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자경전
경치 [경] 경계 [경]
부수 日 총획 12
복 [복] 아름답다 [복]
부수 示 총획 14
궁궐 [궁] 느티나무 [궁]
부수 宀 총획 10
자애롭다 [자]
부수 心 총획 14
하례하다 [경] 착하다 [경]
부수 心 총획 14
전각 [전]
부수 殳 총획 13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 명칭 경복궁 자경전 (景福宮 慈慶殿)
- 분류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궁궐
-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경복궁)
- 웹페이지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1108090000
- 위도37.5803189272242
- 종목 보물(1985년 01월 08일 지정)
- 지정기관국가유산청
- 집필 1995년
- 주남철 (고려대학교, 건축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서울 경복궁 자경전 정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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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는 조선후기 대비들의 침전으로 이용된 궁궐건물. 전각.
개설
내용
1867년(고종 4) 경복궁 재건의 제2단계 조영(造營) 때 고종의 양어머니인 조대비(趙大妃) 신정왕후(神貞王后)를 위하여 옛 자미당(紫薇堂) 터에 지은 연침(燕寢 : 한가롭게 거처하는 전각) 건물이다.
동행각(東行閣), 남행각(南行閣), 북행각(北行閣) 등의 부속건물과 일곽을 이루고 건립되었으나, 두 번에 걸친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88년(고종 25)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전각의 주평면(主平面)은 교태전(交泰殿)과 같은 침전이 이루는 기본적인 것으로, 중앙에 커다란 대청을 두고 그 대청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커다란 온돌방, 그리고 그 측면으로 누마루를 두었으며, 이들의 앞면과 뒷면으로는 툇마루와 좁은 온돌방을 두었다.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를 한 높은 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다듬은 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기둥 윗몸은 창방으로 결구하였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 : 대접받침)를 직접 놓아 끝이 날카로운 수서〔垂舌〕 두 개를 내어 이익공(二翼工)으로 꾸몄다.
쇠서〔牛舌〕와 보머리〔樑頭〕에는 초각을 하였고, 안쪽으로는 조각된 보아지를 내었다. 주두 위에는 도리 방향으로 된 첨차(檐遮)를 놓아, 소로를 얹어 굴도리의 장여를 받치고 있다.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끝이 초각된 쇠서모양의 부재를 화반 대신 두 개씩 얹어두었다.
가구(架構)는 앞면의 퇴주(退柱)와 안쪽의 고주(高柱) 사이에는 퇴보〔退樑〕를 걸고 있으며, 내부의 두 고주 사이에는 대들보를 걸고 그 대들보 높이에서 우물천장을 가설하여 천장 속을 가리고 있다. 정면의 중앙 세 칸은 툇마루로 개방하고 나머지는 띠살창호를 달았으며, 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는 모두 양성을 하여 용머리로 장식하였다. 전각을 둘러싸고 있는 행각과 담장에는 여러가지 무늬가 장식되어 있어 그 꾸밈이 매우 아름답고, 특히 북행각에 이어져 있는 십장생도가 그려진 굴뚝은 따로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고궁건축』(신영훈 외, 열화당, 1988)
- 『국보』 11-궁실건축-(신영훈 편, 예경산업사, 1985)
- 『한국건축미』(주남철, 일지사, 1983)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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