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인정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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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전
창덕궁 인정전
건축
유적
문화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조선전기 편전으로 사용되었던 전각.
이칭
이칭
인정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창덕궁 인정전(昌德宮 仁政殿)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보(1985년 01월 08일 지정)
소재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와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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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조선전기 편전으로 사용되었던 전각.
내용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건물.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 조선 궁궐의 정전다운 격식과 의장(意匠)이 잘 갖추어져 있다.

창덕궁은 오랫동안 조선의 법궁(法宮) 구실을 하였으므로, 조정의 각종 의식이나 외국 사신의 접견이 이 건물에서 이루어졌다.

인정전의 전면에 행랑으로 둘러싸인 전정(前庭)이 있어 이곳에 품계석(品階石)이 마련되었으며, 남쪽에 인정문이 있다. 왕세자나 세자빈의 책봉이 있을 때, 또는 대왕대비의 주갑(周甲: 환갑) 등 경사가 있을 때 왕은 인정전에 나아가 축하를 받았다.

1405년(태종 5) 창덕궁이 창건되면서 지어졌으나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1804년(순조 4)에 현재의 건물이 재건되었다. 창건 당초에는 정면 3칸의 작은 규모의 건물이었으나 세종·단종 때 개영(改營)이 있었다.

이때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609년(광해군 1)에 재건되었으며, 다시 1803년(순조 3) 소실되었다가 이듬해에 중건되고, 1842년(헌종 8)에 수리가 있었다.

기단 중앙의 계단 가운데 판석(板石)에는 구름 사이로 두 마리의 봉황이 새겨져 궁실(宮室)의 격식을 나타내고 있다. 12척 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 사이에는 벽체 없이 사분합의 문짝과 광창을 설치하였다. 기둥 위에 짜여진 공포는 내사출목, 외삼출목으로 조선 후기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즉, 외부는 3제공에 모두 끝이 날카롭게 위로 솟은 쇠서를 만들고, 내부는 살미첨차가 모두 한데 모여 둥글둥글하게 장식된 운궁(雲宮)이 되어 내목도리나 보를 받고 있다.

중층건물이지만 내부는 하나로 터져 고주 위로는 대량을 걸고 고주 밖으로는 퇴량을 걸어 사방에 툇간을 만들었으며, 대량의 위치에 우물천장을 드리웠다. 천장 중앙에는 한 단을 높여 구름 사이로 봉황 두 마리를 채색하여 그려넣었다.

후면 고주 사이에 용상(龍床)을 설치한 어좌(御座)가 마련되어 있고, 그 뒤에는 「오봉산일월도(五峰山日月圖)」의 병풍을 쳤다. 어좌 위에는 천장에서 달아낸 보개천장을 두었는데, 정교하고 섬세한 가공이 돋보인다.

중층지붕의 각 마루에는 회반죽을 바르고 취두(鷲頭: 매 머리모양의 장식)·용두(龍頭)·잡상(雜像)을 두었으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용마루 양성 부분에는 다섯 개의 이화문장(李花紋章)을 장식하였는데, 이것은 한말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을 새긴 것이다.

인정전은 한말에 내부시설 일부를 개조하고 전등을 가설하였다. 내부 바닥은 본래 전(磚)이 깔려 있었던 것을 서양식의 쪽나무로 바꾸었으며, 창도 내부에 서양식의 들어서 여는 창을 내고 커튼을 드리웠다. 또한, 궁내에 전기를 공급하는 시설을 갖추어 여러 개의 전등을 가설하였다. 이들 새로운 시설은 황실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장식하였다.

인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 창경궁의 명정전과 함께 조선 궁궐의 세 정전 중 하나로, 건축적으로는 규모가 근정전보다는 조금 작고 건립연대는 명정전보다 뒤떨어져 중간 위치에 있다고 하겠으나, 조선왕조 역사의 주무대가 되었던 점에서는 다른 정전과는 다른 큰 의미를 가진다. 이 건물이 역사와 함께 변화되어 왔음은 내부에 꾸며진 한말의 서양식 시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궁궐지』
『인정전영건도감의궤(仁政殿營建都監儀軌)』
『조선조왕궁중요건축물지정조사서』(문화재관리국,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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