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왕 ()

목차
관련 정보
고대사
인물
통일신라의 제34대(재위: 737년~742년) 왕.
이칭
시호
효성(孝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742년
내용 요약

효성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37년부터 742년까지이며, 성덕왕의 둘째 아들로 형이 죽자, 태자로 책봉되어 즉위했다. 부왕 때 정상화된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한층 강화했다. 외교적 통로를 통해 중국의 선진문물도 활발하게 수입하여 당 현종이 "신라는 군자의 나라"라고 했을 정도로 문화수준이 높았다. 740년, 왕비와 후궁의 알력을 둘러싸고 모반사건이 있었으나 평정했다. 이 모반 사건은 신라 왕실의 전제왕권이 점차 약화되면서 억압되었던 귀족세력의 고삐가 풀리기 시작한 신호로 해석된다. 재위 6년째에 사망했다.

정의
통일신라의 제34대(재위: 737년~742년) 왕.
개설

재위 737∼742.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승경(承慶). 성덕왕의 둘째 아들로, 형인 태자 중경(重慶)이 717년(성덕왕 16)에 죽었으므로, 724년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성덕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머니는 성덕왕의 계비(繼妃)인 소덕왕후(炤德王后)이고, 비는 739년(효성왕 3)에 맞아들인 이찬(伊飡) 김순원(金順元)의 딸 혜명(惠明)이다.

효성왕은 즉위하면서 사정부(司正府)의 승(丞)과 좌우의방부(左右議方府)의 승을 모두 좌(佐)로 바꿨다. 이것은 ‘승(丞)’자가 왕의 이름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즉위하던 해(737) 3월에 이찬 정종(貞宗)을 상대등에 임명하여 귀족회의를 관장하게 하고, 아찬(阿飡) 의충(義忠)을 집사부(執事部)의 중시(中侍)에 임명하여 행정을 담당하게 하였다.

739년 의충이 죽자 이찬 신충(信忠)을 중시에 임명하고, 왕제(王弟)인 헌영(憲英 : 뒤의 경덕왕)의 관등을 파진찬(波珍飡)으로 하여 태자로 삼았다.

또한 전 왕인 성덕왕 때에 정상화된 당나라와의 외교적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외교적 통로를 이용해 중국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특히, 738년에 당나라 사신 형숙(邢璹)이 신라에 올 때 당나라 현종(玄宗)이 그에게 ‘신라는 군자(君子)의 나라’라고 일러준 것을 보아, 당시 신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이 때 형숙은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비롯한 서책을 왕에게 바쳤다. 여기서 신라의 선진문물에 대한 수용자세를 엿볼 수 있다.

740년에는 파진찬 영종(永宗)의 모반사건이 있었으나 모두 평정되었다. 반란의 원인은 영종의 딸이 효성왕의 후궁이 되어 왕의 총애를 받는 것을 왕비가 시기하여 그의 족당(族黨)과 더불어 후궁을 모살한데 있다. 이에 영종이 왕비의 족당을 원망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보면 단순한 여인들의 투기가 정치적 반란을 유발한 것 같으나, 실제는 성덕왕대에 전성을 구가하던 중대(中代) 왕실의 전제왕권이 점차 약화되면서부터 축적되었던 정치적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것은 전제왕권 하에서 억압되었던 귀족세력이 왕권의 약화를 틈타 다시 세력을 뻗치기 시작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741년에 귀족세력의 대표인 상대등 정종과 경덕왕대에 상대등으로 활동한 사인(思仁)이 왕을 대신해 열병(閱兵)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재위 6년째 되던 742년 5월에 승하하자, 시호를 효성이라 하였다. 유명(遺命)에 따라 법류사(法流寺) 남쪽에서 화장해 유골을 동해에 뿌렸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