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예복을 상징하기 위해 당의, 장옷, 견마기의 소매 수구를 접어 올린 소매 끝 양식.
#연원 거들지는 당의, 장옷, 견마기와 같은 여성의 옷 소매 끝에 걷어 올린 형태의 소매 끝 양식으로, 장식성이 강조되어 여성의 예복에 적용된 구성법이다. 조선 전기에 소매 길이가 긴 장옷이나 장저고리의 소매를 접어 입던 방식이 점차 변화되어 거들지로 정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여성 복식 중 특히 당의, 견마기, 장옷에서 거들지의 형제(形制)가 확인된다. 소매를 걷어 올린 모양에 대해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의 여기복식 중에서 흑장삼의 소매를 걷어올린 모양을 ‘권수(捲袖)’라고 하였으며 서양 복식의 턴업(Turn-up) 형태와 같다. 정해년 『진찬의궤(進饌儀軌)』(1887) 품목(稟目)조에는 거들지[巨(等+乙)只次] 재료로 흰색 팔양주[白八兩紬]를 마련하였는데, 이처럼 거들지는 흰색 옷감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옷감을 덧대는 방법이 다양하여, 옷감 속에 한지심을 넣어 소매 끝 장식에 힘을 받도록 한 경우도 있다. 이는 주로 전세품에서 확인된다. 출토 복식 중에서 거들지의 한지심이 많지 않은 이유는 수백 년 동안 땅속에 매장된 과정에서 한지심이 퇴화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의는 왕실 이하 사대부의 여인들이 소례복으로 입는 대표적인 예복으로, 소매 끝에 거들지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출토품 중 안동권씨(1664~1722) 당의의 거들지 양식은 안감 소매 끝에 흰색 명주를 연결하고 겉감에는 한지를 대어 준 후 안감쪽의 명주를 겉감쪽으로 걷어 넘긴 형태이다. 청연군주(1754~1821) 당의는 안감을 길게 재단하여 한지심 없이 겉감 쪽으로 걷어 올린 형태이다. 해평윤씨(1660~1701)의 연화문단 당의와 공단 당의도 유사한 방식이다. 덕온공주(1822~1844)의 당의 2점 중 자적 당의는 소매 안감에서 연결된 흰색의 공단 거들지가 달렸다. 덕온공주의 혼례 때에 항아가 입은 항아 당의(1837년)는 흰 한지로 만든 거들지가 부착되어 있다. 19~20세기의 당의의 거들지 소재는 사(紗), 단(緞), 주(紬)로 다양하고 한지를 심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덕온공주의 녹색 홑 당의는 이색적으로 모시를 심으로 받치고 있다. 견마기는 저고리를 세 벌 갖추어 성장 차림을 할 때 가장 위에 입은 예장용 저고리이다. 견마기의 소매 끝에 거들지가 부착되어 있다는 사실은 고종 24년(1887) 정해년 『진찬의궤』 품목조에서 확인된다. 사천여령 9명의 초록색 곁마기감[絹莫只 外拱 草綠八兩紬]을 마련했는데 이때 백색의 거들지 옷감도 포함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견마기라는 옷에는 흰색 거들지가 부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수원박물관 소장 안동김씨 여인(17세기 중반)의 곁마기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해평윤씨 곁마기, 경주이씨(1700년대 중후반 추정) 견마기가 있다. 안감 소매 끝에 안감보다 질 좋은 명주를 덧붙여 소매 끝단을 겉감쪽으로 접어 올리면 안감 소매에 부착한 질 좋은 명주 옷감이 겉면에 드러나면서 거들지가 완성된다. 전세품으로는 덕온공주의 부금 회장저고리가 있는데, 끝동에 흰색 모시로 된 거들지를 덮어 준 형태여서 곁마기에 해당하는 옷이다. 장옷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덧입었던 여성의 대표적인 외출복이다. 소매 끝에 흰색 거들지를 단 것이 특징이다. 1500년대에는 긴 소매의 수구 부분을 접어서 거들지를 만든 단순한 형태이다. 이외에도 안감 소매 끝에 얇은 옷감을 덧 붙여 끝동 너비 정도로 접어 올린 형태가 있으며, 소매 끝동을 길게 달아 겉으로 접어 올린 것도 있다. 소매 끝단을 접어 올리게 되어 소매 안감의 끝 부분이 겉으로 보이게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소매 끝 안감은 겉감과 동일하거나 겉감보다 더 좋은 옷감을 사용한다. 19세기 이후 장옷은 소매 끝에 흰색 거들지가 부착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시기의 장옷은 높은 신분에서 장옷을 입거나 쓰개로 착장하였기 때문에 예복적 특정이 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전세품의 장옷은 소매 끝에 한지심을 만든 흰색 천을 부착한 후 겉쪽으로 걷어올린 거들지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쓰임으로 사용된 거들지는 시대에 따라 크기의 변화를 보이는데, 소매 길이가 줄어 들면서 거들지 너비도 좁아졌으며, 끝동보다 다소 넓게 제작되었다.내용
참고문헌
원전
- 정해년 『진찬의궤(進饌儀軌)』
단행본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편, 『진주류씨 류정의 부인 경주이씨 출토복식』(단국대학교 출판부, 2017)
논문
- 김은희, 『朝鮮時代 唐衣 變遷에 관한 硏究』(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 박성실, 「朝鮮後期 『進爵儀軌』·『進饌儀軌』類의 服飾 硏究」(『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권2, 민속원, 2005)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