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례상변통고』, 『심동정도』, 『이기휘편』 등을 저술하였으며, 이황의 사상을 계승하고 정의한 영남학파의 중추적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53년 연일현감이 되어 민폐를 제거하고 교육을 진흥하는 데 진력하였다. 2년 2개월 만에 사직하려 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자, 그대로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고신(告身: 직첩의 별칭)을 박탈당하였다. 그 이후로는 오직 학문에만 힘을 쏟아 사우들과 강론하고, 제자를 교육하는 데 전념하였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병조참지·예조참의 등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학문세계와 저서
한편 이황의 존리적인 태도를 하나의 이념으로 받아들여 일방적인 주리론을 펴는 것을 반대하고, 이(理)의 동정(動靜)과 이기(理氣)의 선후(先後) 등이 가지는 의미를 해명하고 본 뜻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성명이기(性命理氣)에 대한 논의보다는 덕성을 배양하는 일용궁행(日用躬行)의 실천적 공부에 치중해야 함을 강조하였고, 일용평상(日用平常)의 도리인 유학의 본지로 돌아가는 일을 몸소 실천하였다.
이상정의 학문적 흐름은 동생 이광정(李光靖)과 남한조(南漢朝)를 통해 유치명(柳致明)으로 이어지고, 이진상(李震相)에 이르러 유리론(唯理論)으로 전개되었으며,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곽종석(郭鍾錫)으로 계승되었다.
이상정은 학문에 크게 힘써 문장·율려(律呂) 등 제도문물에 대하여 연구하고 경학에 침잠하였다. 저서 및 편저로는 『사례상변통고(四禮常變通攷)』·『약중편(約中編)』·『퇴도서절요(退陶書節要)』·『심동정도(心動靜圖)』·『이기휘편(理氣彙編)』·『경재잠집설(敬齋箴集說)』·『심무출입설(心無出入說)』·『주자어절요(朱子語節要)』·『밀암선생연보(密庵先生年譜)』·『심경강록간보(心經講錄刊補)』·『연평답문속록(延平答問續錄)』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산문집(大山文集)』
- 『조선유학사』(현상윤, 현음사, 1982)
- 『한국철학사』(유명종, 일신사, 1984)
- 『자료한국유학사초고』(이병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사연구실,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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