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손자 두흠(斗欽)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윤희구(尹喜求)의 서문과 권말에 두흠의 발문이 있다.
6권 3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2에 부(賦) 2편, 사 2편, 시 167수, 소 6편, 권3·4에 소 4편, 서(書) 2편, 서(序) 2편, 기 5편, 발 5편, 설 2편, 잠 1편, 명 1편, 상량문 3편, 고유문 4편, 제문 21편, 전(傳) 2편, 권5·6은 부록으로 연보 1편, 전교(傳敎) 12편, 주1 5편, 만사 17편, 제문 2편, 행장 1편, 묘갈명 1편, 지(識)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에는 1836년(헌종 2) 주2에 주3되었을 때 지은 「남정부(南征賦)」가 있는데, 문체가 뛰어나고 임금을 생각하는 간곡한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사의 「귀거래사(歸去來辭)」 · 「잠여사(潛女辭)」도 그때 지은 것인데, 문체가 역시 아름답다. 「잠여사」는 해녀의 생활을 그린 것이다.
시에는 「오색수(五色水)」 · 「신흥사문대서(新興寺門大書)」 · 「어호(漁戶)」 등 그가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있을 때, 설악산 일대의 경관을 보고 읊은 것이 많은데, 대개 주4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소는 사직소(辭職疏)가 많다. 그러나 주5를 지적한 「함평읍폐소(咸平邑弊疏)」는 함평 일대의 당시 생활상과 관리의 횡포 등을 잘 말해주고 있다. 계속되는 흉년으로 주민 중 7할 이상이 마을을 비우고 떠나가서 농토가 황폐하여 가는 실정을 통계 숫자를 들어 열거하면서 대책을 건의하고 있다.
「의소(擬疏)」에서는 당시 정국의 시폐를 지적하고, 임금이 왕도정치를 행해서 헐벗은 백성을 구제하고, 언로를 열어 민의를 넓게 수렴해야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밖에 당시 정치를 염려하여 비상시의 사전 대비책을 건의한 「십예소(十豫疏)」, 고질화된 시폐 여섯 가지를 들고 개선책을 건의한 「진시폐소(陳時弊疏)」 등은 모두 19세기 초의 정치와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