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성종 때의 문신인 손중돈(孫仲暾)의 고택(古宅)이다. 서향받이 언덕에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으로 자리잡고, 동북쪽에 사당을 배치하고, 담장으로 양쪽 측면과 뒷면을 둘러막아, 주택의 앞쪽을 탁 트이게 하여, 낮은 지대의 경관을 바라보게 하였다.
그러나 1981년의 보수로 전면에도 담장을 쌓고 일각대문을 내어 경치가 많이 가리어졌다. 집의 배치는 중문을 중앙에 두고, 서쪽에 사랑채, 동쪽과 북쪽에 안채를 두었다. 사랑채는 방 2칸, 대청 2칸으로, 대청은 누마루로 되어 있다.
중문 동쪽에는 한 칸의 온돌방, 두 칸의 부엌, 한 칸짜리 방 두 개를 두었고, 부엌 북쪽에 연달아 2칸 크기의 작은 대청과 2칸 크기의 안방이 있으며, 다시 꺾이어 6칸 크기의 큰 대청을 두고, 그 서쪽에 2칸 크기의 건넌방을 두었다.
건넌방에서 남쪽으로 꺾인 곳에 2칸 크기의 광을 두고, 그 앞에 한칸짜리 마루를 두어, 사랑채의 사랑방과 연결시키고 있다. 사당은 따로 둘러막은 담장 속에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전면에 반칸의 퇴(退)를 달아낸 모양으로 된 일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건물들은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웠으나, 사랑대청에서는 두리기둥[圓柱]을 세웠다. 사랑대청은 두리기둥 위에 주두(柱枓)를 얹고, 쇠서[牛舌]하나로 결구(結構)하여, 초익공(初翼工)으로 꾸몄다.
사랑대청의 가구(架構)는 4량(四樑)으로, 앞뒤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포대공을 놓아 종도리(宗道里 : 마룻대) 밑 장여를 받치고 있다. 그러나 양측 벽에서는 뒤쪽 바깥기둥부터 반 칸 안쪽으로 기둥을 세워, 대들보를 여기에 걸었다.
이 대들보 위와 천장 사이에 아무런 벽체를 만들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椽背天障]며, 사랑방 앞과 사랑대청 주변에는 계자난간(鷄子欄干 : 계자각으로 꾸민 난간)을 돌렸다.
안채의 구조는 민도리집 양식이며, 안채 부엌 출입문 위에는 살대들을 비스듬히 꽂아 환기가 잘 이루어지게 하였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안채와 사랑채가 한 지붕으로 연결되고, 서로 모이는 부분에는 합각을 만든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조선 중기 남부지방의 주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