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생서원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 배삼익(裵三益)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으로, 도생서당(道生書堂)이 전신이다. 1823년(순조 23) 도산서원 도회에서 배삼익을 제향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처음 있었지만 그 후로도 마땅한 장소를 정하지 못하였다. 이후 1830년(순조 30)에 사빈서원 도회에서 도생서당 중건 논의가 있었다. 도생서당은 배용길이 건립한 곳으로, 원래 미질리에서 있었지만 중간에 국계리로 이건한 후 구계서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래서 주진촌(舟津村)에 터를 잡고 강당을 중건하였다. 1832년(순조 32) 봄에 일향의 진신장보들이 구계서원에서 모여 중건을 담당할 임원을 정하고, 구계서원에서도 별도의 유사를 정해 중건을 도왔다. 그러나 중건비가 부족하여 실질적인 공사는 1838년(헌종 4)에 시작되었다.
이휘녕(李彙寧)의 「도생서원기」에는 이때 주사(廚舍)를 건립하였으며, 1840년(헌종 6)부터 3년만에 강당인 양정당(養正堂)을 건립하였고, 뒤이어 보인재(輔仁齋), 시습재(時習齋), 환성루(喚惺樓), 과행문(果行門)을 갖추었다. 당시 이태순(李泰淳), 강운(姜橒)이 도생서당 건립 논의를 주도하였으며, 이병운(李秉運, 1766~1841), 류치명(柳致明), 이언순(李彦淳)이 연이어 동주(洞主)가 되어 관장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일을 주간한 것은 이해응(李海鷹), 류치직(柳致直), 배한주(裵翰周) 등이었다.
도생서원이란 명칭은 이휘녕의 기문(記文)에서만 확인되며, 각종 읍지와 서원지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1868년에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이후 복설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