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광한루에 있는 조선전기 에 중건된 정인지 관련 누정. 누각.
역사적 변천
내용
바닥은 원래 귀틀을 짜고 점판을 깐 우물마루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지금은 장마루로 되어 있다. 누 바닥 주위에는 계자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모두 분합문의 들창을 달아 사방이 모두 개방되게 함으로써 누로서의 기능을 살렸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를 얹고, 기둥머리부터 쇠서[牛舌] 하나를 내고, 위에 행공첨차를 놓아 외일출목을 이루었다. 다시 위에 쇠서를 내어 전체적으로 이익공(二翼工)과 흡사한 주심포집으로 만들었으며,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는 화반(花盤: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끼웠다.
가구(架構)는 7량(七樑)으로 대들보를 전면의 평주와 내진(內陣)의 평주 위에 걸고, 보 위에 동자루를 세워 종보를 받치며, 다시 그 위에 초각된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네 귀의 추녀에는 활주로 받쳤다.
이 누의 북쪽으로는 익랑식(翼廊式)으로 누에 오르는 층계를 놓았는데 그 구조는 익공식으로 코끼리 등의 동물모양의 화반을 창방 위에 두었다. 누의 동쪽으로 연달아 낸 익루(翼樓)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삼면에는 퇴를 둘러 개방하였고, 그 안쪽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따라서 마루 밑에는 온돌방용 아궁이와 굴뚝이 사방으로 쌓은 벽체에 나 있다. 누 앞에는 연못 · 정자 · 다리 등으로 구성된 넓은 정원이 있으며 이 정원 역시 조선시대 정원의 한 유구로 지목된다.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3(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 『한국건축미』(주남철, 일지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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