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순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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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신 정시가 홍경래의 난 때 순절한 사적을 기록한 실기. 순절록.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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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정시가 홍경래의 난 때 순절한 사적을 기록한 실기. 순절록.

편찬/발간 경위

1930년 현손 정두용(鄭斗容)과 삼종손 정오영(鄭五永) 등에 의해 간행되었다. 박의동(朴儀東)·김하용(金夏容)의 서문과 정두용·정오영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7권 3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권1에는 순절사적(殉節事蹟)·유생상언(儒生上言)·이조회계(吏曹回啓)·예조계(禮曹啓)·시장(諡狀)·묘표·신도비명 각 1편, 권2·3에는 뇌문 61편, 만사 168수, 권4에는 일기, 권5∼7에는 관문(關文)·보영초(報營草) 각 1편, 회제(回題) 2편, 감사계초(監司啓草) 2편, 문 6편, 사제문 1편, 치제문 3편, 사적비명 1편, 정려기 1편, 보문(報文) 2편, 계 2편, 윤음 1편, 관문·장(狀)·신도비명·묘표 각 1편, 통문 3편, 소 1편, 뇌문 66편, 만사 169수 등이 실려 있다.

권1∼3은 정로의 사적이고, 권4는 종합된 것이며, 권5∼7은 정시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다. 권1의 「충경공순절사실(忠景公殉節事實)」은 정로가 선비의 몸으로 아들을 따라 가산관아에 가 있었던 사실, 1811년(순조 11) 12월 홍경래의 반도가 가산을 침입한 사실, 아들 정시가 절의를 지켜 순국한 사실, 아들의 뒤를 따라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순절한 사실들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경상도유생박해수등상언(慶尙道儒生朴海壽等上言)」은 1858년(철종 9) 경상도의 선비 1백여 명이 연명 상소한 것이다. 정로의 충절을 높이 찬양하고 그 공로에 따른 시호를 내려 줄 것과, 형과 함께 있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몸으로 아버지의 몸을 가렸으나 홀로 살아남은 정질(鄭耋)에 대해서도 벼슬을 내려 절의를 포상해야 됨을 주장하였다. 그 결과로 이조판서의 증직이 내리고 충렬(忠烈)의 시호가 하사되었다.

권4의 「충렬공일기(忠烈公日記)」는 생존한 정질이 쓴 1811년 12월 18일에서 다음해 1월 18일까지의 사건 기록과, 종형이 쓴 1월 19일부터 2월 19일까지의 반장 기록(返葬記錄)이다. 그밖에 정주(定州)의 수난한 곳에 사실 기록을 남겨 후세에 전하려고 한 「정주충의단사적비명(定州忠義壇事蹟碑銘)」과 일생의 사적을 기록한 「신도비명」 등이 있고, 공적의 조사·처리 과정과 포상의 실시에 따른 각 조간의 왕복 문서인 「회계」·「계」·「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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