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현일 관련 강학처.
내용
그러나 같은 해 4월부터 안동 임하현 금소역(琴召驛)에 우거(寓居)하였다. 그곳의 산천이 밝고 수려하며, 선영(先塋)에 성묘하기가 편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해 10월부터 역사(驛舍) 북쪽의 금양(錦陽)에 작은 집을 지었는데 재력이 부족하여 1704년(숙종 30) 8월에야 낙성하였다.
이현일이 금소에 우거하던 시기 사방에서 학생들이 모였는데 그들의 자질에 맞춰 가르치며 사서(四書)를 입문서로 삼았다. 실제 이현일과 교유하거나 가르침을 받은 문인들을 기록한 『금양급문록(錦陽及門錄)』에는 모두 358명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영남지역 인사들로서 특히 안동에 거주하는 자들이 가장 많았으며, 서울을 포함하여 평안‧황해‧함경‧강원도에 거주하는 자들도 확인된다. 이를 통해 이현일의 학문적 위상과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방문과 활발한 강학 활동으로 인하여 만년에 건립한 금양의 처소는 그의 강도소(講道所)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강도소로 사용되던 집은 퇴락하고 그 터만 전해지면서 안동의 사림들이 1830년(순조 30) 집터에 단(壇)을 축조하고, 계(契)를 결성하여 이곳에 원사를 세우려고 했으나 실행하지 못하였다. 그 후 1893년(고종 30) 단소 아래에 유허비(遺墟碑)를 세워서 이현일을 추모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상량문을 보면 1901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자형 목조와가로서 안채는 덤벙주초 위에 네모난 기둥을 사용했고, 양쪽에 각 2칸의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1931년 금양단소 계약증서」에 따르면 이 건물은 재사(齋舍)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1996년 12월 5일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갈암집(葛菴集)』
- 『존재집(存齋集)』
- 『조선도서해제(朝鮮圖書解題)』
- 『재녕이씨족보(載寧李氏族譜)』
- 『금양단안(錦陽壇案)』
- 『계사 8월 금양단소 통문』
- 「1931년 금양단소 계약증서」
주석
-
주1
: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부쳐 삶. 또는 그런 집.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