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하게 한다고 하여 선교장이라고 하는데, 전주이씨 이내번(李乃蕃)이 지었다고 한다.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은 1815년(순조 15)에 오은처사 이후(李厚)가 건립하였고, 정자인 활래정(活來亭)은 1816년(순조 16)에 이근우(李根宇)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안채 · 사랑채 · 동별당 · 서별당 · 사당 · 정자 · 행랑채를 골고루 갖춘 큰집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대표적인 한 예이다.
집의 배치는 간좌곤향(艮坐坤向)으로 서남향을 하고 있다. 전면에는 줄행랑이 서 있고, 그 가운데 솟을대문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대문을 들어서면 중문간행랑이 나오고 서쪽으로 가면 사랑마당에 이르게 된다.
사랑채인 열화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크기로 거의 一자형 평면을 이룬다. 그 구성은 대청 · 사랑방 · 침방 · 누마루로 되어 있고, 대청 앞에 반 칸 너비의 툇마루가 붙어 있다. 특히 사랑채 전면에는 차양(遮陽)이 가설되어 석양의 강한 햇볕과 눈, 비를 가리게 되어 있다. 오량(五樑)가구의 단순한 민도리집 양식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다.
사랑대청의 천장은 널판으로 일부 빗천장을 하고 우물천장을 한 것이 특색이다. 안채는 행랑채 동쪽에 있는 평대문으로 들어가는데 부엌 · 안방 · 대청 · 건넌방으로 구성된다. 동쪽으로는 동별당, 서쪽으로는 중문간행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안채도 오량가구의 민도리집 양식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다.
동별당은 안채 동쪽 부엌 앞에 ㄱ자형으로 위치하는데, 서쪽에서부터 온돌방 · 대청 · 마루방 · 온돌방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건물의 가구나 구조는 안채나 사랑채와 비슷하다. 행랑채 앞 넓은 터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고 정자인 활래정이 있다. 정자는 ㄱ자형으로 방과 누마루로 되어 있다. 민도리 소로수장집으로 처마에는 부연을 달고 사면에는 모두 띠살창호를 달았다.
연못 가운데에는 삼신선산(三神仙山)을 모방한 산을 인공적으로 쌓아 만들었는데, 소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운치를 더하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