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명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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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삼명서원 정측면
포항 삼명서원 정측면
유적
조선 전기 문인 이눌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건립한 서원.
이칭
이칭
삼명재(三明齋)
유적
관련 인물
이눌(李訥)
소재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신창길87번길 47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삼명서원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인 이눌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이눌의 본관은 영천이며, 자는 희인이고 호는 약우이다. 1917~1953년 사이 삼명재로 건립된 후 1968년 경에 서원으로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포항시 향토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동명이인인 낙의재 이눌의 행적을 도용했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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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 문인 이눌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건립한 서원.
내용

삼명서원은 포항시 남구 장기면 마현리에 있는 서원으로 약우(若愚) 이눌(1553~?)을 제향하고 있다. 이눌의 본관은 영천(永川)[영양(永陽)]이며, 자는 희인(希仁)이고 호는 약우(若愚)이다.

현재의 건물은 3칸의 솟을대문인 정중문(正中門), 5칸 규모의 강당, 3칸 규모의 사당인 상의묘(尙義廟)와 서재(西齋)로 되어 있다. 특히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가구는 5량가의 이익공(二翼工)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2칸과 1칸씩을 각각 연접시킨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우측 온돌방 전면의 퇴칸은 1칸 규모로 넓게 간살을 잡고, 바닥도 1자 가량을 높게 설치하고 주위에는 주1을 세운 주2을 설치하여 누마루와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다. 강당 외미에 ‘삼명서원(三明書院)’ 현판이, 강당 내부에는 ‘삼명재기’, ‘삼명재 상량문’ 판이 걸려 있다. 강당 좌측 온돌방 문위에 ‘상의헌(尙義軒)’ 편액이 걸려있다.

삼명서원은 조선시대 문헌과 근대 읍지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1917년 옛 장기향교 터에 새워진 “성교유허 장사랑 훈도 이공사적비”와 강당에 걸려 있는 손후익(孫厚翼, 18881953)의 「삼명재기(三明齋記)」에 따르면 19171953년 사이 당초 ‘삼명재(三明齋)’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917년 영일향교에서 옥산서원으로 보낸 통문에는 당시 이눌의 후손들이 그의 현창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사적비의 비문은 서파 유필영(柳必永), 삼명재 기문은 문암 손후익에게 부탁하여 지었다.

그러나 비문을 받을 당시 이눌의 행적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즉 이눌은 명분이나 절의 등의 행적이 없었으며, 다만 한 고을에서 전고(典古)에 박학(博學)하였을 뿐이라고 했다. 후손들이 말하는 행적은 동명이인이었던 청안 이씨(淸安 李氏) 낙의재(樂義齋) 이눌(李訥, 1569~1599)의 창의(倡義) 행적이며, 또한 죽계(竹溪) 이대임(李大任)과 직재(直齋) 서방경(徐方慶) 및 그의 종질(從姪) 서극인(徐克仁) 등의 임진왜란 의병활동도 역시 약우 이눌이 한 것처럼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원 건립은 진행되기 어려웠다. 그 결과 삼명재를 건립하여 추모해왔으며, 1968년에 현재의 건물로 보수하며 삼명서원으로 명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포항시 향토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원전

「1917년 영해 영일향교(迎日鄕校) 통문(通文)」
『낙의재집(樂義齋集)』

단행본

김윤규, 『포항지역 서원의 어제와 오늘』(포항문화원, 2019)
『영일군사』(영일군사편찬위원회, 1987)

기타 자료

성교유허장사랑훈도이공사적비(聖校遺墟將仕郎訓導李公事蹟碑)
『포항관내 충효열비 현황조사 및 원문번역 용역보고서』(포항시, 2020)
『영천이씨족보』(영천이씨대종회)
주석
주1

난간두겁대를 받치는, 짧고 가느스름한 기둥. 위는 구부정하게 내밀고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다. 우리말샘

주2

건넌방, 누각 따위의 대청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깐 난간이 있는 좁은 마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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