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천영학교 교사, 북로군정서 총재비서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20년 1월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총재 서일(徐一)과 뜻을 같이하여 북로군정서에 가입하여 총재비서로서 활동하였다.
이해 4월 재무국장 윤정현(尹廷鉉)의 명령으로 국내에 잠입, 부여의 갑부 박창규(朴昌奎) · 박남규(朴南奎) · 강석민(姜錫民) 등으로부터 많은 군자금을 조달해가지고 돌아와 서무부 김택(金澤)에게 전달하였다.
1922년 6월에는 사관연성소(士官練成所) 확충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공채 3만 5000원을 가지고 입국하여 함경북도 회령에서 김동진(金東鎭), 청진에서 김동순(金東純), 서울에서 문용섭(文龍燮), 부여에서 문장섭(文章燮) · 김재설(金在卨) 등의 동지를 포섭하는 데 성공하였다.
공채처분을 마치고 만주로 건너가려고 준비중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23년부터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다시 만주로 건너가서 대종교를 통해 교포의 지도 및 계몽에 진력하였다.
1942년 만주 동경성(東京城)에 천전(天殿)을 세우기로 계획하고 준비하던 중 재만 지역의 주요 항일 인물로 지목되어 그해 11월 19일 미행하던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뒤 혹독한 고문을 당한 나머지 1943년 목단강성(牡丹江省)자무쓰형무소(佳木斯刑務所)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성』(이현희, 동방도서, 1987)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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