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유인석 심의 ( )

의생활
의복
국가유산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이 착용한 심의와 복건 및 대대.
의복
재질
모시|명주
제작 시기
1800년대 후반
관련 의례
관례(冠禮)|상례(喪禮)|제례(祭禮)
소장처
제천의병전시관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의병장 유인석 심의(義兵將 柳麟錫 深衣)
분류
등록문화유산/기타/동산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등록문화유산(2016년 06월 21일 지정)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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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의병장 유인석 심의는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이 착용한 심의와 복건 및 대대이다. 의암 유인석이 유학자로 활동하였던 시기인 1800년대 후반에 착용한 심의 1점, 복건 1점, 대대 1점이다. 심의는 깃이 네모난 방령 심의로, 소색 모시에 검은색 가선을 둘렀다. 대대는 심의와 같은 재질이며, 복건은 도련한 검은색 명주로 만들었다. 착장자가 명확하고 조선 말기에 통용된 방령형 심의로서 복식사에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이 착용한 심의와 복건 및 대대.
연원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 이항로(李恒老, 17921868)의 학통(學統)을 계승한 학자로 문하에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유림의 대변자로서 활약하였고, 1894년 갑오개혁 후 친일 내각에 반기하여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으며, 이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유인석 단령심의(深衣)는 유인석이 유학자로 활동하던 시절인 1800년대 후반까지 착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목 부분의 깃이 네모난 방령형(方領形) 심의로 조선 후기 심의 양식을 대표한다.

형태 및 용도

유인석의 심의는 일습(一襲) 중에서 심의 1점, 머리에 쓰는 복건(幅巾) 1점, 허리에 둘러준 대대(大帶)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의는 신분이 높은 선비들이 입던 겉옷으로 깃 모양이 네모난 방령형 홑옷이다. 몸판은 소색(素色) 모시[苧布]로 만들고 깃, 소매끝, 밑단에 검은색 명주로 선을 둘러 겉으로 드러나게 하였다. 전체적으로 손바느질하였다.

크기는 길이 128.2㎝인데, 의(衣)의 길이는 54.4㎝, 상(裳)의 길이는 73.8㎝이다. 화장은 94㎝, 품은 66㎝이다. 은 5.5㎝ 너비의 검은색 도련 명주로 네모나게 만든 방령형이다.

깃의 오른쪽 끝에는 소색 옷감으로 만든 매듭 단추 2개를 달고, 오른쪽 겨드랑 아래에는 매듭 고리를 달아 깃을 여밈하였다. 소매는 너비 55.5㎝로 넓고 끝이 둥근 두리소매 형태이다. 소매 끝에는 너비 5㎝, 길이 23.5㎝의 수구단을 달아주었다.

허리선 아래에 부착된 상(裳)은 윗너비 14㎝, 아래 너비 28㎝, 길이 76㎝ 크기의 사다리꼴 형 12폭이 연결되어 있는데, 앞길 좌우에 각각 4폭씩 총 8폭이 연결되었고 뒷길은 4폭으로 연결되었다. 도련은 5㎝ 검은색 도련 명주를 둘러주었다.

대대는 심의를 입고 허리를 둘러준 띠이다. 길이 390㎝, 너비 5.5㎝의 크기이다. 심의와 같은 소색 모시를 사용하여 겹으로 만들었으며, 좌우 양 끝 106㎝만큼의 가장자리를 검은색 도련주(搗鍊紬)로 선을 둘렀다.

복건은 심의를 입을 때 착장하는 대표적인 모자이다. 검은색 도련주를 사용하여 홑으로 만들었다. 너비 25.2㎝, 길이 74.8㎝의 크기이다. 가장자리는 제물단을 접어 안쪽에서 공그르기하였는데, 옆선 안단 너비 4.4㎝, 도련 안단 4.8㎝를 접어 넣어 마무리하였다. 머리 중심에서 좌우 21.3㎝ 내려온 지점 좌우에 끈을 부착하였다. 끈의 너비는 5㎝, 짧은 끈 62㎝, 긴 끈 82.5㎝이다.

변천 및 현황

심의는 의(衣)와 상(裳)이 연결된 흰 바탕에 검은 선을 두른 옷이다. 고대 중국에서 비롯되어 고려 말 주자학의 전래 이후로 유학자들이 즐겨 입었다.

옷의 형태에 유교의 이념이 표현되어 있는데, 상의(上衣)는 하늘[乾], 하상(下裳)은 땅[坤]을 상징하였으며, 12폭으로 이루어진 상(裳)은 1년 12달을 상징하였다.

가장자리에 두른 검은색 선은 부모에 대한 효와 공경을 뜻한다. 심의를 입을 때에는 복건을 쓰고 허리에는 대대와 채조(采絛)를 함께 둘러주어 착용하였다.

조선시대의 심의는 대체로 세 가지 형태의 깃 모양이 사용되었다. 깃 모양의 변화는 심의를 착장한 유학자들의 초상화를 통해 확인된다.

곧은 깃 형태로 깊이 여며지는 직령형(直領形) 심의는 고려 말 인물인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초상화가 있으며, 조선시대 인물의 것으로는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이재(李縡, 1680~1746), 김이안(金履安, 1722-1791), 최익현(崔益鉉, 1833-1906), 황현(黃玹, 1855-1910)의 것이 있다.

곧은 깃이나 여며지지 않고 맞닿는 대금형(對襟形)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복건심의본(幅巾深衣本)이 대표적이다.

깃 둘레가 사각형 모양으로 파인 방령형 심의는 허전(許傳, 1797-1886) 초상화가 대표적이다.

초상화의 사례에서 확인되듯이 심의는 직령형 심의가 가장 대표적이며 조선 말기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해지는 유물은 망자의 습의(襲衣)로도 사용되어 조선시대 사대부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 많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의 이익정(李益炡, 1699~1782) 묘 출토 심의는 복건, 대대, 조대(條帶) 일습이 출토되었다. 또한 국가민속문화유산 고대박물관 소장 홍진종 의복(高大博物館 所藏 洪鎭宗 衣服) 중 직령형 심의가 있다.

대금형 심의와 방령형 심의는 조선 후기에 일시적으로 유행한 것으로 보여진다. 대금형 심의는 초상화에서만 확인되며, 방령형 심의 유물은 1900년대 초반 유물로 추정되는 부산대학교 박물관 소장 노상익(盧相益, 1849~1941) 심의가 있다. 또한, 유인석의 심의를 참조하여 그린 표준영정 유인석 초상화[1986년 지정]가 전해진다.

의의 및 평가

한국 근대사와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유인석이 유학자 시절에 착용한 심의이다. 착장자가 명확하고 조선 말기에 통용된 방령형 심의로서 복식사에 중요한 자료이다. 2016년 6월 21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후손의 기탁으로 제천의병전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2016 등록문화재 등록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17)
정윤용, 『심의 고증』(민속원, 2014)
정혜경, 『심의』(경남대학교 출판부, 1998)
김영숙, 『한국복식문화사전』(미술문화, 1998)

논문

이상은 · 원명심 · 이명숙, 「중원지방의 심의와 도포에 관한 연구」(『한국생활과학회지』 7-2, 한국생활과학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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