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명서(明瑞), 호는 금역당(琴易堂) 또는 장육당(藏六堂). 생원 배헌(裵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배천석(裵天錫)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배삼익(裵三益)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남신신(南藎臣)의 딸이다.
1575년(선조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85년(선조 18)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해(金垓)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그의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1594년 세마(洗馬)의 직을 받고 이어 시직(侍直)·부솔(副率)을 지내고, 1597년 정유재란 때는 화의에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다.
1602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예문관의 검열과 대교(待敎), 1606년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한 뒤 1608년 충청도도사를 지냈다.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어 유성룡(柳成龍)·조목(趙穆)·남치리(南致利) 등을 사사하였다. 천문·지리·율력(律曆)·병전(兵典)·의약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역리(易理)에 밝았다고 한다.
저서로는 『금역당집(琴易堂集)』이 있다.