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최종적으로 지붕을 덮어 내부 공간을 형성한다. 넓은 면적의 지붕을 단 하나의 부재만으로는 덮을 수 없다. 여러 부재를 사용해서 지붕의 면적을 작게 분할해야만 가능하다. 지붕에 최종적으로 기와나 이엉을 얹을 수 있도록 바탕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는 목부재를 서까래 또는 연목(椽木)이라고 한다.
서까래의 양 끝단 하부에는 이것을 지지하기 위한 부재가 설치되는데 이를 도리(道里)라고 한다. 서까래 역시 정해진 길이 이상으로 한없이 긴 부재를 구하기 어렵다. 따라서 건물의 규모가 커진다면 사용해야 할 도리의 숫자도 증가하게 된다. 한편 도리 역시 무한한 길이의 목재를 구하기 어려운 만큼 여러 개의 부재를 붙여 나가면서 건물을 짓는다. 이때 길이 방향으로 서로 다른 부재를 붙여 나가는 기법을 ‘이음’이라고 한다. 도리가 하늘에 홀로 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음이 이루어지는 부분에는 기둥을 설치해서 도리를 지지한다. 기둥들은 육중한 지붕의 무게를 홀로 떠받치다 보니 양옆으로 넘어지기가 쉽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기둥 양옆에 많은 인방(引防, 창방)들을 결구해서 쓰러지는 것을 막는다.
청동기 시대 장방형 평면의 움집 중에서는 벽체를 따라 기둥이 일정하게 배치되고, 건물 내부 중앙에도 열을 맞춰 기둥이 놓인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는 보를 사용하지 않고 기둥, 인방, 도리, 서까래만으로 건물을 지은 사례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필요에 따라 보(椺, 樑)라는 부재가 만들어졌다. 보는 상부에 무거운 하중을 가해도 부러지거나 변형되지 않고 버텨 내는 굵은 부재를 말한다. 기둥 위에 보를 얹고 보의 중앙부 어느 곳에 긴 기둥 대신 짧은 기둥(동자주(童子柱))을 얹은 다음, 이것으로 도리를 받친다면 내부에 기둥이 없어도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이때 평주(平柱) 상부에서 도리와 보가 직각으로 만나게 되는데, 각각의 부재를 가공해서 하나의 부재 높이로 겹치게 만드는 것을 ‘맞춤’이라고 한다.
가구 유형을 대표하는 용어로 조선시대에는 ‘량(樑)’을 사용했다. 량은 대량, 종량, 퇴량과 같이 대부분 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하지만 간혹 량이 보가 아니라 도리를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 상량식(上樑式)은 건축물의 뼈대가 완성되는 순간에 치르는 의식이다. 마지막 도리를 조립해서 뼈대를 완성하는 순간에 집을 관장하는 성주신을 부르는 의식이기에 뼈대를 이루는 마지막 부재는 도리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때의 량은 보가 아니라 도리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문헌에서 3량, 5량, 7량이 등장하는데 이는 모두 도리의 숫자를 의미한다. 장방형 평면 건물의 종단면에서 확인되는 도리의 숫자를 말한다. 현대에는 조선시대의 개념인 량과 더불어 건물 내부에 세워진 고주의 숫자를 더해서 가구의 유형을 구분하고 있다. 내부에 고주가 한 개 세워진 경우에는 ‘1고주 ○량’, 2개라면 ‘2고주 ○량’이 된다.
홍살문과 같이 도리 1개로도 건물을 건립할 수 있다. 또 2개의 도리로 건축한 2량 역시 얼마든지 건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은 내부 공간이 없거나, 소규모 건물이어서 일반적인 가구 유형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가구 유형은 3량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3량 건축은 3개의 도리와 앞뒷면에 각각 1개의 서까래를 사용해 지은 집이다. 중앙에도 기둥을 설치해서 도리를 받친다면 내부에 1열의 고주가 위치하기 때문에 ‘1고주 3량’ 집이 된다. 다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중앙의 고주는 생활에 불편하기 때문에 고주를 없애고 보와 동자주로 대신한다. 여러 동자주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놓여 종도리를 받치는 부재를 대공(臺工)이라고 한다. 경주 양동마을의 경주 양동 관가정, 서백당( 경주 양동마을 송첨종택)과 같이 소규모 주택 건축에서 많이 사용한 가구 방식이다.
5량 건축은 도리를 5개 사용한 가구로, 앞뒷면에 2가지 종류의 서까래를 결구하는 방식이다. 내부에 3열의 고주를 세운다면 ‘3고주 5량’이라고 부를 수 있다. 중앙의 고주 열을 설치하지 않고 이것을 보와 대공으로 대체한다면 이것이 ‘2고주 5량’에 해당한다. 여기에 추가로 하나의 고주 열을 없애고 보를 2중으로 설치하면 ‘1고주 5량’이 되며, 내부에 고주를 사용하지 않고 보를 2중으로 구성하면 ‘무고주 5량’이 된다. 가구에 사용하는 여러 부재들 중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은 대들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구할 수 있는 대들보의 길이가 건축물의 규모를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길이의 대들보를 사용한다면 무고주 5량 건축보다는 1고주 5량이, 1고주 5량 건축보다는 2고주 5량 건축이 규모가 커지게 된다. 조선시대에 건립된 대부분의 건축물이 5량의 가구로 지어졌다고 할 정도로 대표적인 가구 유형이다.
7량 건축은 도리를 7개 사용한 가구로, 앞뒷면에 3가지 종류의 서까래를 결구하는 방식이다. 5량 건축을 기본으로 앞면과 배면에 퇴칸을 부가한 것이 ‘2고주 7량’에 해당한다. 창덕궁 인정전, 경복궁 근정전, 여수 진남관과 같이 거대한 건물에 사용한 방식이다. 반면에 2고주 7량보다 규모는 작지만 3중으로 보를 겹쳐 쌓아 건물을 건립한 사례가 1고주 7량에 해당한다. 양산 통도사 대웅전, 부산 범어사 대웅전, 남원 광한루와 같은 건물이 1고주 7량으로 가구를 구성한 사례다. 이와 같이 3중으로 보를 겹쳐서 지은 건물은 주로 17세기 건축물에서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시대적인 특징의 하나라는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이외에도 3중량으로 구성한 무고주 7량을 기본으로 앞면과 배면에 퇴칸을 부가한 2고주 9량의 통영 세병관이 있고, 4고주 11량으로 가구를 구성한 경복궁 경회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