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菴). 아버지는 진사 노수성(盧守誠)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이조판서 장열(張烈)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과 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정자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 돌아와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에 대항하였다. 1594년 사헌부지평이 되었고, 그 뒤 예조좌랑·강원도순안어사(江原道巡按御使)가 되어 삼척부사 홍인걸(洪仁傑)의 비행을 적발, 보고하였다.
그 뒤 다시 지평을 거쳐 예조정랑이 되었고,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이 되어 삼남지방(三南地方)을 순찰하면서 임기응변으로 일을 잘 처리하여 그의 신임을 얻었으며, 1597년 이원익의 지시를 받고 올린 전쟁 상황의 상세한 보고로 선조의 신임을 얻어 교리로 임명되었다.
1598년 사간원헌납·종부시전적(宗簿寺典籍)에 제수되었지만 부임하지 않다가 그 뒤 지영해부사(知寧海府事)·성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에 앞서 스승 장현광의 심부름으로 정인홍(鄭仁弘)을 만나보고 돌아와 대단히 간사한 인물이라고 말했던 일이 뒷날 정인홍에게 알려져서 무고한 탄핵을 받고 성주목사에서 파직되었다.
그 뒤 낙동강변에 은거하고 여생을 보내다가 선산(善山)에서 별세하였다. 승정원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경암집(敬菴集)』 7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