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계서원은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에 권도(權濤, 15751644)를 추모하기 위해 1788년 창건한 서원이다. 제향인은 동계(東溪) 권도와 동산(東山) 권극량(權克亮, 15841631)으로 이들은 숙부와 조카 관계이다. 권도는 1672년(현종 13) 문익점을 제향한 도천서원(道川書院)에 병향(幷享)했었다. 당시 봉안문은 최경(崔絅)이 지었다. 그러나 1787년(정조 11) 문익점을 제향한 서원으로서 도천서원이 사액(賜額)되면서 권도의 위패를 옮기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다.
1788년(정조 12) 단성의 사림들은 감영과 예조에 문의하여 위패 이안과 서원 건립을 허가받았다. 이에 권도가 만년에 강학을 하였던 동계정사(東溪精舍)의 동쪽에 서원을 건립하고, 그곳을 지명을 따라서 완계서원이라 하였다. 상량문은 정범조(丁範祖)가 지었다. 이어서 1789년(정조 13) 8월에 봉안례를 지냈는데 당시 봉안문은 안정복(安鼎福)이, 상향문은 유심춘(柳尋春)이 지었다.
한편 권극량은 1716년(숙종 42) 두릉서원(杜陵書院; 두릉향사, 杜陵鄕祠)에 배향했으나 1719년(숙종 45)에 훼철되었다. 이후 1801년(순조 1) 완계서원에 종향(從享)될 때까지 80여 년간 향사가 끊겼었다. 1808년(순조 8)에는 권도의 유문(遺文)을 수습하여 완계서원에서 간행하였는데, 대산 이상정(李象靖)이 교감을 보았다. 이때 제작된 『동계선생문집』 책판은 1983년 8월 6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완계서원 건물로는 사당인 경덕사(景德祠), 강당인 양성당(養性堂), 동재인 거경재(居敬齋), 서재인 유의재(由義齋), 정문인 하학문(下學門), 문루인 상달루(上達樓)가 확인된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면서 모든 건물이 사라졌다. 이후 강당은 1874년(고종 11)에 중건했으며, 대문[직방문]과 내삼문 및 사당[경덕사], 동재는 1985년에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