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수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 조선의용군, 조선민족혁명당 특파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중국군 육군소장을 역임한 군인 ·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강팔수(姜八壽), 강양검(姜楊儉)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고종 37)
사망 연도
1992년
출생지
경상남도 밀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 조선의용군, 조선민족혁명당 특파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중국군 육군소장을 역임한 군인 · 독립운동가.
개설

이명은 강팔수(姜八壽)·강양검(姜楊儉). 경상남도 밀양 출신. 김원봉(金元鳳)이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24년 10월 중국군 간부양성학교인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4기 보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 중국군 장교로서 교관(敎官) ·배련영장(排連營長)·부단장주임(副團長主任) 등을 역임하면서 대일전(對日戰)에 참여하였다.

1940년 7월부터는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특파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광복군총사령관 지청천(池靑天)의 명령으로 광복군의 각 지대에서 일본군 점령지역에 군사특파단을 파견하도록 독려하였다.

동시에 일본군 내에 한국국적을 가진 사병을 접수하여 1945년 10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잠편지대(暫編支隊)를 전방에서 각각 조직하였으며, 이 때 광둥[廣東]지역 잠편지대에 참모로 배속되어 지대장 최덕신(崔德新) 등과 함께 탈출하였다.

1951년 중국군 육군소장으로 복무하다가 1965년 퇴역한 뒤 대만(臺灣)에서 거주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광복군명단』(광복군동지회, 1990)
『한민족광복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90)
『백범일지』(김구, 교문사, 1988)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독립운동사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집필자
이현희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