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지영해부사, 성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다시 지평을 거쳐 예조정랑이 되었고,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이 되어 삼남지방(三南地方)을 순찰하면서 임기응변으로 일을 잘 처리하여 그의 신임을 얻었으며, 1597년 이원익의 지시를 받고 올린 전쟁 상황의 상세한 보고로 선조의 신임을 얻어 교리로 임명되었다.
1598년 사간원헌납 · 종부시전적(宗簿寺典籍)에 제수되었지만 부임하지 않다가 그 뒤 지영해부사(知寧海府事) · 성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에 앞서 스승 장현광의 심부름으로 정인홍(鄭仁弘)을 만나보고 돌아와 대단히 간사한 인물이라고 말했던 일이 뒷날 정인홍에게 알려져서 무고한 탄핵을 받고 성주목사에서 파직되었다.
그 뒤 낙동강변에 은거하고 여생을 보내다가 선산(善山)에서 별세하였다. 승정원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경암집(敬菴集)』 7권이 있다.
참고문헌
- 『경암집(敬菴集)』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선조실록(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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