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수

  • 역사
  • 인물
  • 대한제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 조선의용군, 조선민족혁명당 특파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중국군 육군소장을 역임한 군인·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강양검(姜楊儉), 강팔수(姜八壽)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92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0년(고종 37)
  • 출생지경상남도 밀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현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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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 조선의용군, 조선민족혁명당 특파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중국군 육군소장을 역임한 군인·독립운동가.

개설

이명은 강팔수(姜八壽)·강양검(姜楊儉). 경상남도 밀양 출신. 김원봉(金元鳳)이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24년 10월 중국군 간부양성학교인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4기 보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 중국군 장교로서 교관(敎官) ·배련영장(排連營長)·부단장주임(副團長主任) 등을 역임하면서 대일전(對日戰)에 참여하였다.

1940년 7월부터는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특파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광복군총사령관 지청천(池靑天)의 명령으로 광복군의 각 지대에서 일본군 점령지역에 군사특파단을 파견하도록 독려하였다.

동시에 일본군 내에 한국국적을 가진 사병을 접수하여 1945년 10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잠편지대(暫編支隊)를 전방에서 각각 조직하였으며, 이 때 광둥[廣東]지역 잠편지대에 참모로 배속되어 지대장 최덕신(崔德新) 등과 함께 탈출하였다.

1951년 중국군 육군소장으로 복무하다가 1965년 퇴역한 뒤 대만(臺灣)에서 거주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광복군명단』(광복군동지회, 1990)

  • - 『한민족광복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90)

  • - 『백범일지』(김구, 교문사, 1988)

  •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 『독립운동사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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