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위(鄭煒: 17401811)는 조선 후기 학자로,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휘조(輝祖), 호는 지애(芝厓)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8세손으로, 이상정(李象靖: 17111781)과 최흥원(崔興遠: 1705~1786)을 사사하였다.
8권 4책의 목활자본으로,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도서이다.
1789년 모친상을 당한 정위는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가례(家禮)』를 연구하는 한편 이에 관한 중국과 조선 학자들의 다양한 예설들을 정리하여 『가례』의 조목 아래 배치하는 작업을 하였다. 모친상을 마친 뒤에도 수정과 보완 작업을 지속해 1807년경 『가례휘통(家禮彙通)』의 초고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간행은 100여 년 후인 1923년 저자의 6세손 정종현(鄭宗鉉)에 의해 이루어졌다. 특기할 만한 것은 책을 인쇄하고 발행한 장소가 저자의 8대조 한강 정구가 지었고 저자가 복원한 경상북도 성주의 숙야재(夙夜齋)라는 사실이다.
『가례휘통』이 조선시대 예학사에서 갖는 의의는 18~19세기의 예학적 경향을 함께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18세기는 유장원(柳長源)의 『상변통고(常變通攷)』와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家禮增解)』 등 16세기 이후의 『가례』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들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19세기에는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과 같은 종합적인 행례서가 출현한다. 『가례휘통』은 이러한 18세기와 19세기의 경향에서 나타나는 문제의식이 공존하는 예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