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조선전기 경주손씨 양민공 손소 관련 주택.
개설
역사적 변천
그 뒤 손소의 첫째 아들인 손백돈(孫伯暾)이 우계이씨(羽溪李氏)와 결혼하여 처가에 살면서 아들 손위(孫暐)를 낳았는데, 손위가 후사를 잇지 못하여 손소의 둘째 아들인 손중돈이 집안을 이끌었다. 1514년(중종 9)에 손중돈이 양동에 관가정(觀稼亭)을 짓고 손소의 신위와 영정을 사당에 모시면서 송첨은 손소의 넷째 아들인 손계돈(孫季暾)의 사제(私第)로 쓰이며 대종가의 기능을 잃었다. 그 뒤 1924년에 다시 송첨에 사당을 지어 손소의 신위를 옮겨 모시면서 현재까지 대종가로 자리하고 있다.
내용
대문채는 평면 8칸으로, 평대문(平大門) 형식의 대문을 중심으로 동남쪽에는 1칸의 방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1칸의 마루와 2칸의 부엌, 그리고 다시 1칸의 고방(庫房)이 이어져 있다. 몸채는 사랑채와 안채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데, 앞쪽에 위치한 중문을 통해서 안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중문을 중심으로 동남쪽에는 큰사랑과 대청, 중사랑 등으로 이루어진 사랑채 공간이 있다. 안채 공간은 안마당 뒤쪽으로 6칸의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서남쪽에 안방과 부엌, 고방이 자리하여 중문으로 이어졌고, 반대편에는 산실방(産室房)과 제기고(祭器庫)가 자리하면서 사랑채 공간과 연결되었다. 몸채의 서남쪽에는 곳간채를 중심으로 장독대 등의 생활공간이 있으며, 몸채 뒤쪽에는 후원(後苑)이 있다. 몸채 동남쪽에도 넓은 마당이 있는데, ‘양동의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974년 지정)의 뒤쪽에 사당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2014년 문화재명칭 영문 표기 용례집』(문화재청, 2014)
- 『한국의 전통가옥』25 양동 서백당(문화재청, 2008)
- 「양동 관가정과 손동만가옥의 주거사적 연구」(손기원,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1)
- 국가유산청(www.cha.go.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