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생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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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1843년, 배삼익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 건립한 서원.
이칭
이칭
도생서당(道生書堂)
유적
건립 시기
1843년
관련 인물
배삼익|배용길|이병운|이태순|강운|류치명|이언순|이해응|류치직|배한주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도생서원은 1843년 배삼익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1823년 배삼익을 제향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처음 있었고, 1830년에 도생서당을 중건하기로 했다. 이후 중건을 관리할 임원을 선정하고 단계적으로 서당 터와 건립에 필요한 재목 등을 구매하였다. 1832년부터 7년만에 주사를 건립하고, 1840년부터 3년 동안 당을 건립하였다. 그 뒤 재와 문루 등을 세웠으나 1868년에 훼철되었다.

목차
정의
1843년, 배삼익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 건립한 서원.
내용

도생서원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 배삼익(裵三益)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으로, 도생서당(道生書堂)이 전신이다. 1823년(순조 23) 도산서원 도회에서 배삼익을 제향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처음 있었지만 그 후로도 마땅한 장소를 정하지 못하였다. 이후 1830년(순조 30)에 사빈서원 도회에서 도생서당 중건 논의가 있었다. 도생서당은 배용길이 건립한 곳으로, 원래 미질리에서 있었지만 중간에 국계리로 이건한 후 구계서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래서 주진촌(舟津村)에 터를 잡고 강당을 중건하였다. 1832년(순조 32) 봄에 일향의 진신장보들이 구계서원에서 모여 중건을 담당할 임원을 정하고, 구계서원에서도 별도의 유사를 정해 중건을 도왔다. 그러나 중건비가 부족하여 실질적인 공사는 1838년(헌종 4)에 시작되었다.

이휘녕(李彙寧)의 「도생서원기」에는 이때 주사(廚舍)를 건립하였으며, 1840년(헌종 6)부터 3년만에 강당인 양정당(養正堂)을 건립하였고, 뒤이어 보인재(輔仁齋), 시습재(時習齋), 환성루(喚惺樓), 과행문(果行門)을 갖추었다. 당시 이태순(李泰淳), 강운(姜橒)이 도생서당 건립 논의를 주도하였으며, 이병운(李秉運, 1766~1841), 류치명(柳致明), 이언순(李彦淳)이 연이어 동주(洞主)가 되어 관장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일을 주간한 것은 이해응(李海鷹), 류치직(柳致直), 배한주(裵翰周) 등이었다.

도생서원이란 명칭은 이휘녕의 기문(記文)에서만 확인되며, 각종 읍지와 서원지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1868년에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이후 복설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금역당집(琴易堂集)』
『고계문집(古溪文集)』
『백저문집(白渚文集)』
『도생서당중건시일기(道生書堂重建時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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