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경림(景林). 서울 출신.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자 1911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생계수단으로 영국인이 경영하는 전차회사(電車會社)의 감독으로 취업하면서 고국으로부터 건너오는 동지들을 격려하고 맞아들여 독립운동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해외 독립투쟁은 기지설정과 산업시설의 구비가 주요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교육사업을 전개하여 한국 교포의 민족의식화 교육과 민족사상 고취에 앞장섰다. 또한 이동녕(李東寧)·손정도(孫貞道)·이광수(李光洙)·신규식(申圭植) 등 30여 명의 독립지사와 함께 1919년 4월 10일에서 11일 사이에 임시의정원을 구성하였다.
그곳에서 헌법의 제정 등 정부 수립에 필요한 절차를 밟아 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였다. 이때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되었고 그 뒤 순국할 때까지 재정지원을 위하여 국내외에 군자금 모집요원을 파견하고 현지의 지사를 포섭하여 자금을 모집하는 등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속 지원하였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