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로 ()

이항로 영정
이항로 영정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화서집』, 『화동사합편강목』 등을 저술하였으며, 조선 후기의 민족사상인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한 학자.
이칭
이술(而述)
화서(華西)
시호
문경(文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92년(정조 16)
사망 연도
1868년(고종 5)
본관
벽진(碧珍: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
출생지
경기도 양평
주요 관직
공조참판|경연관
내용 요약

이항로는 조선후기 『화서집』, 『화동사합편강목』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다. 1792년(정조 16)에 태어나 1868년(고종 5)에 사망했다. 3세 때 『천자문』을 떼고, 6세 때 『십구사략』을 읽고 「천황지황변(天皇地皇辨)」을 지었다. 1808년 한성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세태를 비판하며 문과에 응시하지 않았다. 성리학연구에 전념하였는데 주리철학을 바탕으로 심전설(心專說)을 주장하였다. 심전주리론(心專主理論)은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으며 민족운동의 실천적 지도이념으로 승화되었다. 최익현·김평묵·유중교 등이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정의
조선 후기에, 『화서집』, 『화동사합편강목』 등을 저술하였으며, 조선 후기의 민족사상인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한 학자.
개설

본관은 벽진(碧珍). 초명은 광로(光老)였으나 철종 사친(私親)의 이름을 피하여 개명하였다.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아버지는 이회장(李晦章)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이의집(李義集)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3세 때 『천자문』을 떼고, 6세 때 『십구사략(十九史略)』을 읽고 「천황지황변(天皇地皇辨)」을 지었다. 12세 때 신기령(辛耆寧)에게서 『서전(書傳)』을 배웠다. 1808년(순조 8) 반시(泮試: 한성초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당시 권력층의 고관이 과거급제를 구실로 자기 자식과의 친근을 종용하자, 이에 격분하여 과장의 출입마저 수치스럽다 하여 끝내 과거에 응하지 않았다. 과거를 포기한 뒤 당시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서울의 임로(任魯)와 지평의 이우신(李友信) 등을 찾아가 학우의 관계를 맺었다.

25∼26세 때 어버이와 사별한 뒤 학문에 전념하였다. 30세 때 이항로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한 청년들이 많이 모여들었으나, 세속을 피해 쌍계사 · 고달사 등 사찰을 옮겨 다니며 사서삼경과 『주자대전(朱子大全)』 등 성리학연구에 힘을 쏟았다.

이항로의 학덕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1840년(헌종 6) 휘경원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였으며, 그 뒤에도 지방수령 등에 제수되었지만 고사하고 향리에서 강학을 위해 여숙강규(閭塾講規)를 수정하여 실시하였다. 이 무렵 한말의 위정척사론자로 유명한 최익현(崔益鉉) · 김평묵(金平默) · 유중교(柳重敎) 등이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62년(철종 13) 이하전(李夏銓)의 옥사에 무고로 체포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1864년(고종 1) 당시 권력자 조두순(趙斗淳)의 천거로 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에 임명된 후 같은 해에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 사헌부 지평(持平) · 장령(掌令) 등에 차례로 임명되었으나 노환(老患) 때문에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동부승지의 자격으로 입궐하여 흥선대원군에게 주전론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 뒤 공조참판으로 승진되고 경연관(經筵官)에 임명되었으나, 대원군의 비정(秕政)을 비판한 병인상소와 만동묘(萬東廟)재건 상소 등으로 인해 대원군으로부터 배척당했다.

이항로의 학문은 주리철학(主理哲學)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호남의 기정진(奇正鎭), 영남의 이진상(李震相)과 함께 침체되어가는 주리철학을 재건한 조선조 말기 주리철학의 3대가의 한 사람이다.

이항로의 주리철학은 이기합일설(理氣合一說)을 주장한 명(明)의 나흠순(羅欽順) 일파의 우주론을 반대하고, 이(理)와 기(氣)를 엄격히 구별하는 동시에 그것을 차등적으로 인식하였다.

즉, ‘이’가 주가 되고 ‘기’가 역(役)이 되면 만사가 잘 다스려져 천하가 편안할 것이나, 만일 반대로 기가 주가 되고 이가 버금이 되면 만사가 어지러워져 천하가 위태로울 것이라 하여 이 · 기를 차등적으로 보았다.

또, 주리론에 기초를 둔 심전설(心專說), 즉 심즉리(心卽理), 심즉기(心卽氣)설을 반대하고 심합이기설(心合理氣說)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존기비(理尊氣卑)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중교가 비판하였듯이 이리단심(以理斷心)의 이론이라 할 수 있으니 이항로의 심설은 심전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항로의 사상은 심전주리론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항로의 심전주리론은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춘추대의(春秋大義)라는 윤리와 아울러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처럼 하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집처럼 한다는 애국사상과 자주의식을 강조함으로써 조선조 말기의 민족사상인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가 되고, 나아가서 민족운동의 실천적 지도이념으로 승화되었다.

저서로는 『화서집』 · 『화동사합편강목(華東史合編綱目)』 60권,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 『화서아언(華西雅言)』 12권 등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화서집(華西集)』
『면암집(勉庵集)』
『한말의 민족사상』(홍순창, 탐구당, 1975)
『한국철학사』(유명종, 한명문화사, 1963)
『조선유학사』(현상윤, 민중서관, 1949)
『조선유교연원』(장지연, 해동서관, 1922)
「이항로의 위정척사사상」(홍순창,『독서신문』270, 1976)
「이항로」(신석호,『조선의 유학자 8인』, 신구문화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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