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명서원은 포항시 남구 장기면 마현리에 있는 서원으로 약우(若愚) 이눌(1553~?)을 제향하고 있다. 이눌의 본관은 영천(永川)[영양(永陽)]이며, 자는 희인(希仁)이고 호는 약우(若愚)이다.
현재의 건물은 3칸의 솟을대문인 정중문(正中門), 5칸 규모의 강당, 3칸 규모의 사당인 상의묘(尙義廟)와 서재(西齋)로 되어 있다. 특히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가구는 5량가의 이익공(二翼工)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2칸과 1칸씩을 각각 연접시킨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우측 온돌방 전면의 퇴칸은 1칸 규모로 넓게 간살을 잡고, 바닥도 1자 가량을 높게 설치하고 주위에는 주1을 세운 주2을 설치하여 누마루와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다. 강당 외미에 ‘삼명서원(三明書院)’ 현판이, 강당 내부에는 ‘삼명재기’, ‘삼명재 상량문’ 판이 걸려 있다. 강당 좌측 온돌방 문위에 ‘상의헌(尙義軒)’ 편액이 걸려있다.
삼명서원은 조선시대 문헌과 근대 읍지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1917년 옛 장기향교 터에 새워진 “성교유허 장사랑 훈도 이공사적비”와 강당에 걸려 있는 손후익(孫厚翼, 18881953)의 「삼명재기(三明齋記)」에 따르면 19171953년 사이 당초 ‘삼명재(三明齋)’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917년 영일향교에서 옥산서원으로 보낸 통문에는 당시 이눌의 후손들이 그의 현창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사적비의 비문은 서파 유필영(柳必永), 삼명재 기문은 문암 손후익에게 부탁하여 지었다.
그러나 비문을 받을 당시 이눌의 행적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즉 이눌은 명분이나 절의 등의 행적이 없었으며, 다만 한 고을에서 전고(典古)에 박학(博學)하였을 뿐이라고 했다. 후손들이 말하는 행적은 동명이인이었던 청안 이씨(淸安 李氏) 낙의재(樂義齋) 이눌(李訥, 1569~1599)의 창의(倡義) 행적이며, 또한 죽계(竹溪) 이대임(李大任)과 직재(直齋) 서방경(徐方慶) 및 그의 종질(從姪) 서극인(徐克仁) 등의 임진왜란 의병활동도 역시 약우 이눌이 한 것처럼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원 건립은 진행되기 어려웠다. 그 결과 삼명재를 건립하여 추모해왔으며, 1968년에 현재의 건물로 보수하며 삼명서원으로 명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포항시 향토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