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구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천영학교 교사, 북로군정서 총재비서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4년(고종 31)
사망 연도
1943년
출생지
충청남도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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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천영학교 교사, 북로군정서 총재비서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남도 부여 출생. 대종교본부의 강우(姜虞)의 둘째 아들로 1919년 만주로 건너가 동간도의 천영학교(天英學校) 교사가 되어 제2세민족교육에 정열을 쏟았다.

1920년 1월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총재 서일(徐一)과 뜻을 같이하여 북로군정서에 가입하여 총재비서로서 활동하였다.

이해 4월 재무국장 윤정현(尹廷鉉)의 명령으로 국내에 잠입, 부여의 갑부 박창규(朴昌奎)·박남규(朴南奎)·강석민(姜錫民) 등으로부터 많은 군자금을 조달해가지고 돌아와 서무부 김택(金澤)에게 전달하였다.

1922년 6월에는 사관연성소(士官練成所) 확충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공채 3만 5000원을 가지고 입국하여 함경북도 회령에서 김동진(金東鎭), 청진에서 김동순(金東純), 서울에서 문용섭(文龍燮), 부여에서 문장섭(文章燮)·김재설(金在卨) 등의 동지를 포섭하는 데 성공하였다.

공채처분을 마치고 만주로 건너가려고 준비중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23년부터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다시 만주로 건너가서 대종교를 통해 교포의 지도 및 계몽에 진력하였다.

1942년 만주 동경성(東京城)에 천전(天殿)을 세우기로 계획하고 준비하던 중 재만 항일거물로 지목되어 그해 11월 19일 미행하던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뒤 혹독한 고문을 당한 나머지 1943년 목단강성(牡丹江省)자무쓰형무소(佳木斯刑務所)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성』(이현희, 동방도서, 1987)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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