 달아 겉으로 접어 올린 것도 있다. 소매 끝단을 접어 올리게 되어 소매 안감의 끝 부분이 겉으로 보이게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소매 끝 안감은 겉감과 동일하거나 겉감보다 더 좋은 옷감을 사용한다.
19세기 이후 장옷은 소매 끝에 흰색 거들지가 부착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시기의 장옷은 높은 신분에서 장옷을 입거나 쓰개로 착장하였기 때문에 예복적 특정이 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전세품의 장옷은 소매 끝에 한지심을 만든 흰색 천을 부착한 후 겉쪽으로 걷어올린 거들지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쓰임으로 사용된 거들지는 시대에 따라 크기의 변화를 보이는데, 소매 길이가 줄어 들면서 거들지 너비도 좁아졌으며, 끝동보다 다소 넓게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