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기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좌의정,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대(文戴)
  • 미수(眉叟), 백춘(伯春)
  • 병암(屛菴)
인물/전통 인물
  • 본관선산(善山)
  • 사망 연도1519년(중종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좌의정|영중추부사
  • 출생 연도1455년(세조 1)
  • 출생지선산(善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창 (대구대학교, 동양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좌의정,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내용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미수(眉叟)·백춘(伯春), 호는 병암(屛菴). 선산 출신. 김양보(金揚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지(金地)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김지경(金之慶)이며, 어머니는 강거례(康居禮)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77년(성종 8)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1482년에 수찬(修撰)에 오른 뒤 예조정랑·사유(司諭)·경연시강관(經筵侍講官)·집의(執義)를 거쳐서, 1492년 직제학(直提學)이 되었다.

이어서 좌·우부승지를 거쳐 이듬해에는 도승지가 되었고, 1496년(연산군 2)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곧 돌아와 동지성균관사·관상감제조(觀象監提調)·공안상정사제조(貢案詳定司提調)를 역임하였다. 1498년 호조참판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어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공조참판이 되었다.

1500년에 한성부판윤이 된 뒤 곧 형조판서가 되었으며,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세자우빈객(世子右賓客)을 지내고, 1504년 갑자사화로 문외출송(門外黜送)당하였다. 1506년중종이 즉위하자 이조판서가 된 뒤 병조·공조·예조판서를 차례로 지내고, 1513년(중종 8) 우의정이 되었으며, 좌의정을 거쳐 1518년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학식이 넓어 천문·지리·수학에까지 정통하였고, 언행이 법도에 맞아 사람들은 ‘동방의 부자(夫子)’라고 존경하였다. 성종의 신임이 두터워 10여 년 동안 강연(講筵)을 맡았다. 시호는 문대(文戴)이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국조명신록(國朝名臣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안락당집(顔樂堂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음애일기(陰崖日記)』

  • - 『해동잡록(海東雜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