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신유박해와 관련된 천주교인.
내용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이기설(理氣說)을 토대로 하는 당시의 보편적 학문성향을 탈피하고 고증학적(考證學的)인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구명(究明)하는 데 전념하여 전도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1797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정국(金鼎國)에 의하여, 주문모(周文謨)와 접촉하면서 천주교 교리를 배우며 요언(妖言)으로 민심을 혼란시킨다고 보고되어, 형조의 탄핵을 받아 그 해 11월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이어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옥사하여 주문모와 함께 효수되었다. 저서로는 고증적 자료가 다수 수록된 『중암고』 8권 4책이 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중암고(重菴稿)』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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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숭정3병오식년사마방목(崇禎三丙午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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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제주 유배 : 정조실록47권, 1797년(정조 21) 11월 12일. "강이천을 제주목에, 김이백을 흑산도에, 김려를 경원부에 유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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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중암고 : 중암고(重菴稿)(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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