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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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금오서원
금오서원
유적
국가유산
1572년,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건립한 서원.
이칭
이칭
남산서원(藍山書院)
유적
건립 시기
1572년
관련 인물
길재|김종직|정붕|박영|장현광
면적
5,577㎡
소재지
경상북도 구미시 유학길 593-16 (선산읍)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금오서원(金烏書院)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기념물(1985년 10월 15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구미시 유학길 593-16 (선산읍)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금오서원은 1572년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원사 중의 하나이다. 1567년 길재를 제향하는 서원 건립의 허가를 받아서 1572년 묘우를 완성하고, 1575년 사액을 받았다. 당시 김종직, 정붕, 박영을 병향하였다. 1602년 중건하면서 남산서원이라 칭하고, 1609년에 재사액 현판이 내려졌다. 1642년 사림의 공의로 장현광을 추향하였다.

목차
정의
1572년,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건립한 서원.
내용

1567년(명종 22) 최응룡(崔應龍, 15141580), 김취문(金就文, 15091570) 등이 선산부사 송기충(宋期忠)[1567년 6월 체직]에게 길재의 향사와 유생의 장수를 위한 서원 건립을 요청하면서 추진되었다. 송기충은 유생들의 요구를 감사 류창문(柳昌門)에게 전달하였고, 조정에서 서원 건립을 허가하였다. 최응룡의 「금오서원봉안제문」을 보면 1572년(선조 5) 묘우가 완성되어 길재를 독향(獨享)하였다가 그 후 향내 사림들이 논의하여 김종직(金宗直), 정붕(鄭鵬), 박영(朴英)을 병향(並享)했다.

금오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파괴된 후 1602년(선조 35) 서원 터를 옮겨서 중건하였다. 1602년(선조 35) 선산부사 김용(金涌, 15571620)노경임(盧景任, 15691620), 최현(崔晛, 1563~1640), 원장 김석윤(金錫胤) 등과 부의 동쪽 남산(藍山)에 터를 잡고 서원을 지었는데, 이름을 ‘남산서원(藍山書院)’이라고 하였다. 당시 사당을 먼저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하였는데, 1605년(선조 38) 장현광(張顯光)이 금오서원[사당]을 낙동강변으로 이건하였다.

그 후 1606년(선조 39) 조정에서 재사액이 결정되었으나, 실제 현판은 1609년(광해군 1)에 내려졌다. 1619년(광해군 11)에 비로소 서원의 규모가 갖춰졌으며, 장현광이 서원의 재호(齋號)를 정하였다. 선산 사림은 공의로 1642년(인조 20)에 장현광을 추향(追享)하였다.

금오서원이라 사액된 것은 당초 서원을 건립할 당시 금오산 기슭에 위치했기에 그곳의 지명을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임진왜란 이후 서원을 남산(藍山)으로 옮기고는 이곳의 지명을 따라서 남산서원이라 칭하였다. 그런데 재사액된 명칭은 이전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으므로 선산의 사림들은 금오서원과 남산서원이란 명칭을 함께 사용하였다.

금오서원은 건립 이래로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는 길재를 제향하는 대표적 서원으로서 존속되었다. 그 후 선산지역의 강학과 향론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금오서원은 1891년(고종 28) 선산부사 김사철의 주도하에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으며, 그의 공을 기리는 ‘부백 김사철 송공비’가 서원 입구에 세워져있다. 선산 사림들은 수계(修稧)하여 1918년, 1930년에도 거듭 중수를 진행하였으며, 1960년에도 중수가 진행되었다. 2010년에는 상현사와 강당, 읍청루를 수보하고, 2012년에 관리사와 해우소를 신축했다. 2015년에 전사청과 교육관을 신축하여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다.

경내의 주요건물로는 묘우인 상현묘(尙賢廟), 전사청(典祀廳), 강당인 정학당(正學堂), 동재 시민재(時敏齋), 서재 일건재(日乾齋), 문루 읍청루(挹淸樓) 등이 있으며,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 주변에 금오정(金吾亭), 교육관인 청아재(菁莪齋)와 남산실(藍山室), 관리사 2동이 있다.

금오서원은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20년 12월 28일 상현묘와 정학당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조두록(俎豆錄)』
『전고대방(典故大方)』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
『일선속지(一善續誌)』
『일선지(一善志)』
『한강집(寒岡集)』
『경암집(敬菴集)』
『송당집(松堂集)』
『용암선생문집(龍巖先生文集)』
『인재선생문집연보(訒齋先生文集年譜)』
『둔봉선생문집(遯峯先生文集)』
『운천선생문집(雲川先生文集)』
『야은선생속집(冶隱先生續集)』
『금오서원중수일기록(金烏書院重修日記錄)』
『김오서원강학계안(金烏書院講學稧案)』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단행본

『선산의 맥락』(선산군, 1983)

논문

이병훈, 「조선후기 선산 금오서원의 건립과 운영」(『민족문화논총』 78,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21)
이병훈, 「조선후기 선산지역 재지사족의 동향과 원사 건립 추이」(『민족문화논총』 73,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9)
임근실, 「16세기 선산지역 서원 건립에 나타나는 도통의식」(『퇴계학보』 137, 퇴계학연구원, 2015)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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