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도동서원은1568년 김굉필을 추모하기 위해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건립한 서원이다. 1568년 비슬산 기슭에 쌍계서원으로 건립되어 1573년 사액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04년 김굉필의 묘소가 있는 도동으로 옮겨 중건하였다. 1607년 재사액을 허가받고, 1610년 봉안식을 거행하였다. 1871년의 원사 훼철령에도 존속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중정당과 사당, 담장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10월 10일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다. 2019년 7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568년(선조 원년)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의 고향인 현풍현 사림들은 지방관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서 비슬산 기슭에 도동서원의 전신인 ‘쌍계서원(雙溪書院)’을 건립하였다. 쌍계서원은 1573년(선조 6) 경주 옥산서원, 영천 이산서원과 함께 사액을 받았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서원이 소실되자, 1604년(선조 37) 오설면 도동의 김굉필 묘소 아래로 서원을 옮겨 중건하였다. 이때 서원명을 ‘보로(甫老)’로 하였는데, 1607년(선조 40)에 감사의 계청으로 ‘도동(道東)’으로 재사액되었다. 그러나 사액판과 치제문이 늦게 내려오면서 봉안식은 1610년(광해군 2)에 거행되었다. 당시 이미 중건한 서원을 비워둘 수 없다는 여론이 많았기에 1607년 퇴계 이황의 글자를 집자한 ‘도동서원’ 편액을 제작하여 임시로 걸었다. 그 후 1610년 봉안례를 거행하면서 경상도 도사 배대유(裵大維)가 쓴 사액 현판은 강당 내부에 걸고, 퇴계글씨를 집자한 편액은 강당 외부에 걸었다.
도동서원의 중건은 김굉필의 외증손인 정구(鄭逑)의 역할이 컸다. 그는 1604년(선조 37) 중건을 관장할 원장을 천거하고, 이듬해에는 원규(院規)를 제정하였다. 또한 재사액을 청원하고, 중건에 필요한 물력을 관찰사와 지방 수령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중건 이후 원장과 각종 행사의 집사에 정구의 문인들의 적극적 참여와 지원이 있었다. 현풍 사림들은 이러한 정구의 노력과 학문을 인정하여 1678년(숙종 4) 그를 추배(追配)하였다.
도동서원은 전학후묘(前學後廟), 전저후고(前低後高)로 대표되는 한국 서원 건축의 위계성을 가장 우수하게 표현하였다고 평가된다. 외곽에는 낮은 담을 두르고, 사당공간에는 높은 담을 둘러서 영역을 한정하였다. 서원 입구에는 서원 건립을 기념하여 정구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으며, 언덕을 오르면서 진입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강학공간 너머에 지원공간인 전사청이 있다. 문루인 수월루(水月樓)를 지나면, 중문인 환주문(喚主門), 강당인 중정당(中正堂), 내삼문인 신문(神門), 사당이 위치해 있고, 강당의 앞쪽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거하던 동재인 거인재(居仁齋)와 서재인 거의재(居義齋)가 있다. 수월루는 원래 없었던 건물로서 1849년(헌종 15)에 건립하였다. 1863년(철종 14)에 중수했으나 1888년(고종 25)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73년에 중건하였다.
중정당과 사당, 담장은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된 강당인 중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 및 학문의 강론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세 겹의 기단으로 높게 조성되었으며, 기단석과 면석에는 용머리, 물고기, 다람쥐 등의 조각이 있는데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중정당에서 사당으로 가는 돌계단에도 각종 도형과 봉황 등이 새겨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된 사당에는 김굉필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측 벽에 정구의 위패가 종향되어 있다. 사당의 벽면 좌우에는 1605년 창건 당시에 그린 벽화 2점이 있다. 2007년 도동서원은 서원 전역이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19년 7월 6일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현재 도동서원은 춘추향사와 김굉필 묘소에 묘제를 지내고 있다. 매년 2월과 8월 중정(中丁)에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다. 묘제는 음력 3월 10일과 10월 2일에 지내왔으나 현재는 가을 묘제만 지내고 있다. 묘제축식은 1606년(선조 39) 10월에 작성된 것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묘제에는 메[밥]와 갱[탕]을 올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소장 자료는 도동서원의 중건 사실과 운영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도동중창사적』, 『각처통문등초』, 『심원록』, 『입원록』, 『원임록』, 토지 · 노비안 등 성책 고문서 105종, 215건과 『경현록』, 『경현속록』, 『점필재김선생문도록첨간변파록』 등의 책판 총 8종 71장이 확인된다.
이외에 전적(典籍)은 1969년 조사에서 총 95종, 529책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내사본(內賜本)인 『춘추(春秋)』 27권 10책, 『오경백편(五經百篇)』 5권 5책,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 1책과 『경현록(景賢錄)』 6권 3책, 『사마방목』 1책, 『전운옥편(全韻玉篇)』 2권 2책, 『경현속록보유(景賢續錄補遺)』 1책 등 총 7종, 23책이 확인된다. 그 밖에 하사제기(下賜祭器)인 상준(象尊) · 희준(犧尊) · 궤(簋) · 보(簠) · 작(爵) · 촛대(燭臺) 등의 유물이 있으나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