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휘통 ()

가례휘통
가례휘통
유교
문헌
조선 후기, 학자 정위가 『가례』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저술한 예서.
문헌/고서
편찬 시기
1807년
간행 시기
1923년
저자
정위(鄭煒)
권책수
8권 4책
판본
목판본
소장처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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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가례휘통』은 조선 후기 학자 정위가 『가례』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저술한 예서이다. 정위는 1789년 모친상을 치르는 동안 『가례』를 연구하면서, 이 책의 내용이 주희의 만년 정론과 일치하지 않는 사례들을 밝혀냈다. 또한 중국과 조선의 다양한 예설을 수집하여 『가례』 각 조목 아래에 배치하고, 기존 『가례』에 포함되지 않은 조목들까지 추가함으로써, 『가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가례휘통』을 편찬하였다.

키워드
정의
조선 후기, 학자 정위가 『가례』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저술한 예서.
저자 및 편자

정위(鄭煒: 17401811)는 조선 후기 학자로,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휘조(輝祖), 호는 지애(芝厓)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8세손으로, 이상정(李象靖: 17111781)최흥원(崔興遠: 1705~1786)을 사사하였다.

서지사항

8권 4책의 목활자본으로,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도서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1789년 모친상을 당한 정위는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가례(家禮)』를 연구하는 한편 이에 관한 중국과 조선 학자들의 다양한 예설들을 정리하여 『가례』의 조목 아래 배치하는 작업을 하였다. 모친상을 마친 뒤에도 수정과 보완 작업을 지속해 1807년경 『가례휘통(家禮彙通)』의 초고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간행은 100여 년 후인 1923년 저자의 6세손 정종현(鄭宗鉉)에 의해 이루어졌다. 특기할 만한 것은 책을 인쇄하고 발행한 장소가 저자의 8대조 한강 정구가 지었고 저자가 복원한 경상북도 성주의 숙야재(夙夜齋)라는 사실이다.

구성과 내용

『가례휘통』은 『가례』의 체제에 따라 구성하되 다음과 같은 점들을 유념하였다. 첫째, 『가례』의 내용과 주희의 만년 정론이 불일치한 것들을 밝혔다. 둘째, 『가례』의 미비한 부분을 중국과 조선의 예설들로 보완하고자 하였다. 특히 정위는 심상(心喪)과 개장(改葬), 길제(吉祭) 등 『가례』에 없는 내용을 정리하여 첨부함으로써 완성된 예서를 만들고자 하였다.

의의 및 평가

『가례휘통』이 조선시대 예학사에서 갖는 의의는 18~19세기의 예학적 경향을 함께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18세기는 유장원(柳長源)『상변통고(常變通攷)』와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家禮增解)』 등 16세기 이후의 『가례』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들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19세기에는 이재(李縡)『사례편람(四禮便覽)』과 같은 종합적인 행례서가 출현한다. 『가례휘통』은 이러한 18세기와 19세기의 경향에서 나타나는 문제의식이 공존하는 예서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논문

정우락, 「『가례휘통』 해제」(『한국예학총서』 61, 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
장동우, 「조선시대 『가례』 연구의 진전」(『태동고전연구』 31,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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